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한 옛 돌담길 사이로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과 고목이 어우러진 마을, 남사예담촌. 지리산 동쪽 자락 남사천이 휘감아 도는 이 고즈넉한 마을에 이호신 화백의 화실 겸 보금자리가 있다. 이 화백은 지리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위해 12년 전 서울에서 내려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하던 아내도 5년 뒤 그를 따라 내려와 산청 아트숍 ‘지금이 꽃자리’를 차렸다. 지리산 햇볕과 바람을 머금은 곶감과 꽃차, 큰 창으로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대숲이 있는 지금이 꽃자리에서 이 화백을 만났다.
작은 들꽃 안 우주
이호신 화백은 ‘생활산수화가’로 불린다. ‘생활산수’는 35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자연과 문화유산을 화폭에 담아온 그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화풍이다. 단지 산수(山水)만 그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녹아있는 마을·사람·사찰 등 살아 숨 쉬는 전통과 삶을 그린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그는 몇 날 며칠 그 일대에 머물며 산세와 생활의 기운을 느낀다. 먼저 현장을 부지런히 답사하고 관찰한 뒤 화첩에 부분 부분을 스케치한다. 이후 작업실로 돌아와 마치 퍼즐을 맞추듯 큰 화폭에 전체적으로 재구성해 넣는다. 풍경을 몸과 마음으로 육화한 이만이 해낼 수 있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작은 들꽃 안에도 우주가 들어있다는 ‘소중현대(小中顯大)’와 크게 보되 작은 부분도 세세히 살핀다는 ‘대관소찰(大觀小察)’이 저의 철학이에요. 또 자연과 문화의 조화, 즉 ‘상생’도 중요하죠. 자연 속에 문화가 녹아있기에 지리산 산세만 그리는 게 아니라, 화엄사, 실상사, 천은사, 대원사 등 그 안에 있는 사찰도 함께 그려요. 여기에 꼭 인물을 넣는데, 그래야 풍경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삶이 생생히 살아나게 돼요.”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이 실상사 약사전 철조여래좌상 후불탱화인 〈지리산 생명평화의 춤〉(2015)이다. ‘지리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완성한 이 그림에는 지리산이라는 우주가 광대하게 펼쳐진다. 큰 소나무를 중심으로 부처님, 천왕봉, 마고할미, 사찰, 서원, 반달곰, 장승, 화개장터, 농부가 피어난다. 그야말로 자연·생태·역사·민속·문화가 모두 상생하는 연화장세계다.
지리산, 변하지 않는 가치
이호신 화백이 붓을 드는 이유는 우리 자연과 문화유산의 숨결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기 위해서다. 특히 산을 주로 그리는 이유는, 한국의 자연에서 산은 빼놓을 수 없는 중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 산 밑에는 마을과 공동체가 있어 생활산수화가인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다. 지금까지 지리산을 비롯해 북한산, 도봉산, 치악산, 월출산, 오대산, 주왕산 등 수많은 산을 화폭에 담았고, 개인전도 24회 열었다.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인 2017년에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지리산은 더욱 각별한 산이다. 문화가 다른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3개의 도를 함께 아우른다는 지리산이 가진 또 한 가지 특별한 지형학적인 이유에서다.
“남북이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지리산엔 영원함이 깃들어 있어요. 백두대간의 시작이자 아버지의 산인 백두산에서 이어져 내려와 그 끝을 장식하는 어머니의 산이 바로 지리산이기 때문이죠. 지리산은 금강산이나 설악산과 달리, 험준하지 않아서 마을이 많아요. 풍부한 자원과 먹거리에다가 인심도 좋고, 공동체 마을로 살아가지요. 이런 지리산의 여러 가지 여건이 21세기의 환경과 삶을 풀어나가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호신 화백은 최근 5개년 계획으로 지리산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경남 하동에서 시작해서,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함양과 마지막으로 그가 거주하는 산청 지역까지 5개 지역을 사계절 파노라마로 그릴 계획이다.
“행복 지수는 돈이 많고 좋은 집에 산다고 높지 않잖아요. 결국엔 생명, 사랑, 건강이 잘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지 않겠어요? 지리산의 숨결을 잘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지리산에 사는 화가로서 앞으로도 꾸준히 지리산을 그릴 겁니다.”
그림. 이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