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지음 주성원 옮김 |
정가 | 17,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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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22-06-25 | 분야 | 인문 |
책정보 |
판형_130*200mm 두께_1.7cm 256쪽 | 2도 | ISBN 979-11-92476-07-0 (03100) |
죽음이 삶을 결정한다!
후회 없이 살려면 죽음부터 숙고하라!
세계 5대 종교와 문명이 말하는
미지의 사후 세계를 탐험하다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은 완전히 다른 상태이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 _ 레프 톨스토이
동물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도, 꼭 신에 가까워지고 싶어서가 아니라도,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왜일까? 바로 잘 살기 위해서다. 어떤 게 잘사는 삶인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가지 전제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부모도 친구도 전지전능한 신의 뜻도 아니다. 오직 내 뜻대로 살아갈 때 바라는 삶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관점이 확고한 사람은 죽음을 겁내거나 피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삶의 태도가 결정된다. 죽음은 삶을 소중하게 다뤄야 할 무언가로 만들거나 혹은 그와 정반대의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죽음이 삶을 이끄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하는 주체적인 행위이다. 죽음이 삶을 결정한다.
이 책은 인류 최대의 지적 재산인 세계 5대 종교와 그로부터 이룩된 거대 문명이 묘사하는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살아서는 접근 불가능한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스케치를 그리며, 이를 토대로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이끈다. 정해진 답은 없다. 길이 있을 뿐이다. 원하는 대로 살다가 원하는 대로 죽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후회 없이 죽고 사는 법’에 관한 안내서다.
지은이_ 하시즈메 다이사부로(橋爪大三郎)
1948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연구 박사 과정을 거쳤다. 현재 대학원대학 시젠칸(至善館) 교수 겸 도쿄공업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학자로서 종교와 언어학에 관한 책을 썼으며 그 밖에 비교종교학, 현대사회론, 현대 아시아 연구를 비롯해 일본 근대사상 연구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언어 게임과 사회이론》, 《처음 접하는 구조주의》, 《처음 접하는 언어 게임》, 《놀라운 중국》, 《세계를 이해하는 종교사회학 입문》, 《하시즈메 다이사부로의 사회학
강의》, 《불교의 언어 전략》, 《왜 법명을 스스로 만들어도 되는가》, 《하시즈메 다이사부로와 함께 생각하는 종교의 책》 등이 있다. 사회학자 오사와 마사치(大澤真幸)와 함께 쓴 《수상한 기독교》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옮긴이_ 주성원
일본 류코쿠(龍谷)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뜻하지 않게 문학부 수석 졸업을 하게 되어 용기를 얻어 같은 대학교 불교학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하지만 광활한 인문학 세계가 만만치 않음을 알고 석사 졸업 후 귀국했다. 뼛속까지 골수 문과 출신인 탓에 졸업 후 글 다루는 일로 먹고살고 있다. 현재 신생 1인 출판사 ‘마르가’ 대표이다.
시작하며
1장 죽음은 생각하기 어렵다
내가 사라진다│존재한다는 것│다른 죽음은 경험할 수 있다│나의 죽음은 경험할 수 없다│시작과 끝은 알 수 없다│우리가 알고 있는 세 가지│과학은 답을 할 수 없다│철학과 종교의 가능성│여섯 가지 철학적 패턴│죽음에 관한 빅데이터
2장 죽음은 신의 뜻이다: 일신교는 이렇게 생각한다
신이 만든 세상│신의 메시지│세상은 신의 의지다│사람도 신의 의지다│특별한 피조물│신에게 감사하라│세상은 신의 소유다│언젠가 세상은 끝난다│최후의 심판│종말의 풍경│사람의 부활│부활은 두 번째 창조다│사람은 죽지 않는다│부활을 믿는다는 것│자연법칙과 창조│이슬람교의 기본 신앙│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들│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사람이 부활하는 이유│예수의 가르침│구원받은 자들의 세상│파격적인 교회와 종파들│일신교의 세 가지 본질│프리스타일 일신교도로 살기
3장 죽음은 우주의 질서다: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끝없는 인과의 네트워크│내면 탐구의 기술│내 안에 우주가 있다│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우파니샤드의 철학│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살아있다는 건 착각이다│깨달은 자의 태도│수행은 가치 있는 행위다│브라만이 만든 서열│사람은 무엇으로든 다시 태어난다│죽음에 관한 두 가지 다른 생각│반항아 고타마 싯다르타│붓다는 사람일까 신일까│세상의 존경을 받는 분│신의 수만큼 많은 붓다│영원히 죽지 않는 붓다│진리의 상징 비로자나불│우주를 형상화한 만다라│붓다는 신보다 위대하다│초기불교가 말하는 죽음│소승불교가 말하는 죽음│대승불교의 보살과 공│대승불교가 말하는 죽음│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나는 이미 붓다다│좌선하면 붓다가 된다│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4장 사람은 죽어서도 산다: 중국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유교는 종교일까 아닐까│삶이 고달프면 죽음은 뒷전이다│유학의 성공 비결│충과 효│죽은 자를 위한 역사는 없다│죽음을 외면하다│무위자연과 죽은 자의 나라│유학을 닮은 불교│유학과 도교의 크로스오버│공산주의로 병든 사회│유학처럼 생각하기│도교처럼 생각하기│죽은 자는 죽은 자로 산다
5장 죽음은 현실의 반영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조몬 시대│야요이 시대│고훈 시대│불결한 귀신들의 세상│자연이라는 미지의 세계│신도 죽는다│인간적인 신들의 세계│신화는 현실의 반영이다│신을 몰아낸 불교│불교와 신도의 공존│불교식 장례의 유행│죽으면 붓다가 된다│거대 불교 종파의 탄생│염불하면 극락에 간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염불종│좌선이 진짜 불교다│선으로 죽음을 넘다│미래를 예언하는 경전│깨달음보다 중요한 것│보살로 살고 보살로 죽다│실패한 불교 원리주의│개성이 사라진 일본 불교│망자를 위한 법회│충과 효는 하나다│죽음에 무관심한 일본 유학│국학이 말하는 죽음│나라를 위해 죽으면 신이 된다│국민이 따라야 할 신성한 의무│서양 의학과 현대의 죽음│나의 죽음은 나의 것일까│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6장 죽으면 어떻게 될지 스스로 결정하라
죽음은 훈련 없는 실전이다│누구든 죽으면 사라진다│허무주의자의 생각│상식적인 무신론자의 생각│ 허무주의자와 이기주의자│합리주의의 한계│종교와 과학의 공존│기적은 합리적이다│신을 믿는 합리주의자│합리주의자를 위한 일신교│신비주의 범신론│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염불하는 합리주의자│좌선하는 합리주의자│법화경과 합리주의자│언젠가 죽음을 생각할 때가 온다│삶과 죽음은 지식 바깥에 있다│두 줄로 정리하는 종교│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왜 종교를 알아야 할까
후기
죽음에 관한 77가지 명제
죽음을 사유한다는 건
인간이라는 증명이다!
죽음이 삶을 결정한다! 이렇게 힘주어 말해도 평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느 시대나 그랬다. 죽음은 항상 인류의 큰 숙제이자 관심사라고 하는데, 왜 정작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죽음은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죽음은 언제나 인간의 제일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죽음이 무엇인지,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과학과 첨단 기술의 진보도 답을 하지 못한다. 지성의 역사와 지식의 총합으로도 풀지 못한 난제를 평범한 사람이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골치가 아프다.
둘째, 죽음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죽는 건 무섭다. 알 수 없는 막연함에서 오는 공포와 두려움, 슬픔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무섭고 께름칙한 일은 되도록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본성이다. 생각한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괜히 기분만 나빠질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숙고하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나 ‘나’의 죽음은 더욱 생각하기 힘들다. 타인이나 다른 생명의 죽음은 간접 경험할 수 있지만 ‘나’의 죽음은 결코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죽는다! 어떤 느낌일까? 직접 죽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세상은 또 어떻게 될까? 가족과 친구들은? 공허하고 막연하고 두렵지만, 이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한 천착이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첫걸음이다.
죽음은 쉽게 생각할 수 없고 깊이 생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은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다른 종(種)과 인간을 구별 짓는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이며, 그로부터 한층 넓어진 안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시대를 거쳐 축적되어 온 죽음에 관한 인간 사유의 결정체이자 국적과 인종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유익한 참고 자료이다. 긴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진 기존의 사후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도 좋고, 이를 토대로 새롭게 자기만의 죽음을 써 내려가도 좋다.
답은 없다, 길이 있을 뿐!
세계 5대 종교가 묘사하는 사후 세계를 유영하며
나만의 죽음을 스케치하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시작인 1장은 죽음의 불가지성과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며, 마지막 6장은 전체 내용을 아우르며 요점을 간략히 정리한다. 2장부터 5장에서는 종교와 문명이 정의하는 죽음과 사후 세계관을 상세하게 다룬다. 순서대로 일신교(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 다신교(힌두교·불교), 중국 문명(유교·도교·불교), 일본 문명(신도·불교)에서 말하는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에 관해 설명한다. 이른바 세계 5대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죽어서 어떻게 될까?’ 이 근원적인 물음에 관해 각각의 종교는 완전히 다른 답을 들려준다. 일신교는 모든 일은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은 신의 영역이라 인간이 어쩌지 못한다. 사람이 할 일은 자신을 존재케 해준 신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면 신의 구원을 받아서 ‘신의 왕국’으로 가 영원히 신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반면 인도의 다신교는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우주의 질서이며 이는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흘러간다고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동물이나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는 이번 생의 노력에 달렸다. 복을 짓고 부지런히 수행할수록 더 나은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다. 중국의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상이 되어 후손들을 돌봐주며, 도교에서는 죽은 자의 나라에 가서 산다. 일본의 민족 종교인 신도(神道)는 사람이 죽어서 황천으로 가거나 신이 된다고 말한다.
죽음에 관한 정설은 없다. 이 책 역시 무엇이 정답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각 종교와 문명이 가진 사유의 특징과 핵심, 서로 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을 보여준다. 혼자서는 골몰해도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힌트를 종교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오해는 말자! 이 책이 종교의 사유를 들여다보고 종교의 생사관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특정 종교를 강조하거나 강요하는 건 아니다. 개인의 죽음은 선택과 신념의 문제이다. 중요한 건 신앙심이 아니라 죽음에 관한 자신만의 확고한 관점이다. 물론 무언가를 향한 ‘믿음’을 가진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맹신이 아닌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진리를 보는 눈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죽음은 연습과 훈련 없는 실전이다
죽기 전에 어떻게 죽을지 결정하라!
곳곳에 죽음이 있다. 그것은 예고 없이 불쑥 우리를 찾아온다. 살다가 죽음이 닥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면 사는 게 두렵고 허망하다. 소중하게 아끼는 존재와의 헤어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슬프고 가슴 아프다. 그래서 가능하면 죽음을 잊고 살려고 하지만 살다 보면 반드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때가 온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듯이 죽음에 관한 생각 역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이 책은 그런 순간을 위한 것이다. 죽음을 겁내지 말고, 뒤로 밀쳐 두지 말고, 당당히 마주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든, 우주의 법칙이 만들었든, 인간은 분명히 특별한 존재다. 인간만이 죽음을 깊이 사유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고 나서 어떻게 될 것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과 그에 따른 결정이 삶을 더욱 단단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왜냐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과 걱정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 문제를 해결한 사람에게 나머지 시련은 삶의 사소한 과정일 뿐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 사는 게 두렵지 않다.
“죽음에 맞서려면 언제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방법밖에 없다.”
_ 저자의 말
바나나가 존재한다. 이 말은 적어도 누군가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만약 누구도 바나나를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면 바나나의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면 ‘바나나가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 존재하는 건 경험으로 알 수 있다. _19쪽
사람은 부활한다. 이 믿음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부활한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지만 종말이 오면 모든 사람이 부활한다. 이를 가르쳐주기 위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로 올라갔다. 언젠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후 부활한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다. _50쪽
지상과 달리 신의 왕국에는 경제가 없다. 영원한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되고 생리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음식도 필요 없고 늙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필요한 물자를제공하는 활동, 즉 경제가 사라진다. 노동도 분업도 화폐도 부자와 가난한 자도 없다. 또한 정치도 없다. 신의 왕국에서는 신이 직접 사람을 지배한다. _64쪽
인도 문명은 ‘진리를 깨닫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둔다. 브라만교도 힌두교도 불교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인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인과관계의 연쇄 네트워크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러한 인식, 즉 ‘진리를 깨닫는 것’은 가능하며 거기에 최고의 가치가 있다. 인도 사람들은 그렇게 확신한다. _83쪽
그렇다면 붓다는 사람인가? 답은 “그렇다”이다. 붓다가 사람이 아니라면 진리를 깨닫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동물은 지능이 부족해서 깨달을 수 없다. 신과 천인은 축복받은 존재여서 괴로움이 없다. 괴로움이 없으면 진리를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붓다는 사람이다.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타마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고타마는 보통 사람으로 일생을 보냈다. _104쪽
도교에는 여러 신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하늘은 천제(天帝)가 다스리고 지옥은 염라대왕이 통치한다. 심지어 역사 속 인물인 관우가 ‘장사의 신’이 되어 있다. 그밖에 각양각색의 특기를 지닌 신들이 있다. 유학을 배운 지식인들은 도교의 이론을 엉터리 미신이나 쓸모없는 말로 치부하지만, 유학이 메우지 못하는 영역을 설명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_144쪽
일본 사람 중에 ‘사람이 죽으면 붓다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인도나 중국에서 이런 말을 하면 비웃음만 당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절대로 이런 명제가 나오지 않는다. 진리를 깨달아야 붓다가 되고 그 길밖에 방법이 없다. 사람의 생사와 깨달음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예로부터 일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_169쪽
죽음에 맞서려면 언제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방법밖에 없다. 이를 다른 말로 각오라고 한다. 옛날에는 도처에 죽음이 있었다. 정말 사람이 잘 죽었다. 무사는 툭하면 싸우다 죽었다. 여성은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다들 죽어 나가니 나 역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각오로 살았다. 지금은 사람이 잘 죽지 않는다. 대신 언제 죽어도 후회 없이 사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_2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