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조안 할리팩스 지음 김정숙 진우기 옮김 |
정가 | 23,000원 |
---|---|---|---|
출간일 | 2022-03-25 | 분야 | 인문 심리학 |
책정보 |
판형 신국판 (152×223mm)|두께 18mm | 400쪽| ISBN 978-89-7479-996-0 (03180) |
세계적 선승(禪僧), 미국 참여 불교의 대가,
조안 할리팩스의 역작
스트레스와 번아웃의 끝에서
고립과 단절로 자기를 방어하는 당신,
자유와 치유의 길은 연민에 있다
“오후 햇빛을 등지고 진료소로 돌아온 나는 죽어 가는 할머니 곁에 앉았다. 숨쉬기도 힘들어 하는 노인의 이마에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다음에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 곁에 앉았다. 그녀 역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진료소의 하루가 저물어 가며, 찰나의 해변에는 생사의 파도가 오가고 있었다.
마침내 밤이 오자 진료소는 문을 닫았고, 나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있는 나의 텐트로 돌아왔다. 나의 삶은 뭍 생명 곁에 있는 작은 배처럼 느껴졌다. 그 생명들은 배움을 주기 위해 우리 곁에 왔다. 히말라야의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 본문 중에서
-
‘치유’는 요즘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각박한 인간관계, 살벌한 경쟁, 팍팍한 삶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상 과제다. 치유를 위한 해결책으로 흔히 제시되는 것이 ‘이기적이 되라’다. 이것 저것 눈치 보며 타인을 배려할 것 없이 나부터 생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이기적이 되라’가 과연 진정한 치유의 길이 될 수 있을까? 타인의 존재에서 눈을 돌려 버리고 나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조안 할리팩스(Joan Halifax)는 세계적인 선승이자 미국 참여 불교의 대가인 동시에 의료 인류학자다. 저자는 ‘이기적이 되라’와는 반대되는 것, 즉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질 것을 치유의 길로 제시한다. 저자는 연민에 기반하여 이타심을 발휘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도덕적 진정성을 갖고, 타인을 존중하며,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하라고 주문한다. 때로 우리는 그러한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과의 깊은 유대를 인식하는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민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부터 스스로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나아가 우리는 모든 존재와 사물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보는 드넓은 관점, 그리고 삶과 죽음을 여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자기 치유의 수단이 되는 시대에 조안 할리팩스의 권유는 이상적인 꿈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저자의 생애는 타인을 향한 연민의 여정이었다. 그 여정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신경 과학적인 탐구이기도 했고, 죽어가는 이들의 삶과 사형수들의 삶과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치열한 실천이기도 했다. 그 기나긴 여정을 통해 저자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야말로 자기를 치유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입증해 왔다.
그 여정에서 얻은 깊은 통찰과 생생한 경험을 응축하여 조안 할리팩스는 이 책을 썼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연민은 인간이 갖출 여러 덕목 가운데 하나에 머물지 않고 나와 세계를 위한 구원의 길로 재탄생한다. 연대와 우정과 사랑이 의심받는 시대. 관계는 고통스럽고 혼자가 편안한 시대. 나홀로족과 일코노미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 있을 그림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시대. 이 시대에 드리운 고립과 단절의 깊은 어둠 속으로 이 책이 혜성과 같이 뛰어든다.
■ 저자 소개
조안 할리팩스(Joan Halifax)
세계적인 선사(禪師)이자 의료 인류학자로서 임종 돌봄 의료 분야의 선구자다. 1973년에 의료 인류학 박사를 취득하고, 하버드대학교 신학 대학과 의과 대학, 조지타운대학교 의과 대학 등에서 죽음에 관한 교육을 해 왔다. 미국 산타페에 불교 연구와 사회 운동을 위한 ‘우파야 연구소 및 젠 센터(Upaya Institute and Zen Center)’를 설립하여, 50년 넘게 참여 불교의 길을 걷고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보살피는 임상 역량을 개발시키기 위해 의료 전문가를 훈련시키는 ‘죽음과 함께 하는 삶’ 프로젝트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숭산 스님의 제자였고, 그 후 틱낫한 스님으로부터 법등(法燈)을 전수받았다. 또한 저명한 서구 선 불교 지도자인 버니 글래스맨(Bernie Glassman) 선사로부터도 법등을 전수받았다. 『죽음을 명상하다』 등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 역자 소개
김정숙
국제 공인 현실 치료 교수진(Reality Therapy Faculty)이면서 마음챙김과 컴패션(compassion) 지도자다. 경희대학교 의과 대학 간호학과와 일반 대학원을 졸업하고, 정신 간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신대학교 한의과 대학 간호학과에서 정신 간호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여의도에 소재한 ‘아시아 행복 연구원’ 대표, 경희대학교 공공 대학원 의료 관리학과 겸임 교수로 있다. 저서와 번역서로 『죽음을 명상하다』 (공역), 『오늘부터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 (공역) 등 다수가 있다. 지난 2018년에 ‘죽음과 함께하는 삶’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조안 할리팩스 선사와 인연을 맺고 제자가 되었다.
진우기
불교 전문 번역가 겸 통역가다. 서울대학교 사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Texas A&M University 석사를 거쳐,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명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로터스 불교 영어 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화해』, 『고요함의 지혜』 등 20여 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간화선』, 『위빠사나 명상일기』 등을 영어로 번역했다. 저서로는 『달마, 서양으로 가다』가 있다.
이 책에 대한 찬사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는 글
산마루 벼랑 끝에서 본 풍경
벼랑 끝 상태
진흙이 없다면 연꽃도 없다
광활한 시야
상호 의존성
공허감과 용기
I. 이타심
1. 이타심이라는 높은 벼랑 끝에서
자아, 이기적, 혹은 이타적?
자신을 잊어버리기
2. 이타심이라는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는 것
- 병적 이타심
해로운 도움
건강한가, 아닌가?
불 연꽃
이타심 편향
3. 이타심과 그 외 벼랑 끝 상태들
4. 이타심을 지원하는 수행
모름
지켜보기
연민행
5. 이타심이라는 벼랑 끝에서의 발견
나무 인형과 상처 입은 치유자
사랑
II. 공감
1. 공감이라는 높은 벼랑 끝에서
신체적 공감
정서적 공감
인지적 공감
한쪽 무릎을 꿇다
온몸이 그대로 손과 눈
2. 공감이라는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는 것
- 공감 스트레스
공감은 연민이 아니다
공감적 각성
감정 둔화와 정서 불감증
기여와 침해 사이
3. 공감과 그 외 벼랑 끝 상태들
4. 공감을 지원하는 수행
깊이 듣기
공감 관리하기
재인간화 수행
5. 공감이라는 벼랑 끝에서의 발견
III. 진정성
1. 진정성이라는 높은 벼랑 끝에서
도덕적 용기와 급진적 현실주의
서약에 따라 살아가기
2. 진정성이라는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는 것
- 도덕적 고통
도덕적 괴로움
도덕적 상처의 아픔
도덕적 분노, 그리고 화와 혐오의 경직성
도덕적 무관심과 마음의 죽음
3. 진정성과 그 외 벼랑 끝 상태들
4. 진정성을 지원하는 수행
질문의 범위 확장하기
서원에 따라 살기
감사 수행하기
5. 진정성이라는 벼랑 끝에서의 발견
IV. 존중
1. 존중이라는 높은 벼랑 끝에서
타인과 원칙과 자신에 대한 존중
손 모아 합장
타인의 발 씻기
물은 생명이다
2. 존중이라는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는 것
- 무시
괴롭힘
수평적 적대감
내면화된 억압
수직적 폭력
함께하는 권력과 군림하는 권력
존엄성을 박탈당하다
앙굴리말라
원인과 결과
3. 존중과 그 외 벼랑 끝 상태들
4. 존중을 지원하는 수행
드라마 삼각 구도
말의 다섯 문지기
자신을 타인과 교환하기
5. 존중이라는 벼랑 끝에서의 발견
V. 참여
1. 참여라는 높은 벼랑 끝에서
에너지, 관여, 효능
분주함의 선물
2. 참여라는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는 것
- 소진
누가 소진될까?
분주함에 중독되다
업무 스트레스라는 독을 마시다
3. 참여와 그 외 벼랑 끝 상태들
4. 참여를 지원하는 수행
일 수행
정명(正命) 수행
일 밖의 수행
5. 참여라는 벼랑 끝에서의 발견
놀이
연결
VI. 벼랑 끝에서의 연민
1. 친절한 자의 생존
과학과 연민
2. 연민의 세 가지 얼굴
관계적 연민
통찰에 기반한 연민
비관계적 연민
아상가와 붉은 개
3. 육바라밀
4. 연민의 적
연민의 산술
연민에 빠지기, 연민에서 빠져나오기
5. 연민의 지도 그리기
연민은 연민이 아닌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6. 연민 수행
GRACE 수행하기
7. 천장터에서의 연민
지옥으로 내려가서 중생을 구제하기
마법의 거울
감사의 말
미주
이 책은 다섯 가지 인간적인 자질, 즉 이타심・공감・진정성・존중・참여를 통해 연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성찰한다.
선한 마음 때문에 겪는 고통
자기방어를 위해 선택하는 고립
이타심・공감・진정성・존중・참여는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자질들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먼저 ‘이타심’은 ‘병적 이타심’으로 바뀔 수 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심 없는 행동은 사회와 자연계의 행복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때로는 자신을 해하거나,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해하거나, 봉사하는 기관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공감’은 ‘공감 스트레스’로 변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을 때, 그 공감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고 그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영감을 얻으며 나아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감정이입되어 자신을 그것과 너무 강하게 동일시한다면, 우리 자신이 피해를 입고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진정성’은 강한 도덕적 원칙을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진정성, 정의, 선행에 위배되는 행동에 관여하거나 그런 행동을 목격하게 되면, ‘도덕적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존중’은 존재와 사물을 받드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치관과 예의라는 우리의 원칙을 어기고 자신과 타인을 경시할 때, 존중은 ‘무시’로 바뀔 수 있다.
‘참여’는 삶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우리가 참여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일 때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 과로, 유해한 직장 환경, 효율성 부족이 개입되면 참여는 ‘소진(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선량한 존재인 인간은 이 다섯 가지 자질을 실천하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기본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량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타인과 세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고개를 돌리게 된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치유하는 연민
그리고 그 연민을 회복하는 명확한 길
이타심・공감・진정성・존중・참여라는 다섯 가지 자질이 발현하는 기반은 연민이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그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로 정의될 수 있다. 분리된 자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모든 존재와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의 보편적 연민은 무르익는다.
연민은 우리로 하여금 이타심・공감・진정성・존중・참여라는 인간적 자질을 꿋꿋이 실천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다섯 가지 자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과 함께하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회복할 수 있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 연민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속도와 성과를 중시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연민을 발휘하다가 스스로 상처를 입게 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주의를 모으기’, ‘의도를 상기하기’, ‘자신에게 조율한 후 타인에게 조율하기’, ‘무엇이 도움이 될지 숙고하기’, ‘참여한 후 상호 작용 끝내기’라는 다섯 가지 간단한 실천을 통해 일상의 삶 속에서 연민의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 저자의 말
베네딕토회 수사인 토마스 머튼은 “연민의 전체 개념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서로의 일부가 되고 서로에게 관여하는 상호 의존성에 관한 민감한 알아차림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머튼의 심오한 관점은 모든 생명을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 얽혀 있으며 서로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는 통찰력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통찰력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지 않고 사심 없는 행동을 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이것이 “원칙에 입각한 연민”입니다. 이 연민은 용기, 사랑 그리고 모든 존재와 사물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존중에 바탕을 둔 명확한 도덕적 토대를 가집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연민이 필요한지에 대한 더 큰 이해를 이 책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_ 27~28쪽
■ 영어판 추천사 중에서
“이 절묘한 작품에서 조안 선사는 가지각색의 연민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 빅쿠 보디・승려
“이 책은 조안 선사를 페마 쵸드론, 틱낫한, 간디, 도로시 데이, 토마스 머튼, 마틴 루터 킹 박사 등 최고의 스승 및 수행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한다.”
- 존 디어・신부
“이 책은 혼란과 복잡함과 갈등 속에서도 진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지침서다.”
- 신다 러쉬턴・존스홉킨스대학 임상 윤리 교수
“독특하고 용기로 가득하며 영감을 주는 이 책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된 길잡이가 된다.
- 마크 엡스타인・정신과 전문의
“명확하고도 관심을 사로잡는 방식으로 쓰였고,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덧붙여진 이 책은 영적 구도자들에 게 귀중한 정보의 원천이 될 것이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의학 박사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이 시대에 풍성한 지혜가 바로 여기 있다.”
- 마크 T. 그린버그・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석좌 교수
“추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엘리사 에펠・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교수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혁명을 겪었다. 이 혁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가정을 뒤엎었고, 물질적 재화, 성적 쾌락, 가족 관계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본질적으로 사적이라는 가정을 뒤엎었다. 경제학, 사회학, 신경 과학 그리고 심리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최신 연구는 인간이 타인의 욕구와 고통에 조율되어 있는 존재, 연민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음을 밝혀냈다. _ 29~30쪽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마침내 안정을 되찾을 수 있고, 추락하고 있는 우리 주변 사람들까지도 받아낼 수 있는 어떤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가 아니다. 그보다는 삶의 무한한 실존적 불안 위로 추락하고 있는 와중에도 안정을 되찾는 방법과, 닻을 내리고 정박하지 못한다는 느낌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타인을 돕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안식처는 전혀 땅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땅은 절대 없으리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얻는 자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서 함께 무한한 삶의 공간을 항해하고 있다. 집착은 없지만 친밀하게 말이다. _ 98 쪽
시한부 환자를 돌보는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많은 의료인들은 환자의 수명을 연장해야 하는 부담이 그것의 혜택보다 클 때 직면하게 되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털어놓았다. 어떤 이들은 생존 기간이 며칠뿐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고통스럽고 흔히 소용없는 절차)을 실시해 달라고 요구받는다. 한 의료인은 단지 의료 기관에 수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혈액 제제가 필요한 환자에게 그것을 공급하지 못했던 일화를 내게 들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처치가 실제로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두고 그들의 팀과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고, 병원 정책이나 환자의 기대 때문에 최선의 방법을 추구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일부는 소진으로 인해 도덕적 무관심에 빠져서 누군가를 돌볼 능력을 아예 잃어버렸다. _ 179쪽
라일라가 자신의 할머니는 노예였다고 말해 주었을 때, 나는 놀라서 정신이 멍해졌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노예 제도를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정말 나쁜 일임을 알았다. 여전히 우리 집안에서는 노예 제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골프, 초등학생 걸스카우트, 사업 거래 등에 관해서는 들었다.
라일라와 나는 두 개의 다른 우주에 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우주는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내 가족이 점령하고 있는 우주는 라일라의 우주를 착취했고, ‘타자화’로 유지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라일라는 자신의 인간애를 통해 인종 차별의 가혹한 현실로부터 우리 가족을 보호하던 백인의 특권에 대해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도덕적 무관심이 어떻게 우리 세상을 계속 타락시키는지에 대한 깊어가는 인식과 함께 말이다. _ 196쪽
물질적 빈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마음 상태인 ‘가난한 마음’이 감사를 주고받는 우리의 능력을 차단한다. 가난한 마음에 사로잡혔을 때, 우리는 부족한 것에 초점을 둔다. 즉,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거나, 사랑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며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무시한다. 의식적으로 감사를 실천하는 것은 마음과 진정성을 약화시키는 빈곤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길이 된다.
하루의 끝에서 느낄 수도 있는 낙담에 대처하기 위해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천천히 회상한다. 때론 방금 바라본 석양을 회상하고,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한 제자의 이메일, 또는 그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제자의 눈빛, 또는 내게 좋은 교훈을 가르쳐 준 어려움의 순간을 회상한다. 하루의 끝에 이 순간들을 모으는 것은 내게 삶과 관계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감사함의 실천이다. 이것은 일종의 축복을 세는 것과도 같다. _ 210~211쪽
일본에는 ‘황금 수리’를 의미하는 ‘킨츠쿠로이’라는 말이 있다. 킨츠쿠로이는 깨진 도자기를 수리할 때 금가루나 백금가루를 옻과 섞어서 수리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하면 그 수리에는 파손의 역사가 반영된다. ‘수리된’ 것은 삶의 연약함과 불완전성을 반영한다. 또한 삶의 아름다움과 힘도 반영한다. 그것은 완전함으로, 진정성으로 되돌아간다. _ 213쪽
교도소 안에서 일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보다 더 세다고 느껴서 폭군같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은 자신이 더 약하다고 느끼고, 종종 아직은 의식하지 못한 수치심으로 고통받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들은 자신의 취약함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자기 보호의 방법이 된다. _ 251쪽
일이 너무나 중요해진 나머지 일중독이 직장 내 높은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동료들은 지난밤 사무실에서 얼마나 늦게까지 머물렀는지, 또는 주말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했는지 서로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일중독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많은 직업과 서비스에서 사실상 요구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때문에 특히 서서히 퍼져 나가는 중독의 한 형태다. 즉, 어쨌든 일중독은 생산적이고, 일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일과 분주함에 대한 중독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도 원칙이 되고,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영성은 거의 결여된 종교다. _ 291쪽
일이 우리의 삶과 정신을 장악할 때, 우리는 아귀(餓鬼)처럼 될 수 있다. 아귀는 전통 불교에서 갈망과 중독의 쾌락적 쳇바퀴를 도는 사람의 전형(典型)이다. 아귀는 비쩍 마른 팔다리, 실처럼 가는 목, 불거져 나온 배, 너무도 작은 입과 절대 만족할 줄 모르는 식욕을 가진 걸귀 들린 중생을 지칭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귀가 무엇이든 입에 넣기만 하면 다 독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일중독은 아귀의 불행한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업무 시간과 끊임없는 활동을 우리의 작은 입속으로 계속 떠밀어 넣어, 소진이라는 유독한 화학물질로 우리 배를 불룩 튀어나오게 하는 것과도 같다. _ 293쪽
매년 나는 일본을 방문하여 의료인들에게 연민 수행을 가르친다. 전형적으로 매우 부지런한 의사와 간호사들로 방이 가득 찬다. 그들은 항상 비상 대기 중이고, 주당 최소 60시간을 일하지만, 그래도 환자나 일하는 기관을 위해 충분히 일한다고는 절대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의료인들은 한국과 중국의 의료인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내적・외적 기대에 직면해 있다. 이 세 나라 모두에서 일어나는 과로로 인한 사망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_ 296쪽
컬럼비아대학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스트레스를 다루기 위해 선(禪) 수행을 시작했고, 명상 수행을 사회 활동과 결합하기를 원했다. 모든 선 수행자들은 차례대로 주방 일을 배정받는다. 처음 선원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근 자르기의 요점은 카이 제곱 검정을 초고속으로 하듯 빠르게 효과적으로 해치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점차 이것이 정확한 요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의 관점에서 당근 자르기는 그저 당근을 자르는 것이다. 수천 개의 당근을 자르고 난 후, 나는 ‘그냥 당근을 자를 뿐’을 수행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_ 301쪽
우리는 자신에게 멈추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단지 애도하거나 치유할 시간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다. 목표 없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고, 우리 중 다수가 목표 없이 존재하며 내려놓고 배회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극도로 목표 지향적인 사회에서 게으름을 부리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사실 시간의 ‘낭비’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선에서 잘 알려진 어구로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깨달음을 포함하여 무엇이든 쫓아서 달리는 행위를 멈추라는 권유다. 그래서 나는 놓아줄 것을 나 자신에게 권유한다. 그리고 내가 우파야 선방에 앉아서 놓아주든, 또는 나의 작은 집필 공간을 벗어나 내 암자 옆 목초지로 산책을 나가든, 이것은 잘 소비된 시간이 아니라 잘 주어진 시간이다. 시간을 ‘소비할’ 자원으로 볼 때, 우리는 목적 없음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놀라움, 자양분에 접근하기 어렵다. _ 308쪽
연민을 경험하는 것은 또한 우울과 불안을 줄여 주는 것으로 보인다. 연민은 작은 자아의 편협함을 넘어 우리의 지평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연구자인 엠마 세팔라 박사는 썼다. “우울과 불안은 자아에 초점을 맞춘 상태, 즉 ‘나’, ‘나의’, ‘나를’, ‘내 것’에 몰두한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자아에 초점
을 맞춘 상태는 타인에 초점을 맞춘 상태로 전환된다.” _ 329쪽
지장보살은 벼랑 끝을 걷는다. 보살이면서 승려이고, 남성이면서 여성인 지장보살은 지옥의 문을 석장으로 두드린다. 문이 열리면 그녀는 불타는 구덩이로 내려간다. 거기에서 그녀는 고통받고 고문받는 중생의 무리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미친 듯이 뛰어들어 그들을 구하는 대신 그녀는 팔을 넓게 벌리고 서 있다. 구제를 원하는 자들은 그녀가 펼친 법복의 소맷자락으로 뛰어든다.
지장보살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 곁으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안전하고 호의적인 곳으로 피신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설령 우리가 고통받을지라도 우리는 타인이나 자신에게 연민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보살은 쉬운 상황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차림과 단호함과 궁극적으로는 호기심과 두려움 없는 마음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갈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죽음과 삶의 교차로에 서기 위해서는 지장보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들이 자유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_ 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