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기고 염원하다, 팔만대장경] 미래의 한글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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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기고 염원하다, 팔만대장경] 미래의 한글대장경
  • 이재수
  • 승인 2022.09.28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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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의 대장경,
새로운 천년 위한
우리말 대장경

부처님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전승되는 전통은 불교사의 근간이다. 경전은 뗏목으로 부처님의 진리로 인도하는 도구이지만, 말과 글은 시대와 사회적 환경의 테두리 안에 있다. 그래서 반드시 대중들에게 읽히고, 나뉘고, 소통돼야만 한다. 과거의 부처님 말씀을 현재의 우리가 알아듣고 나눌 수 있는 말과 글로 풀어내는 일들이 바로 ‘역경(譯經)’ 작업이다. 즉, 역경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기울여 삶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그러한 결과가 모여 한글대장경에 담겨왔다. 

 

역경(逆境) 헤친 역경(譯經) 사업

한글대장경은 고려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한 우리말 대장경이다. 한국불교에서 법보로 계승돼온 고려대장경을 대상으로 한다. 고려대장경은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그 가치를 온전히 다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거룩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한자로 판각돼 이를 그대로 활용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조선시대에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가장 먼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이 한글로 출간됐다. 바른 소리로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펴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일제강점기 용성 스님은 1921년 ‘삼장역회’를 조직해 『금강경』, 『화엄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을 우리글로 옮겨 출판하며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한글대장경은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 출범 이후 역경사업을 중점과제로 추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964년 7월 21일 동국대 동국역경원이 개원했고, 고려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해 총 250책 한 질로 간행할 계획을 발표했다. 1965년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이 2,000부 출간되면서 한글대장경 출간사업이 그 출발을 알렸다.  

한글대장경은 당시 불교계 내부의 역량과 재정적인 지원의 한계로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못했다. 중간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거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온갖 역경(逆境)을 헤치고 이룩해온 역경(譯經) 사업은 2001년 제318책 『일체경음의색인』을 출판함으로써 완간됐다. 이로써 동국역경원이 36년간의 대장정을 거쳐 추진했던 한글대장경 출간사업도 일단 마무리됐다.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불전은 1,514부지만 318권의 한글대장경에 수록된 불전은 1,618부다. 한국 찬술 불전들을 수록한 것이다.

한글대장경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역경사업의 결실이다. 나아가 우리말 대장경 역경불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찬술 불전들을 대장경에 편입해 한국불교의 자긍심을 높이고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한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크게 부여할 수 있다. 

한글대장경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역경사업의 결실이다. 나아가 우리말 대장경 역경불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찬술 불전들을 대장경에 편입해 한국불교의 자긍심을 높이고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한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크게 부여할 수 있다. 

2001년 완간된 한글대장경은 한국불교사를 통틀어 불교가 사회적 소통을 위해서 가장 치열하게 노력했던 최고의 불사로 평가된다. 고려대장경이 지닌 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를 현대에 계승했으며, 여기에는 37년이라는 세월 동안의 한국불교 역량과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됐다. 

종단의 3대 역점 사업으로 시작됐으나, 동국역경원에 그 짐이 고스란히 떠넘겨졌다. 그야말로 동국역경원은 예산과 조직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역경 극복의 길을 걸어왔다. 초창기에는 생사윤회(生死輪回)를 ‘죽살이 바퀴돌이’로 하는 등 불교 용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번역자의 불교적 소양과 학술적 역량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해오며 역경 예규(例規)를 준수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역경 인력 양성의 한계를 뚫고 이룩해온 역경 불사의 결실이기도 했다.

특히 국가적 지원의 한계와 지속가능성이 문제였다. 고려대장경은 세계기록유산이자 민족의 정신과 얼이 담긴 문화적 공공재다. 이를 우리글로 번역하는 일은 국가사업이 돼야 마땅하지만, 정부는 불경이라고 늘 한 발을 빼고 접근해왔다. 유교 경전과 유가 문집을 중심으로 다루는 한국고전번역원이 국가 공공기관으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과 통합대장경

전자불전은 불교 경전을 웹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열람하고 검색하도록 만든 ‘디지털 대장경’이다. 디지털 대장경 프로젝트는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1996년 1월 해인사 소장 고려대장경 81,258장(5300만여 자)을 전산화했고, 검색프로그램 개발과 DB구축을 완료해 2000년 말에 CD-ROM을 출시했다. 고려대장경연구소의 종림스님을 비롯한 ‘전자불전 보살’들의 노력의 성과다. 이러한 성과들을 지금은 인터넷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2001년 동국대 동국역경원과 전자불전연구소는 한글대장경 완간이라는 시점에 맞춰서, 현대 통용되는 우리말로 한글대장경을 개역하고 이를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는 ‘한글대장경 개역 전산화 사업’을 수행해 2012년에 완료했다. 한글대장경의 DB 구축과 검색시스템으로 한글대장경의 활용도를 극대화한 것이다.

전자불전은 디지털 시대에 불교학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불교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기존의 대장경 시대에서는 출판 인쇄본 대장경의 총서는 문화 권력의 획득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일본에서 조선에 여러 차례 대장경의 완질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장경의 디지털화는 인터넷의 ‘공유’를 통한 지식 대중화의 출발점이자 법보 사회화의 완성인 셈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수행한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kabc.dongguk.edu) 구축 사업으로 ‘통합대장경’을 구축했다. 고려대장경연구소의 ‘고려대장경 지식베이스’와 동국대의 ‘한글대장경 개역 전산화 사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그 성과를 확산했다. 통합대장경은 대장경이 지니는 불교 기록유산의 원전 가치를 확립하고, 대장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불교 지식 생산의 원동력을 심화하며, 대장경에 담긴 다양한 가치를 아카이브 서비스라는 소통으로 문화창조의 미래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통합대장경은 이미지-텍스트-번역문을 의미·형태 단위로 제공하는 구조다. 고려대장경 경전의 내용에 따라 문단 단위로 한문과 한글 번역을 이미지와 함께 볼 수 있도록 했다. 애초 15년 동안 사업을 수행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통합작업만 일부 남겨진 상태다.  

 

한글대장경의 미래를 위해

말과 글은 살아 있다. 한글대장경도 한국불교의 사회적 소통의 결과 및 성과를 담는 생명체다. 끊임없이 살아서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늘 대중들에 의해 읽히고, 검증되고 수정·보완을 통해 업그레이드되는 ‘디지털 아카이브 한글대장경’이 돼야 한다. 

첫째,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열린 한글대장경 아카이브를 지향해야 한다. 이용자는 더 이상 뷰어를 통해 열람만 하고, 검색 결과만 들여다보는 독자로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용자는 대장경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해석·가공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소셜 네트워킹을 통해 역동적으로 배포하고 복제와 생산을 무한 반복하는 적극적인 생산자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대장경은 소셜 미디어와 다양한 문화 서비스 플랫폼으로 누구든 콘텐츠를 유통, 재유통, 확산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붓다의 말씀은 누구든지 함께할 수 있는 ‘공유’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서비스의 확장성을 고려해야 한다. 스마트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와 표현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에 대장경을 비롯한 다양한 기록유산과 콘텐츠들은 서비스 확장성을 반영해야 한다. 경전이 스토리텔링을 위한 원천 소스로 활용되고, 문화콘텐츠 창작 소재가 될 수 있도록 원문과 번역문은 물론 관련 메타데이터들까지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속가능성이 확보돼야 한다. 21세기 디지털 대장경 조성불사를 위한 안정적인 인프라가 필요한데, 다양한 서비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시스템, 네트워크, 역경 인력 양성 등이 기본이 돼야 한다. 반드시 불교계, 학교, 종단의 협력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대장경을 현재에 살아 있도록 숨결을 불어넣은 수많은 ‘역경보살’과 한글대장경을 읽고 나누는 ‘구독보살’, 다양한 문화창조의 현장에서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대장경을 나누는 길에 늘 함께하기를 발원한다. 

 

이재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2002년 동국대 전자불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한글대장경 전산화 사업을 비롯해 불교 경전 전산화 사업을 수행했고, 2012년부터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사업에서 DB팀장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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