핵가족 시대를 거쳐 1인 가구가 마치 하나의 트렌드인 것처럼 이야기된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시청률이 하늘을 찌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공동체’는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2019년 이후 우리의 삶을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강력한 이유를 다시 말해주고 있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 시간을 힘겹게 살아내면서, 우리는 이 시기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됐다. 혹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위드 코로나 시기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재난 시대에 동네에 필요한 것은 바로 ‘동네 친구’, 곧 가까운 곳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 ‘동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첫째, 공공성을 보장하는 의료 체계.
둘째, 재난에 대비한 매뉴얼과 훈련.
셋째, 폭염·한파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과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주택.
넷째, 지역에서 생산하는 재생가능에너지.
다섯째, 건강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먹거리. 여섯째, 공공교통과 자전거.
일곱째, 자원순환.
여덟째, 노약자·장애인·어린이 돌봄 지원.
아홉째, 녹색 지대와 생물 다양성 보호.
열 번째, 전환학습·생태 전환 학교.
열한 번째, 전환 문화와 예술·놀거리·여행.
실상사에 있는 것
필자는 2022년 여름부터 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이하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들을 인터뷰하며 작금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이자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모습을 띠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적 실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에게 실상사 공동체와 산내면의 함께 살기 실험은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위에 열거한 열한 가지를 나열하면서, 이 중 실상사를 포함한 산내면 공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물었다. 생각의 격차는 있지만 이들은 서너 가지를 빼고는 실상사와 산내면에 이미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놀라웠다. 필자가 사는 서울 중심부의 동네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이미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존재하고 있다니 말이다. 왜 재난의 시대에 동네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을 터이다. 필자는 공동체 실험의 현대적 의미가 바로 이 열한 가지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필요성은 결국 우리는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깨달음에 기초한다. 농업이 유일하고도 핵심적인 생존의 방식이었던 농경사회에서 가족과 마을이라는 공동체살이가 자연스러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산업의 형태가 공장 생산으로 넘어가면서 도시로의 이주자가 많아졌고, 그들은 반드시 같이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문화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이라는 글에서 이야기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가 바로 다음 날 노동에 투입되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인식 수준에 머무르기를 원한다고. 그래서 대중문화를 통해 비판적 인식을 무디게 했고, 노동자들은 부당한 노동 조건에 공동으로 맞서기보다 개별자로 뿔뿔이 흩어져서 존재했다고.
위에 언급한 글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저작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에 수록됐다. 이 책이 출판된 1940년대 중반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에 비해 2020년대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행복해졌을까? 물질적 풍요나 서로를 이어주는 통신 기술이 1940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현대사회의 한국인들은 왜 이토록 공동체를 찾게 된 것일까?
기후위기와 생태적 실험
현대인들이 공동체를 찾게 된 까닭은, 너무 원론적인 대답이겠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과거 농경사회가 먹고살기 위해 공동체적 특성을 강하게 유지했다면, 지금 우리는 물리적 ‘먹고사니즘’ 때문만이라기보다는 정서적 생존을 위해서 공동체를 찾는다. ‘배달의 민족’이 밥을 가져다주고, 차상위 계층에게 영구임대주택이 제공돼 공간적 필요가 충족돼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도시살이에 지쳐서 정서적 생존이 절실했던 사람들이 실상사 공동체를 찾고 산내면을 찾아 귀촌을 시도한다. 실상사 공동체는 앞서 언급한 열한 가지 요소 중 ‘실상사 농장’의 대안 농업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건강한 방식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쓰레기와 플라스틱을 덜 배출하는 방식으로 생활한다. 또한 공동체 마을 사업을 담당하는 한생명에서는 ‘게미’(정기적으로 마을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배달하면서 당신들의 안위를 살피는 활동)도 하고, ‘실상사 작은학교’에서는 생태적 교육 과정을 통해 전환 학습을 실천하고 있다.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들과 산내면 주민들에게, ‘전환마을 네트워크(Transition Network)’의 시발점이 됐던 영국 데본의 토트네스(Totnes) 마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추천한 적이 있다.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인 한 분은 “이 다큐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많은 맹아(萌芽)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렇다. 실상사 공동체와 산내면은 세계적으로 회자하는 전환마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이미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단지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는 요소들도 많다. 현대적 공동체라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 지구를 지켜야 우리 공동체도 살아남는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인 생태적 실험을 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전 세계 많은 공동체는 에너지 자립을 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쓰지 않는다. 풍력이나 태양열로 마을을 운영하는 실험(독일의 윤데마을)이나,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매뉴얼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마을 주민들이 소그룹으로 실행하는 활동(영국의 토트네스마을) 등을 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스님과 활동가)은 모두 합쳐 50여 명이다. 그리고 산내면 거주민 2,000여 명 중에 귀촌 인구는 500명이 좀 넘는다. 귀촌 인구 모두가 실상사 공동체 구성원처럼 활발하게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활동, 공동체를 살리는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실상사 공동체에서 고민하게 되는 것은 결국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였다.
공동체의 역동성
최근 지역 소멸의 위기에 처한 마을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바로 ‘관계인구’다. 관계인구는 정주인구와 교류인구의 중간 개념으로서, 특정 지역에 완전히 이주·정착하지 않았으나 정기·비정기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실상사와 산내면에는 바로 이 관계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관광, 혹은 ‘현대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된’ 명상을 위한 템플스테이를 목적으로 실상사를 찾는 외부인들이 있다. 또한 대안적 삶을 꿈꾸면서 산내면에 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필자는 실상사와 산내면 공동체의 실험이 이곳에 물리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실상사의 관계인구까지 잘 포용하고 활용하면서 더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공동체의 역동성이 구체적으로 잘 정리돼 효율적으로 전파될 수 있길 기대한다.
더불어 이러한 공동체 실험 조직에서도 여전히 이슈가 되는 ‘세대 간 갈등’을 뛰어넘는 공동체적 의제가 발굴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그 의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레타 툰베리가 “당신들이 내 꿈을 앗아갔습니다”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을 때, 기성세대는 미안해했고 청년 세대는 열광했다. 바로 이 공감대가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묶는 공통의 의제가 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강윤주
독일 뮌스터대에서 예술사회학을 전공하고 2007년부터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부터 공동체 연구를 하며 『생활예술: 삶을 바꾸는 예술, 예술을 바꾸는 삶』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활예술』을 기획해 공저로 출판했다. 2021년 여름부터 불교 철학에 기반한 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와 산내면 주민들의 생명평화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구성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