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如如한 달관자 박수근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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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如如한 달관자 박수근의 작품세계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2.02.2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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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관람 후기
박수근, <고목과 여인>, 1960년대 전반
캔버스에 유채, 45×38cm, 리움미술관 소장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린 이의 시선을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화가는 제한된 화폭 안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지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그 결정들의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새겨진 형상으로부터 붓질을 추적하고, 붓끝을 손에 쥔 화가의 생각과 그 생각의 바탕을 이루는 사회적, 역사적 상황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감상의 과정은 그래서 한 사람에 대한 총체적 이해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수근, 그가 남긴 그림들에 그대로 묻어 있는 시선의 온도는 따뜻했다.

 

박수근, <도마 위의 조기>, 1952
18×24.2cm, 하드보드에 유채, 개인소장

 

화가를 꿈꾸던 소년의 50년

1914년 강원도 양구, 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수근은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를 꿈꿨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어렵게 혼자 그림을 익혔다. 초등학교 담임교사였던 오득영의 격려는 그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큰 힘이었다. 미군 PX의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던 그는 1950년대 미군 부대의 종이박스로 사용되던 종이보드 위에 특별한 날 밥상에 올리던 생선인 조기를 그려 스승에게 선물했다. 사각 화면에 정직하게 그려진 사각 도마, 그 위에 또 우직하게 올려진 조기 두 마리를 담은 화면의 그 거친 표면에서 한국전쟁 이후 모두가 어려웠던 현실 속에서도 우뚝 서 살아가겠다는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피난민의 신분으로 경제적 기반도 전무했지만 성실히 그림 그리며 경력을 쌓아온 그는 1953년 국전에서 첫 입선을 한 이래 여러 국내외 전람회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인해 5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박수근, <노변의 행상>, 1956~1957
캔버스에 유채, 31.5×41cm, 개인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달관하기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박수근이 정착한 곳은 종로구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동대문시장과 가까워 일찍부터 서민들이 모여 살았고,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도 정착해 함께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이나 아기를 등에 업은 소녀, 판잣집 줄지은 골목길 등 주변 이웃들의 모습과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풍경을 여실지견(如實知見) 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만히 보면, 등장인물들은 전후라는 고단한 상황 속에서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 화가는 그들을 애처롭게도, 선하게도, 당당하게도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한 화가’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판단행위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장막과 편견, 기준 따위는 걷어내고 담담한 필체로 담아낸 실상이 불러일으키는 삶에 대한 긍정 때문이 아닐까.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정직하게 만족하며 기꺼이 생멸의 법칙을 받아들이는 달관자적 태도가 박수근의 그림에는 담겨있다.

 

박수근, <쉬고 있는 여인>, 1959
캔버스에 유채, 65.1×53cm, 개인소장

 

여여如如한 자들의 우아한 당당함

나무도, 여인도, 땅도, 공기도,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모두 공평하다. 그림의 소재는 소재 아닌 부분과 명확히 구분되기보다는 단색조에 얇은 외곽선 하나, 혹은 약간의 색 차이로 겨우 형상을 유지할 뿐이다. 박수근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인 우둘투둘한 화면의 질감(경주 남산의 마애불과 석탑의 화강암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기법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탓에 화폭에 담긴 모든 대상은 하나의 풍경으로 연결된다. 모든 소재가 서로 평평하게 다져진 화면은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연기론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 무엇도 특출나게 튀어나오거나 가라앉아 화면을 장악하지 않는다. 소재들은 물감이라는 대기에 포함돼 가만히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라는 이치를 여여히 받아들일 뿐이다. 여여(如如)는 두려움을 걷어낸 삶의 태도이다.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다. 나를 포함한 만물이 스스로 그러하니 다만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할 뿐이다. 박수근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우리가 느끼는 일종의 ‘당당함’이나 ‘의연함’은 여여함을 주춧돌 삼는다. 모든 분별의식을 떠난 자들이 풍기는 온전함의 자태, 박수근이 바라본 세계는 고단하지만 우아했다.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89cm, 리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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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peacemuseu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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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디자인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붓다아트페스티벌을 10년째 기획·운영 중이다. 명상플랫폼 ‘마인드그라운드’를 비롯해 전통사찰브랜딩, 디자인·상품개발, 전통미술공예품 유통플랫폼 등 다양한 통로로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문화콘텐츠 발굴 및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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