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청화 큰스님●의 제자들을 찾아서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영화 스님이 한국에 방문 온 2018년보다 훨씬 전 일입니다. 그때 만났던 청화 스님의 제자들은 각자 다른 수행법을 쓰고, 은사 스님의 가르침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도 달랐습니다.
영화 스님에게서 “청화 큰스님은 훌륭한 성자고, 덕이 많다”고 들었던 터라, 이런 번뇌가 일어났습니다. ‘어째서 훌륭한 선지식의 가르침을 두고 다른 수행법을 하는 것일까?’, ‘훨씬 더 높이 증득한 분의 말씀을 두고, 어째서 자신의 견해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것일까?’ 물론 저는 청화 스님을 직접 뵌 적이 없고, 가르침을 법문집이나 유튜브, 음성파일로 간접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여러 제자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불편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가졌던 저의 모습이 참 멍청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이의 문제만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스님은 종종 제자들과 함께 다니면서, 어떤 수행자가 어떤 실수를 하는지, 뭐가 잘못돼서 정체하고 있는지, 무엇이 수행에 있어서 바른 방법인지 아닌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영화 스님의 이런 자세한 설명은 수행의 단계와 경계에 대한 택법안(擇法眼, Dharma Selecting Eye)을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수행에서 진전할 때, 더 넓은 통찰력을 키울 수 있게 이런 설명을 자세히 한 것이죠. 그런데 그때 저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잘잘못만 따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다른 이들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수행하면서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훨씬 덜 낭비할 수 있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시야와 해결책도 배워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과정의 목적은 타인의 문제, 실수, 나쁜 성격을 논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어떤 이가 어떤 잘못을 할 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 실수를 보고, 인지하고, 이해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영화 스님의 가르침, 저와 주변 도반들의 수행 경험담을 통해서 여러분도 큰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수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실수와 정체를 줄이고, 큰 결실을 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타인의 잘못은 잘 보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찾아와서 스님들에 대해 불평합니다. 어떤 스님은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신다면서 그건 계율을 어기는 게 아니냐고 묻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은 스님들하고 같이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신다고 자랑합니다. 그리고 계율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생각은 계율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구나 계율을 받고 어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자연스럽게 벌어집니다. 하지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면서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불교는 허무주의가 돼버립니다. 사실 많은 선지식의 가르침처럼 계율을 지키면 수행의 단단한 기반을 세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율을 어길 때 유루(有漏)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계율을 어기면 생각이 늘어납니다. 계율을 이해한다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타인이 하는 행위가 계율에 어긋나는지, 괜찮은 것인지 그런 관심을 버리십시오. 그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만약 당사자가 그런 행위를 문제로 인지하면, 해결할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요즘 세상엔 타락한 승려가 많다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좀 다릅니다. 부처님 시대에도 타락한 승려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부처님의 제자라면 비구나 비구니 스님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타인의 문제를 공격하는 것은 다른 이의 공덕에 대한 기쁨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군가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런 것을 핑계로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과 증오를 퍼뜨리지 마십시오. 출가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참회할 수 없는 계율을 어겼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런 행위를 보고 평가하고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면서 상황을 악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는 대신 타인의 강점과 장점을 보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강점을 보고 본받아야 합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의 약점만 보십시오. 타인의 약점은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어떤 이는 스님에 대해 험담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선 격찬합니다. 그건 수행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창피하게 여기십시오. 그런 걸 덕이 부족하다고 부릅니다. 오직 자기 잘못만 보면 됩니다. 다른 이가 실수를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절에 와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여러분 자신의 번뇌를 볼 기회일 뿐입니다. 다른 이가 잘못했을 때, 그것으로 번뇌롭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우리는 기분이 상하면 더는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기분이 상하는 즉시 탓을 돌릴 상대를 찾습니다. 그런 생각은 수행에 장애가 될 뿐입니다. 진지하게 수행하길 바란다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수행의 진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십시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수행에서 결실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스승의 제자로 20~30년간 세월을 보낸다 해도, 타인만 보고 자신을 볼 수 없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수행의 결실이 너무 작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훌륭한 선지식을 만난다면 큰 시험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때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복을 심으세요. 단순히 복을 심어서 되는 게 아니라, 아주 멀리까지 가려면 큰 복을 심어야 합니다. 중요한 불법을 전해 받으려면 먼저 큰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복이 먼저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덕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 보세요. 덕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을 뜻합니다. 명예와 돈을 탐하는 대신 손해를 감수하고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승의 첫걸음입니다.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법문(2014년 9월 28일 ) ‘계율’
https://www.chanpureland.org/dharmatalk
●청화 스님
1947년 세납 24세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화상을 은사로 득도. 출가 이후 50여 년 동안 사성암, 벽송사 백장암, 상견성암, 상원암, 남미륵암, 칠장사 등에서 묵언과 일종식, 장좌불와를 원칙으로 치열하게 수행 정진했다. 미주포교를 위해 카멜(carmel) 삼보사, 팜스프링스(palm springs) 금강선원 등을 건립해 3년 결사를 지내고, 조계종 원로위원, 성륜사 조실을 지냈다. 청화 스님은 부처님 공부는 가장 행복한 공부이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부처가 되는 길이니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강조했다. 2003년 세납 80세, 법납 56세에 열반에 들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법을 소개해왔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불광미디어 홈페이지 연재를 비롯해 미주현대불교, 브런치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청주 BBS불교방송 라디오 ‘4시의 불교산책’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2021, 어의운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