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지혜의 법을 향해 가다
저작·역자 | 관조 사진 · 문도회 엮음 | 정가 | 15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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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2-10-24 | 분야 | 예술>사진 |
책정보 |
ISBN9791192476469 ( 1192476468 ) 쪽수352쪽 크기 258 * 330 * 35 mm |
관조 스님의 유고 사진집
카메라를 들고 지혜의 법을 향해 가다
사진집 『觀照(관조)』는 수행자이면서 사진가로 한국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관조(觀照) 스님(1943~2006)이 1975년부터 근 30년간 찍어온 20만 점이 넘는 사진 가운데 불교 관련 사진 278점을 엄선해 담은 유고 사진집이다. 『관조』는 1980년 출간된 스님의 첫 사진집 『승가1』,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선’에 선정된 『사찰 꽃살문』을 비롯한 20여 권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필름카메라로만 작업한 사진들로 이루어졌고, 주로 소재별로 나뉘었던 전작들과 달리 한국 불교의 모든 소재를 총망라하였으며,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사진들이 수록작의 절반을 차지한다.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광대한 우주 공간의 그 어느 것이나 다 부처의 법신입니다.”라는 관조 스님 생전의 말씀을 구현하는 이번 사진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스님이 십 대 시절부터 뿌리내렸던 불가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삼십 대 초반에 해인사 강원에서 강주(講主) 소임을, 범어사에서 총무 소임을 맡은 이후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고 1978년부터 범어사에 주석하며 스스로 익힌 사진기술을 수행과 포교의 방편으로 삼아 전국 산사를 돌아다녔던 관조 스님의 필름들은 현재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필름을 스캐닝하여 수록한 『관조』의 사진들은 선명한 해상도의 디지털 사진과 대조적으로 톤 다운되어 색감이 깊고 무거우며 피사체가 확연히 도드라지지 않아, 감상자가 천천히 세심하게 살펴볼 때 그 안에 깃든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사진의 특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관조』는 일반적으로 사진집에 많이 쓰는 색감 표현에 좋은 종이가 아닌, 계조 표현에 좋은 종이를 선택하여 인쇄했다.
유·무생 모두를 가리지 않고 귀하게 여긴 스님의 사진에는 아웃포커싱 된 것이 드물고, 대부분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오늘날의 디지털 사진, 색다른 앵글과 기술을 추구하는 사진들과 비교했을 때 일견 단조롭거나 가라앉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성의 측면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빛을 발한다. 스님의 사진은 오로지 대상과 바라보는 사람의 교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빛을 통과한 대상들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사진을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으로 들어와 여운을 남긴다. 현란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평범하고 꾸밈없는 차분한 응시’는 비범한 힘을 분출한다.
1943년 3월 19일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 1960년 1월 15일 부산 범어사에서 지효 스님을 은사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였다. 이후 1961년 4월 15일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하안거를 시작으로 9안거를 성만하고, 1965년 7월 15일 합천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1966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하고, 1971년 해인사 승가대학 제7대 강주로 취임해 후학을 양성했다. 1976년 부산 범어사 총무국장 소임 이후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았다. 1978년부터 범어사에 주석하며 사진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 30여 년간 전국 산사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는 운수납자의 길을 걸어왔다.
관조 스님 사진의 묘미는 필터나 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단순함과 담백함에 있다. 1980년 『승가1』을 시작으로 『열반』, 『자연』, 『생, 멸, 그리고 윤회』, 『님의 풍경』 등 20여 권의 사진집을 출간하였다. 그중 『사찰 꽃살문』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선에 선정되었다. <아시안게임 경축사진전>(1986년), <한국일보 올림픽 문화행사 초청전시>(1988년) 등 10여 차례의 전시회를 가졌다. <관조 스님 사찰 꽃살문 사진전>(2003년)은 국립청주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광주, 제주, 춘천, 부산, 서울 등 ‘국립박물관 순회 전시’를 했으며 로스앤젤레스(1982년), 토론토(1991년), 시카고(1994년) 등 해외전시 외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부산미전 금상(1978년), 동아미전 미술상(1979년), 현대사진 문화상(1988년)을 수상하였다.
‘관조(觀照)’라는 법호대로 사진을 수행이자 포교의 방편으로 삼아온 사진작가 관조당 성국 스님은 지난 2006년 11월 20일 세수 64세, 법랍 47세로 범어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스님이 남긴 사진 필름은 20여만 점에 이른다.
만물은 나와 한몸이다
『관조』는 스님의 출가본사이자 평생을 주석했던 부산 범어사 사진으로 시작한다. 속세와 탈속의 경계인 사찰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당간지주를 만나게 되고, 곧이어 절집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열린 공간이 나타나고, 그곳에 어우러진 탑과 석등을 둘러본 후 대웅전을 포함한 각 전각을 살핀다. 그러고 나서 그 안의 불상, 탱화, 닫집, 문살, 수미단, 나한, 단청 등을 하나하나 보듬는다. 이어 수행자들의 일상 공간인 승방, 공양간 등의 사계절 모습을 들여다본 후, 다비식과 수계식을 비롯한 특별한 의식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종, 부도, 탑비 등까지 두루 짚은 뒤에 다리를 건너 폐사지로 향하는 흐름이 『관조』가 인도하는 여정이다.
이 만행의 길에는 자연과 인간의 만화(萬化)가 숨 쉰다. 종교를 넘어 수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큰스님들의 친근한 모습, 쉽게 볼 수 없거나 이제는 볼 수 없는 문화유산들의 소중한 모습들이 함께한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도 환한 명예를 얻는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돌계단, 기와 등 그저 묵묵히 세월의 자국을 간직해온 사물들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찰의 모든 대중이 모여 땀 흘리며 일하는 울력을 통하여 수행과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현장도 만날 수 있다.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다가 잠시 밖으로 나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직전의 자연스러운 찰나를 담은 스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다양한 형상의 나한을 연상케 한다. 전각의 검은 그림자, 누군가 켜놓았을 촛불 등 스님이 포착한 순간적인 장면들은 그 당시에 현실로 존재했을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처럼 스님의 렌즈 속으로 들어온 옛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너무도 고졸하고 푸근하다.
특히 스님의 ‘꽃살문’은 일찍이 서구에서도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인정받았으며, 전국의 국립박물관과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 스님의 사진은 자연물의 모습을 선구적으로 추상화·패턴화하여 일상적 예술의 세계로 승격시켰다. 그밖에도 기와, 담장 등 사찰의 구석구석을 담은 사진들은 그것들이 얼마나 정교한 구성과 깊은 뜻을 품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관조』는 사찰이 자연과 어우러져 존재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찰 속 전각과 탑 등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들이 자연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자연과 하나되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자연의 풍화에 의한 변형을, 건물이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가는 완성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현대 건축 이론가들의 말에 앞서, 스님은 이미 그 메시지를 언어 대신 이미지로 또렷하게 형상화했다.
“모든 것이 부처의 법신”이라는 스님의 화엄 세계는 ‘있는 그대로’ 이 사진집을 넘기는 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관조』가 스님의 발원대로 한국의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할 것을 기대하면서, 아울러 사진이라는 평면의 이미지가 그것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선들과 만남으로써 또 다른 담론(談論)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찰나를 상상해본다. 스님의 법명과 같이 그윽이 관조하면서, 만물을 평등하고 넉넉하게 품어왔던 스님의 삶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한다.
森羅萬像天眞同 삼라만상천진동
念念菩提影寫中 염념보리영사중
莫問自我何處去 막문자아하처거
水北山南旣靡風 수북산남기미풍
삼라만상이 본래 부처니
찰나의 깨달음을 한 줄기 빛으로 담았네.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
동서남북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
_관조 스님 열반송
_승원 스님, ‘출간의 변-사진은 스님의 사리입니다’에서
스님의 작품이 곧 스님이며 불법을 시각적으로 펼쳐 보인 법문입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작품집을 통해, 스님의 원력과 진면목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_정우 스님, ‘스님을 그리워하며-은혜로 오신 스님, 참 스승님!’에서
스님의 사진을 처음 봤던 날을 잊을 수 없다. 80년대 중반쯤이었다. 사진가가 돼보려고 미국 뉴욕에서 발버둥을 치며 매일매일 혈투를 벌이듯 살 때였다. 최고의 예술 관련 전문서점인 ‘리촐리’를 지나다가, 유리창 너머로 비친 어느 책의 표지사진 한 장에 온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감이 열려 있는 감나무 사진이었다.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무엇에 홀린 듯 나를 잡아당기는 힘에 이끌려 서점에 들어가 책자를 집어들었다. ‘관조’라는 이름을 가슴에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_준초이(사진가), ‘스님을 그리워하며-감동으로 다가온 사진 한 장의 인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