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왓티에서 특별한 재판이 열리다
사왓티에서 희한한 재판이 열렸다. 소송을 건 이는 사왓티 최고 거부인 수닷따(Sudatta) 장자였고, 상대는 꼬살라 국 빠세나디 왕의 아들 제따(Jeta) 태자였다. 소송 내용은 제따 태자가 수닷따 장자에게 나중에 기원정사가 될 땅을 팔겠다고 해놓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꼬살라 국의 수도에서 곧 왕이 될 이가 절대 팔지 않겠다는 땅을 장자가 기어코 매입하겠다는 것도 기묘한 일이었고, 그 땅을 빈틈없이 황금으로 덮겠다는 조건이 달렸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었다. 재판관이 장자에게 물었다.
“장자시여, 당신은 도대체 그 땅을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러가며 매입하려 하는 것이오?”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그 땅을 매입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분인 부처님께 공양할 생각입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상 모든 이를 행복하고 안온하게 해 줄 참된 가르침을 펼치고 계시는 분입니다.”
“태자님께 여쭙겠습니다. 태자님은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소만…… 아무튼 나는 그 땅을 팔겠다고 한 적이 없소.”
재판관은 장자의 편을 들어줬다.
“장자는 그 땅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고 있고, 더욱이 개인적인 소유물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성인에게 기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태자께서 양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왓티의 특이한 재판은 이렇게 마무리됐지만, 이 재판으로 인해 붓다의 교화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제따와나(Jetavana), 한역경에는 기원정사(祇園精舍) 또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번역된 승원이다. ‘기수’는 제따 태자를 말하고, ‘급고독’은 수닷따 장자이니, 기수급고독원은 이 땅과 관련된 두 사람이 한꺼번에 표현된 이름이다.
고독한 이 돌보는 수닷따 장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영웅에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충실한 후원자가 있게 마련이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영웅 아르주나에게는 끄리슈나가 있었고, 또 다른 서사시 『라마야나』의 영웅 라마에게는 원숭이의 왕 수그리바가 있었고, 예수에게는 갈릴리에서 온 두 명의 마리아가 있었으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게는 신미 대사가 있었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이순신에게는 류성룡이 있었다. 붓다를 후원한 이는 너무도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대표적인 이를 뽑으라면 죽림정사를 보시한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과 기원정사를 보시한 수닷따 장자를 들 수 있겠다.
수닷따 장자는 늘 고독한 사람들을 돌봐줬기 때문에 고독한 이를 돕는다는 뜻의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 給孤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직업은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무역업이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돌면서 이 나라의 특산물을 다른 나라에 가서 팔고, 또 그 나라의 특산물을 자신의 나라에 가져와서 판매함으로써 큰 이익을 남겼다. 이렇게 무역업이나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이들을 장자(長者, seṭṭhin)라고 불렀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니 장자들은 정보가 빨랐다. 정보가 빠르다 보니 장자들이 붓다의 명성을 먼저 듣게 됐고, 그들은 붓다에게 귀의해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수닷따, 어둠 뚫고 붓다를 만나다
수닷따는 자신과 똑같은 일을 하는 라자가하의 대부호와 친밀하게 지냈는데, 서로의 누이와 혼인해 겹사돈이 됨으로써 더욱 가까워졌다. 그는 라자가하에 가면 항상 처남 집에 머물렀다. 붓다가 라자가하에서 두 번째 안거에 들어갔을 때 수닷따 장자가 500대의 수레에 물건을 잔뜩 싣고 라자가하를 찾았다. 여느 때 같으면 처남이 동구 밖까지 나와서 환대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마을 입구에는 처남은커녕 마중 나온 하인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 들어서니 온 집안 식구들과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남, 무슨 잔치라도 있는가?”
“내일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대중공양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 식구들이 이렇게 분주합니다.”
‘부처님’이란 말을 듣자마자 수닷따는 갑자기 온몸과 마음에 희열이 일어났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부처님이란 어떤 분이기에 온 식구가 그분을 위해 이토록 분주한가?”
“그분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을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형님도 내일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시지요.”
“아닐세, 지금 당장 뵈러 가고 싶네. 그분은 어디 계시는가?”
“아닙니다, 형님! 그분은 사람들이 시체를 버리는 시따와나(Sītavana)에 계십니다. 어두워지면 위험하니 내일 날이 밝거든 가십시오.”
수닷따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붓다를 생각하다보면 희열이 생겨났고 엄청나게 밝은 빛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 날이 밝았는가 싶어서 일어나보면 여전히 어두운 밤이었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또 희열이 일어났고, 엄청나게 밝은 빛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닷따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 당시에는 어두워지면 도시 외곽의 성문을 닫게 돼 있었다.
수닷따가 성문 가까이 오자 천신들이 문을 소리 없이 열어줬다. 성문을 나서자 수닷따에게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밀려오자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도 사라져서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몇 걸음 걷다가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수닷따는 한 걸음도 디딜 수가 없었다.
이때 부드러운 천신의 음성이 들렸다.
“장자여, 10만 마리 코끼리의 행렬도, 10만 마리 말의 질주도, 10만 대 마차의 행진도 부처님을 향한 그대의 한 걸음의 가치에 비하면 25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오. 어서 나아가시오.”
‘아, 내가 부처님을 만나는 것을 돕는 천신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수닷따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가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자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저 멀리 붓다가 경행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닷따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진정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줄 분임을 어떻게 알아본단 말인가? 나의 이름은 수닷따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아나타삔디까라고 부르고 있다. 만약 이분이 진정 위대한 부처님이시라면 나를 수닷따라고 부를 것이다.’
붓다는 수닷따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수닷따가 가까이 다가오자 말했다.
“사랑하는 수닷따여, 어서 오시오.”
수닷따는 이 분이 자신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진정 위대한 붓다임을 가슴 깊이 느끼며 정성을 다해 예배했다.
붓다는 수닷따에게 보시의 공덕을 짓고, 계행을 지키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차제설법을 먼저 설했다. 장자의 마음이 지극히 평온해지자 붓다는 사성제를 설했다. 수닷따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그는 붓다에게 삼귀의를 다짐하면서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오늘부터 저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디 사왓티에 오셔서 안거를 보내시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수닷따는 사왓티에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이 안거를 보낼 수 있는 승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붓다와 제자들이 머물 승원은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서 왕래하기 좋은 곳이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게 길이 연결돼 있어야 하고,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소음이 없는 한적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붓다의 두 번째 승원, 제따와나
사왓티로 돌아온 수닷따는 승원을 짓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사왓티 전체를 샅샅이 조사한 수닷따는 사왓티 성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꼬살라 국 빠세나디 왕의 아들 제따 태자 소유의 동산이 최적이라고 판단했다. 수닷따는 태자를 찾아가 말했다.
“태자시여, 그 동산을 저에게 파십시오. 부처님의 승원을 만들 생각입니다.”
태자는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장자는 끊임없이 졸랐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동산이 위대한 부처님의 수행처가 된다면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 아닙니까?”
“허어, 이보시오, 장자! 나는 당신이 그 동산 전체를 황금으로 깐다 해도 팔지 않을 것이오.”
태자의 말을 들은 장자는 바로 이 말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음을 발견했다.
“감사합니다, 태자시여! 그렇다면 제가 동산 전체를 황금으로 깔겠습니다. 방금 금액을 말씀하셨으니, 이제 그 동산은 저에게 파신 겁니다.”
“무슨 소리요?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나는 절대로 팔지 않을 것이오.”
결국 두 사람의 공방은 법정으로 가게 됐고, 법정은 장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에서 이긴 수닷따는 수십 대의 마차에 황금을 싣고 와서 동산에 깔기 시작했다. 참으로 기묘한 장면이었다. 『대불전경』에 따르면 연못이나 큰 나무가 있어 황금을 깔기 힘든 곳이 있으면, 그 분량만큼 다른 곳에 황금을 깔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장자가 비상시에 쓰려고 저축해뒀던 1억8천만 냥의 금을 그곳에 모두 소비했다. 그런데 출입문에 해당하는 홍예문(虹霓門)을 만들 장소를 금으로 덮지 못했다. 장자가 수하에게 말했다.
“저 홍예문 자리를 덮을 만한 금을 구해오너라.”
이 소식을 들은 제따 태자가 장자에게 전했다.
“당신이 모시려는 부처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신가 보오. 홍예문은 내가 만들어드릴 테니 거기는 남겨두시오.”
부지를 구입하는 데 1억8천만 냥의 금을 소비한 수닷따 장자는 웅장한 승원을 건설하는 데 다시 1억8천만 냥의 금을 썼다. 붓다가 거처할 곳은 늘 향기가 날 수 있도록 했고, 그래서 그곳의 이름은 ‘향기나는 집’이라는 의미의 간다꾸띠(Gandhakuṭi)가 됐다. 간다꾸띠 근처에 비구들이 거처할 수 있도록 방과 편의시설을 갖췄다.
장자는 붓다의 거처 옆에는 비가 와도 사용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경행로를 만들었고, 우물, 연못, 세탁소까지 그야말로 비구들이 그곳에서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폈다. 이렇게 세심하게 지어졌기 때문일까? 붓다는 제따와나에서 무려 열아홉 번의 안거를 보내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세상에 온 붓다들이 모두 사용한 공통적인 장소가 있다고 한다. 첫째,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게 되는 보리수 아래의 금강보좌, 둘째, 첫 설법을 하게 되는 초전법륜지, 셋째, 도리천에서 아비담마를 설한 후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때 붓다의 오른발이 첫 번째로 내딛는 상깟사 성문, 넷째, 제따와나의 간다꾸띠 침상 등이라고 한다.●
흐뭇한 미소 자아내는 부동산 스캔들
승원 건축은 마무리됐지만,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붓다와 제자들이 실제로 승원에 와서 거주해야만 불사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수닷따 장자는 이를 위해서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수닷따는 빠세나디 왕에게 부탁해 공주 수마나와 500명의 수행원들이 물과 향과 꽃으로 채워진 항아리를 하나씩 들고 붓다와 제자들을 환영하게 했으며, 자신의 아들과 장자들의 아들들로 구성된 500명의 청년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안내하도록 했다. 또한 자신의 두 딸 마하수밧다와 출라수밧다를 비롯해 장자들의 딸 500명이 깨끗한 물이 담긴 항아리를 들고 함께했으며, 아내 뿐나 락카나를 비롯한 부호의 아내 500명이 여러 가지 공양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환영했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나라의 주요 천신들도 사왓티에 집결해 붓다의 입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환영인파가 모인 가운데 붓다와 제자들이 입성했다. 붓다의 뜻에 따라 수닷따 장자는 붓다와 제자들에게 승원 봉헌의 뜻을 밝혔다.
“거룩하신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이곳으로 이미 와 계시거나, 지금 오시는 중이거나, 앞으로 오실 모든 비구에게 이 승원을 봉헌합니다.”
붓다는 감사의 마음과 축복을 담아 긴 법문을 설했다.
“이 승원은 승단을 보호하는 충분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겨울철의 추위와 기후의 이상변화에서 오는 추위, 들과 숲에서 발생한 불이 일으키는 열기, 사자·표범·호랑이 같은 맹수들의 위협, 뱀·전갈 같은 기어다니는 동물들의 위험, 삼매를 흩어놓는 각다귀·모기·파리 등이 주는 불편함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승원은 비구들로 하여금 정신적인 혼란과 위험 없이 안락하게 살게 해주며, 선정과 지혜를 닦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렇게 사왓티 최고의 부동산 스캔들은 아름답게 정리됐다. 아름다운 보시를 위한 다툼에 ‘스캔들’이란 단어를 쓴 것이 송구하지만, 그만큼 이 사건은 사왓티뿐만 아니라 주위의 여러 나라에 화제를 뿌린 흥미진진한 뉴스거리였다. 오늘날의 부동산 스캔들이 대부분 개인이 과다한 이익을 착복하는 것에 기인하는 반면, 붓다 시대의 부동산 스캔들은 붓다를 위한 보시행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듣는 마음은 흐뭇하기 그지없다.
● 일창 스님, 『부처님을 만나다』, 이솔출판, 2012, 511쪽.
●● 밍군 사야도 지음, 최봉수 옮김, 『대불전경(V)』, 한언, 2009, 312~313쪽 참조.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산문 『인도신화기행』, 『조용히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