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한거] 맑고 또렷하게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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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한거] 맑고 또렷하게 깨어 있으라
  • 석두 스님
  • 승인 2022.1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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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제도적 장치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정책 중에서도 빈승(貧僧)은 아마도 정치가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나라의 정치적 제도에 접근해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간접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작은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일 것이다.

미국 44대 대통령인 오바마는 케냐 태생의 아버지와 캔자스주 출신의 어머니를 둔 중산층에서 태어났다. 시카고로 이주한 그는 교회 단체와 함께 철강공장 폐쇄로 타격을 입은 지역사회 재건에 힘쓴 지역 인권변호사였다. 하지만 미국 한 주의 인권변호사로는 한계를 느끼고,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해 개인의 생각을 제도적으로 확대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깨어 있는 시민의식의 연대’를 살아생전에 강조하셨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도 좋은 예다. 좋은 국가적 시스템의 구축은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모두가 정치를 할 수도 없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한 개인의 힘은 미미하다. 하지만 그 작은 힘을 우습게 볼 때, 정치가들은 쉽게 오만에 빠지게 된다. 역사적으로 종교 권력은 그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정치 권력과 결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세계화는 로마의 국교화(國敎化)에 힘입은 바 크다.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은 아마도 개인의 일상적인 작은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이 없는 개인의 행복은 사상(沙上)의 누각일 뿐이다. 그래서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갖고, 제도적 장치의 완성을 위해서 각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도 그러한 공동의 행복을 위해서 시민의식의 함양에 일조할 수 있을 때, 종교는 그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오늘은 여기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깨어 있는 정신으로 남고자 했던 조선의 한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바로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이다. 그는 조선 시대 역사적 사화(士禍)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안일이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던 지식인 중 한 명이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가장 많은 의병장을 배출했던 의병장들의 스승이었다.

용신용근(庸信庸謹)
한사존성(閑邪存誠)
악립연충(岳立淵沖)
엽엽춘영(燁燁春榮) 
말은 떳떳하고 미덥게 
행동은 떳떳하고 신중하게,
사악한 것은 막아야 하고 
정성스러움은 간직하며,
산처럼 우뚝하게 연못처럼 깊게 하며
찬란한 봄처럼 피어나고 피어나리

윗글은 남명 선생의 좌우명(座右銘)이다. 평생을 재야의 처사(處士)로 살았지만, 그는 늘 ‘경(敬)’과 ‘의(義)’를 마음에 품고 산 인물이었다. 백성의 마음을 하늘의 마음처럼 여겼으며, 절대왕권 앞에서도 ‘의’를 위한 일이라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쪽 같은 선비였다. 

‘남명(南冥)’의 의미는 『장자』에서 ‘큰 바다’를 의미한다. 비록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비이지만, 그의 마음은 작은 것이 아니다. 그가 평소에 지니고 다녔다는 검명(劒名)은 다음과 같다.

의내명자경(義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     
안으로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이 ‘경’이요.
밖으로 시비를 결단하는 것이 ‘의’이다.

문(文)을 중시하는 유학의 사회인 조선의 선비가 평소에도 칼을 차고 다닌 것만 보아도 그의 실천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칼에 새긴 글귀는 ‘경’과 ‘의’이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이 ‘대의적 예(禮)와 충(忠)’에 충실한 관료적 인물이었다는 점과 많이 비교되곤 한다. 

조선왕조 13대 임금인 명종 시대의 남명 조식은 특이한 선비였다. 스무 살 때인 중종 15년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도 『대학(大學)』의 책갑(冊甲, 겉장이 상하지 않게 종이·비닐·헝겊 따위로 덧씌운 것)에 “과거시험은 애초에 장부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라고 썼다. 

서른 살 때 이언적의 천거로 된 헌릉참봉을 거절, 명종 3년 주생서 주부에 제수됐으나 거절, 명종 6년 종부시 주부에 다시 제수됐으나 거절, 명종 10년 단성현감에 임명됐으나 거절했다. 당시 정치 환경은 척신 윤원형이 주도하는 사화의 시대이고, 조식과 가까운 이림, 곽순, 성우, 송인수 등이 사사(賜死, 임금이 독약을 내려 자결하게 함) 당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명종 8년 퇴계 이황은 조식의 벼슬 사양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편지로 드러냈다. 조식의 답장은 “(…상략…)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물건(관직)을 훔치는 데 있어서겠습니까? (…하략…)” 남명에게 있어 관직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신념을 평생 지켰다.

하지만 현실을 회피한 은둔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조정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장의 상소가 그를 전국적 스타로 만들게 된다. 그것이 유명한 ‘단현감 사직소’이다.

“(…상략…) 전하의 국사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이 망하여 천의가 떠나갔고 인심이 떠났습니다. (…중략…) 소관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면서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은 위에서 어물거리면서 오직 재물만을 불립니다.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으며(…중략…) 신은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밤에 멍하니 천장만을 쳐다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자전(慈殿, 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하략…)”
__ 『명종실록』 10년 11월 19일 

당대의 금기어인 문정왕후를 과부라 칭하고, 어린 왕 문종을 고아라 칭했으니, 목숨을 내놓은 직언이었다. 조식이 생각하는 정치는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며, 이는 곧 백성들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었다. 『서경(書經)』 「소고(召誥)」의 “백성의 암험함을 돌아보아 두려워하소서”란 글의 ‘민암(民巖, 험악한 민심)’에서 나온 다음의 시 〈민암부(民巖賦)〉를 보자.

주이시행 역이시복(舟以是行 亦以是覆) 
민유수야 고유설야(民猶水也 古有說也)
배는 물 때문에 가기도 하지만, 
물 때문에 뒤집히기도 하다네.
백성이 물과 같다는 소리, 
옛날부터 있었다네.

민칙대군 민칙복국(民則戴君 民則覆國)
암불작어계곡 원독재중 일념심예
(巖不作於谿谷 怨毒在中 一念甚銳)
백성들이 임금을 떠받들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나라를 뒤집기도 한다네.
위험은 산골짜기에만 있는 건 아니라네.
원한이 마음속에 있게 되면, 
한 사람의 생각이 아주 날카롭다네.

필부호천 일인심세 연소격지무타 
천시청지재차
(匹夫呼天 一人甚細 然昭格之無他 天視聽之在此)
보잘것없는 아낙네라도, 
부르짖으면 하늘이 호응한다네. 
하늘이 감응하는 것은 다른 이유 없어, 
하늘이 이 백성들을 통해서 
보고 듣기 때문이라네.

구궐암지소자 단부외호일인 
유일인지부양 위어시이갑잉
(究厥巖之所自 亶不外乎一人 
由一人之不良 危於是而甲仍)
그 위험함의 근원을 찾아보건대, 
정말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네.
임금 한 사람이 어질지 못한 데서, 
위험이 극에 이르게 된다네.

궁실광대 암지여야 세렴무예 
암지적야 사치무도 암지입야
(宮室光大 巖之與也 稅斂無藝 
巖之積也 奢侈無度 巖之立也)
궁궐을 넓고 크게 짓는 일은, 
백성들을 성나게 하는 시초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임은 
백성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킴이요.
도에 지나친 사치함은, 
백성들의 분노를 끌어냄이요.

『남명집(南冥集)』에 실린 〈민암부〉에서 선택적으로 발취한 시에서 그가 생각하는 정치가 보이고 백성이 보인다. 한평생 재야의 처사(處士)로 생을 마감한 남명 조식은 과거의 잊힌 인물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과거를 통해 깨어 있는 자만이 현재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교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지만, 종교인들도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선생께서 평소에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방울의 이름처럼. ‘성성자(惺惺者)’, “맑고 또렷하게 깨어 있는 정신.” 

 

석두  스님
1998년 법주사로 출가했으며 해인사, 봉암사 등에서 20안거를 성만했다. 불광사, 조계종 포교원 소임을 역임했으며, 현재 봉은사 포교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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