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전직 대통령이 많이 돌아가셨다. 불교 상장례를 진행하는 연화회 유재철 대표는 고인이 되신 최규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염습을 진행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 염장이’라 칭한다. 유재철 대표는 일반 장례뿐 아니라, 스님들 다비식도 많이 치렀다.
‘염쟁이’가 아닌 ‘염장이’로 본인을 칭한다. ‘혼’을 담는 직업이기에 그렇단다. 상장례 절차를 묻고자 유재철 대표를 방문했다.
Q ‘염’한다고 하잖아요? 어떤 의미와 절차가 있는 거죠?
돌아가시면 몸이 깨끗하지 않아요. 병중이나 사고로 돌아가시면 더욱 그렇죠. 임종하신 이후 몸을 깨끗이 하고 수의를 입혀 드리는 일을 습(襲)이라 하고, 관에 들어가기 전에 끈을 묶는 것을 염(殮)이라 합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염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병원에서 장의사들이 많이 하죠.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 몸이 성하지 않은 경우가 많죠. 그 모습을 그대로 가족이 보게 될 수도 있죠. 그전에 솜하고 한지로 감쌉니다. 매장보다 화장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염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Q 염습할 때 가족이 함께하기도 하고, 입관할 때만 함께하기도 합니다. 염습할 때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 좋을까요?
망자가 돌아가시면 가족들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데, 이때 스님들 역할이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죠.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여성분들이 슬픔과 애통함을 더 잘 견딜 정도로 강합니다.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몸은 안치실에 모시죠. 임종을 함께하지 못한 가족일 경우 염습할 때 처음 보기도 합니다. 스님의 염불은 망자를 위한 기도지만, 가족들의 슬픔도 이때 함께 삭혀집니다. 꼭 함께하셨으면 합니다.
Q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몸을 안치실로 곧바로 옮기잖아요?
망자가 돌아가시기 전의 임종 염불과 돌아가신 직후의 염불이 중요합니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위해서는 임종 직전, 스님이나 가족들이 기도와 염불을 해 주셔야 합니다.
죽음이 두렵잖아요? 형식을 갖추는 것이 망자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염주를 쥐게 하거나, 자그마한 아미타 불상을 모시고 오색실을 이어 손에 쥐여 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합니다. 숨을 쉬지 못하거나 힘들어하죠. 손을 잡아 기도만 해도 표정이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 후배가 있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갔죠. 그런데 미세하게 숨이 있는 거예요. 저와 후배는 몇 시간을 염불했죠.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을 때여서 ‘나무아미타불’밖에 모를 때였죠. 그 후, 지인들이 오셔서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표정이 아주 밝다”라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나네요.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임종하고 곧바로 몸을 안치실로 옮기기보다,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혼백이 분리되는 시간이 있다고도 하잖아요? 어떤 분은 미리 1인실로 옮겨 몇 시간의 여유를 갖기도 합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집에 모셔서 가족의 품에서 임종을 맞이하면 더 좋을 듯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가족의 얼굴을 보면 본인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합니다.
Q 입관할 때, 수의를 입히잖아요? 삼베옷을 많이 입는데….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히는 것이 좋을 듯해요. 삼베옷을 입히는 것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들어온 듯해요. 예전에는 결혼할 때 입은 색동옷이나 한복을 입기도 했습니다. 미리 자신이 입을 수의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제일 아끼는 옷,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준비하죠.
스님들은 승복이 곧 수의입니다. 승복은 분소의(糞掃衣)라고 해서 수의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법정 스님께서도 “관도 하지 말고, 입고 있는 옷 그대로 화장해라”라고 유언하셨잖아요? 평소에 본인이 책을 읽거나 잠시 누워 쉬던 평상을 관으로 대신했습니다.
재가불자들은 법복을 입고 가면 어떨까요? 아무튼 저는 망자가 제일 아끼던 옷, 입고 싶은 옷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어떤 대기업 회장님은 돌아가실 때 본인의 양복, 넥타이, 넥타이핀까지 준비하셨어요.
Q 입관 이후 제를 준비하는 절차는?
성복(成服)이란 것은 입관 이후 정식으로 옷을 입는 것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복이 제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사는 장례 이후 진행되는 겁니다. 성복제, 발인제라는 표현은 본래 없어요. 굳이 붙이자면 성복례, 발인례라고 표현해야죠. 장례 이후 불교에서는 ‘반혼재(反魂齋)’, 유교식으로는 ‘삼우제(三虞祭)’라고 하죠.
예전에는 따로 상차림을 하지 않거나, 간단하게 모셨죠. 요즘은 제사 상차림으로 하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Q 장례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면서 이장(移葬)을 하기도 합니다. 절차가 있을까요?
매장은 보통 산에 하죠. 그렇기에 산신제를 먼저 올리고, 파묘제를 지냅니다. 장례는 형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죠. 이장할 때 연(輦, 가마)을 반야용선에 태워 모십니다. 이장뿐 아니라 화장 이후 유골을 모실 때도 그렇습니다. 가능하면 인로왕번을 앞에 세우고 반야용선과 유족이 뒤따르게 하죠.
Q 스님들은 다비의식을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제가 상장례를 30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스님이라면 다비의식을 통해 여법하게 모셔야 하는데, 일반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용과 시간,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죠.
10여 년 전, 조계종과 함께 스님들의 다비의식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70~80이 되신 연로하신 스님들을 찾아뵙고 상장례를 공부했죠. 어떤 경우는 불이 들어간 다음, 쌓은 나무가 쓰러져 몸의 일부가 나온 적도 있다고 해요.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 3~4시간이면 충분히 가능하게 준비했습니다. 스님들이 믿어 주셔서 많은 다비의식을 저에게 맡기고 계십니다. 다비를 하면 예전에는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들었습니다. 또 불꽃이 높아 산중에서 하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데, 꼭 그렇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국립공원 내에서도 스님들 다비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100평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유재철 대표는 20대 후반부터 상장례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 사업 실패로 방황할 때,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따라 개운사에 발을 디뎠다.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불청운동을 하려면 재정 자립을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 장례의식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불광사 보조 거사님을 모시고 ‘염불봉사팀’을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사찰을 돌아다녔습니다. 천주교인들은 상장례를 통해 입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찰에서 세 명에게만 역할을 주면, 그분들이 자기 시간과 비용을 내면서 봉사합니다. 불법 홍포와 사찰 발전에도 중요합니다.”
10여 년 전부터 염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고. 염장이는 자기 시간이 없다. 다른 일을 하다가 연락이 오면, 곧바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틈틈이 공부해 박사논문도 마쳤고, 이를 기반으로 스님들의 다비의식을 꽤 오랫동안 공부했다. 지금은 스님들이 먼저 연락해 온다고. 2013년 10월 이후에만 다비식을 100여 차례 치렀다.
“아버님이 팔순 잔치를 한 후, ‘나는 매장했으면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죠. 직후 선산에 가묘를 미리 준비했어요. 그리고 아버님이 일을 당하시면 응급실로 모시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죠. 미리 준비해서 ‘맞이하는 죽음’이 됐으면 해요. 아, 그리고 저는 갈 때 법복을 입고 갈 겁니다.”
사진. 정승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