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 태백산 산신 된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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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 태백산 산신 된 단종
  • 송희원
  • 승인 2021.11.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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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 단종, 산신으로 부활하다
영월 장릉의 단종비각. 영조 9년(1733)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됐다. 단종대왕릉비는 1698년(숙종24)에 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하면서 세운 것으로 비석전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이라 쓰여 있으며,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돼 있다. 

단종태백산신제(端宗太白山神祭)는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단종에게 해마다 강원도 태백산 정상에서 지내는 제사다. 단종은 단종대왕신(端宗大王神), 일명 노산군지신(魯山君之神)으로 불리며 영모전(永慕殿) 성황당(서낭당)을 비롯해 능동 성황당, 상동면 녹전리·구래리, 중동면 유전리, 하동면 내리·어평리 등 태백산 일대의 성황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도 모셔지고 있다. 

역사적 실존 인물인 단종이 산신으로 신격화된 까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비극적 생애와 죽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영월 장릉의 단종비각. 

 

조선 ‘비운의 왕’ 단종

조선 6대 왕인 단종(端宗, 1441~1457)은 세종의 장손이자 문종과 현덕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단종은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됐고,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면서 12살이라는 어린 나이 왕위에 올랐다.

단종의 자리를 탐하던 숙부 수양대군(조선 7대 임금, 세조)이 결국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고,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上王)이 됐다. 이후 1456년(세조 2) 성삼문·박팽년 등이 상왕복위 시도를 꾀했으나 실패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됐다. 유배 중에 세조의 동생이자 숙부인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운동을 꾀했다. 하지만 이는 발각됐고, 단종은 다시 서인(庶人)으로 강등됐다. 결국 단종은 고달픈 유배생활 중 1457년(세조 3) 17세의 나이로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다. 

단종이 명예를 회복하는 데는 200년이 넘게 걸렸다. 1681년(숙종 7) 숙종은 단종을 노산대군으로 추봉(追封)한 뒤 1698년(숙종 24) 왕으로 복위했다. 이때부터 영월에 있는 그의 무덤도 장릉(莊陵)이라고 불리게 됐다. 

 

단종이 ‘태백’ 산신이 된 까닭

김효경 한남대 교수의 논문 「단종의 신격화 과정과 그 의미」에 따르면, 단종을 따르던 당·후대 사람들이 ‘그의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은 신령으로 승화했다’고 믿으며 단종을 신격화해 슬픔을 완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종은 왜 ‘태백’ 산신이 됐을까? 

영월군 영월에 전해오는 설화에 따르면, 한성부 부윤(府尹)을 지낸 우천 추익한(秋益漢)이 백마를 타고 가는 단종을 만났다. 추익한이 단종에게 “대왕마마 어디로 행차하시나이까?”라고 물었더니 단종은 “내가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오”라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여기서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가는 이는 단종의 혼백이다. 즉, 단종 사후에 그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가서 태백 산신이 됐다는 의미다. 18세기부터 이러한 믿음은 태백산 일대의 마을 무당들 사이에서 뿌리내렸다. 

강원 영월·태백과 경북 봉화에 걸쳐 있는 태백산은 오랜 옛날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국가의 염원을 기원하는 제의가 행해져 왔다.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인 천제단(天祭壇)에서는 수천 년간 제천의식을 지내왔고 민간의 중요한 기도처가 되어 왔다. 따라서 이 일대 사람들에게 단종이 승하한 뒤 신령스러운 산이자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으로 가서 산신이 됐다는 믿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처럼 단종은 짧고 비극적이었던 생애를 극복하고 부활해 태백산 지역의 영원한 산신으로 남은 것이다. 

망경사 산신각에 함께 모셔진 산신·단군·단종의 초상.
망경사 단종비각.

 

마을 수호신 된 단종대왕

태백산 산신인 단종은 토지와 마을을 지켜준다는 성황신(서낭신)의 성격을 띤다. 단종대왕신을 마을의 주신(主神)으로 모신 마을들은 영월・연하리・석항리・수라리재・녹전리(상유전리)・상동 어평마을・태백으로 이어지는 옛길 주변이다. 이는 단종이 사후에 태백 산신이 되기 위해 백마를 타고 영월에서 태백산 사이에 있는 마을들을 지나가면서 쉬었다 갔다고 전해지는 곳들이다. 이 마을들에는 영월과 태백산에 이르는 산길 옆에 단종을 성황신으로 모시는 성황당을 만들어 놓았다.

현재 태백산 내 단종 신앙의 공간은 크게 제당골에 있는 성황당에서 시작해 장승거리, 반재, 당골을 거쳐, 망경사 입구에 있는 성황당을 지나, 망경사와 용경, 단종비각, 천제단, 장군단, 하단을 거쳐 문수봉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 걸쳐져 있다. 

아직도 매년 제를 올리는 영월 중동면 유전리 성황당.
이웃해 있는 철학관의 산신각처럼 자리한 어평리 성황당. 철학관 부부가 매일 청수를 올리고 기도를 한다. 

 

사진. 유동영

 

참고문헌 
김효경, 「단종의 신격화 과정과 그 의미」, 민속학연구 5, 국립민속박물관, 1998.
이기태, 「18세기 영월의 사회변동과 단종의 신격화 및 민속의 변화」, 한국민속학 62집, 한국민속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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