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합은 뭘까?’ 신선 혹은 낯설다고 해야 할까? 헌법, 법학자, 국회, 행정부, 여성단체, 방송, 대학, 지리산, 기도, K-불교, 슈퍼스타, 소설 그리고 원효 대사…. 나열한 키워드에서 무엇을 상상해야 할까? 한 호흡에 읽기도 버거운 키워드들은 법학자이자 한 사람의 작가 인생과 관련 있다.
사실 법을 공부한 이들과 불교와 접점은 신선하다랄 게 없다. 그런데 헌법을 공부한 작가가 원효 대사를 ‘K-불교’ 슈퍼스타로 꼽았단다. 스스럼없이 스승으로 부른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를 사로잡은 지금, 작가에게 ‘K-불교’ 슈퍼스타가 왜 원효일까? 10월 29일 서울 조계사에서 국화축제를 만끽하던 작가를 불광미디어 사무실로 초청했다.
‘불교하는 사람’ 이지현 작가
『소설 원효』(불광출판사, 2021)의 저자 이지현(53) 작가 스스로 ‘불교하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는 헌법을 공부한 법학박사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국회와 행정부에서 일했으며, 여성단체와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했다.
『논어』, 『맹자』 등 고전 그리고 법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에도 관심이 남다르다. 법학 분야에서 논문을 발표했고, 역사 인물 허균을 다룬 『400년 만의 만남-그리운 허균 당신에게 보냅니다』를 쓰고, 청소년 법 교양서인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도 썼다. 대학뿐 아니라 법 이야기로 강연도 다니고 방송도 좀 해봤다.
Q 이력이 눈에 띕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릴게요.
“국회, 행정부, 여성단체, 문화예술단체, 방송에서도 일했어요. 굉장히 운이 좋게 다양한 영역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학위 받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요. 돌이켜보면, 부처님이 제게 왜 이런 기회를 줬을까 생각해봤어요. 국회에서는 권력과 탐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공부할 수 있었죠. 문화예술단체 대표도 했는데, 춤과 노래에 일가견이 있는 원효 스님을 소설로 녹여내는데 제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Q ‘불교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했는데, 불교와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20~30대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를 멀리했어요. 어린 딸이 보기엔 손해 보는 삶을 사셨던 분을 보고 자랐어요. 수행자 같은 삶을 사셨는데, 주기만 하고 배려만 하셨어요. 어린 맘에 ‘절대 나는 종교를 갖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죠. 40대 이후부터는 인생을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전환점을 맞았어요. ‘아, 불교야말로 내가 가져야 할 종교이고, 불교 안의 삶을 살아야겠다’라고 발원했죠. 제 인생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Q ‘불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불교하는’에서 ‘하는’은 행동한다는 의미잖아요. 실천한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불교하는 사람’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불교식으로 사유하고, 토론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제시할 수 있다고 봐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불교하는 사람’은 불교적 방식으로 모두가 외롭지 않은 따뜻한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 거예요.”
Q 『소설 원효』 작가의 말을 지리산에서 썼고, 종종 기도한다고 들었어요.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지리산이 주는 웅장함과 품어주는 마음이 있기에 지리산을 좋아합니다. 경주에도 취재하러 자주 다녔습니다. 사는 곳이 서울이어서 가까운 사찰을 혼자서 가곤합니다.”
실천하는 최고 지성, 원효
원효의 삶을 들여다볼 자료는 많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당·오대 시대 고승의 전기를 집대성한 송나라 때 문헌 『송고승전』, 일연 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 등 기록을 보면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귀족에서 수행자로, 파계 후엔 거사로, 전쟁터의 귀신은 물론 부랑자를 돌본 거리의 성자로, 240여 권의 책을 저술한 대학자로 살았다.
‘불교하는 사람’ 이지현 작가는 불교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보고 이 세상을 꿈꿨단다. ‘차별 없는 세상’을 이끌 이상적인 인물로 원효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법학자의 시선으로 『판비량론』을 읽고 전환점을 만났는데, 바로 원효였다.
그는 『판비량론(判比量論)』을 읽다가 원효에게 푹 빠졌다. 『판비량론』은 원효가 당대의 유명한 고승이자 삼장법사 현장 스님의 논리를 비판하며, 인간의 심신을 치밀한 논증 방식으로 파헤친 책이다. 불교 교리를 가장 근본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여러 학설의 대립과 분쟁을 지양하고 종합해 회통하는데 역점을 둔 책이다. 책은 그에게 원효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원효가 선택한 삶의 길이 당연했음을 이해했다. 논리와 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학자로서 바라본 원효는 깨달음과 실천이 어긋남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Q 이성과 논리가 중요한 법학을 공부했는데, 불교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나요?
“법학자이지만, 법학뿐만 아니라 인문학도, 『논어』나 『맹자』 등 고전에도 늘 관심이 많았어요. 법전 등 많은 글과 책을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원효 스님 글은 충격이었습니다.”
Q 어떤 글이었나요?
“『판비량론』은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 스님의 추론식을 비판한 내용의 글이에요. 당나라, 그러니까 당시 최고의 국가였던 당나라 최고 지성이던 삼장법사의 이론을 원효 스님이 잘못된 부분을 시원하게 비판하신 거죠. 그래서 당시 최고 지성은 원효 스님이라고 생각해요. 삼장법사 현장 스님이 위대하고 다들 알지만, 우리는 정작 원효 스님이 남긴 위대한 서적들을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하지만 원효 스님이 최고 지성이기에 소설을 쓴 건 아니에요.”
Q 원효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이길래 소설을 썼나요?
“원효 스님이 실천하는 분이기에 소설을 썼어요.”
Q 소설 속 ‘황룡사의 문을 열어라’ 챕터에서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원효가 잘 드러난 것 같아요.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귀족불교에서 중생을 위한 불교로 가는 그 길 앞에 놓인 문을 연 거죠. 백고좌법회에서 왕후 한 사람만 살리려고 한 게 아니라 만백성을 살리고자 했어요. 오로지 왕족을 위한, 소수 귀족을 위한 황룡사가 아니라 만백성을 위한 황룡사여야 했고, 그래서 닫힌 문을 여셨어요. 허리 다치고 팔다리 잘려나가고 눈이 안 보이고 병든 백성들이 몰려와서 문이 열린 황룡사로 환희롭게 들어갑니다. 실제 원효 스님은 거리 법문을 많이 하셨고, 열린 불교를 꿈꾼 분이에요. 덧붙이자면 한국불교가 세계불교의 중심이 되고 우리나라가 세계 정신문명의 중심이 된다는 탄허 스님의 예언이 있는데, ‘K-불교’의 첫 출발이 원효 스님이라고 기대합니다.”
역사의 빈 곳 채워 원효를 쓰다
이지현 작가는 『소설 원효』를 썼다지만 전문 작가는 아니다. 법과 허균이라는 인물을 다룬 책도 썼지만, 소설은 조금 다른 영역이었다. 더구나 파편처럼 기록된 원효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쓰는 일은 적지 않은 정성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료와 관련 서적을 뒤져야 하고, 성인으로 추앙받는 한 인물에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심적 부담을 이겨내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다. 그는 난해한 한자로 얽히고설킨 논리를 좇느라 생긴 두통을 달고 『판비량론』을 읽고 읽었다. 원효의 저술과 사료, 전기, 소설, 논문 등 온갖 자료를 추적해 읽었다. 밤마다 거지들과 울고 웃는 원효, 저술에 매달리며 밤새우는 원효, 전쟁터에서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원효를 만났다.
역사의 기록에서 빈 곳은 원효를 이해하고 느끼며 답을 구했단다. 화려한 귀족과 존경받는 수행자의 삶을 버린 원효가 왜 가장 낮은 곳으로 직접 내려갔는지 그 이유를 써야 했다고. 『소설 원효』의 태동이었다.
Q 소설가는 아닌데, 꼭 소설로 원효를 담아내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쉽게 다가가고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글의 영역이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불경이나 법문으로만 다가가면 현대인들이 어렵고 낯설게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원효 스님이 남긴 가장 큰 발자취는 중생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것을 버리고 중생과 함께 한 삶입니다. 소설 속에서 그 삶을 전기형식의 소설로 알리고 싶었어요.”
Q 교과서는 물론 위인전 등 여러 형태로 국민에게 서사와 사상이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 원효인데, 『소설 원효』의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원효 스님을 신라에 가두지 않았어요. 몸은 신라에 있었지만, 생각과 사상, 실천력은 중국 그러니까 당나라, 일본 사막 건너 서역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소설에는 망자도 나오고 천녀도 용도 나옵니다. 역사의 빈 곳은 판타지로 채웠죠. 그렇지만 적어도 제겐 판타지가 아니에요.”
그는 ‘해골 물 일화’에서 벗어나, 원효가 평생의 삶을 통해 전파하고자 한 가르침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전기형식을 빌렸다. 각종 문헌의 역사적 기록을 줄기로, 원효의 삶에서 빈 곳은 당시 역사와 정치 상황을 바탕으로 상상해 채웠다. 삼장법사와 손오공, 용왕과 용, 살아있는 시체들, 호림과 설화, 공덕천녀와 흑암천녀, 요석과 설총, 선묘와 의상 대사, 당 태종, 문무왕 등 실재와 허구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
Q 소설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나옵니다.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요? 용궁과 용, 등 판타지적인 요소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 같은 소설적 장치를 하신 까닭은요?
“가능하면 기록에 남긴 것들을 밟아가면서 빈 곳을 채워갔거든요. 손오공이 『금강삼매경』을 찾아 용궁으로 호림을 데려가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용왕조차도 원효의 보살행을 찬탄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사실 용궁에서 경전 가져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고요. 비록 손오공이 삼장법사의 제자이지만 원효를 찬탄하는 대사로 나오죠. 실제 원효를 존경하는 수많은 당나라의 스님들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심지어 1,000명의 스님이 원효 스님을 뵈러 공부하러 오기도 하고 우리나라에 화엄의 장이 펼쳐지기도 했거든요.”
Q 요석공주와 혼인하고 설총을 낳은 원효, 원효의 파계는 어떻게 이해했나요?
“한 여인을 살리기 위한 파계였어요. 소설에 구마라집 스님을 언급했는데, 번뇌 즉 보리라고 하셨죠. 이분법적 관념에 매이지 않고 수많은 불경을 번역해 경지를 이룬 스님입니다. 우리가 보는 많은 불경이 구마라집 스님 번역에 근거하고요. 원효 스님 스스로 결단했어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고통받는 중생 속으로 들어가 파계의 길을 걸으셨어요. 원효 스님의 파계는 파계가 아닌 파계라고 생각해요. 더 큰 보살행을 위한 큰 걸음이었고, 그 암울한 시기에 중생이 아픔을 달랠 수 있었다고 이해합니다. 파계라면 과연 원효 스님은 요석궁에서 3일 만에 나오셨을까요? 호사스럽게 살지 않았을까요?”
Q 여성으로서, 공주 신분의 미망인이 원효를 연모한 그 마음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제가 만난 요석공주는 그냥 ‘홀연히 떠나십시오’라고 말하는 그런 인물이었어요.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하는 당당함, 그리고 원효의 앞날을 걱정하는 인물이었죠. 공주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 원효를 따라 육두품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는 파계승이라는 놀림을 받았던 설총을 담담히 바라보는 어머니였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보살의 길을 걸으며 대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런 인물이었다고 느끼고 있어요.”
Q 지금 우리는 원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요?
“어릴 때 모든 사람이 가난했거든요. 그때 다들 학교에서 질문지가 나오면 중산층이라 적었어요. 가난했는데 그랬어요. 지금은 4차 산업을 이야기하는 시대인데, 우리는 더 외롭고 궁핍해요. 누가 해결해 줄까요? 불교는 물론 원효 스님의 사자후라고 봐요. 원효 스님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자각할 때 순간순간 서로 함께 있기에 외롭지도 않고 서글프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그리워할 가르침은 원효 스님의 사자후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지현 작가에게 원효는 단순히 1,400년 전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 여기 우리의 궁핍한 마음을 채워줄 행운이자 슈퍼스타, 히어로였다. 작가 자신에게도 원효는 그랬다.
“『소설 원효』를 읽고 원효 스님을 만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간절한 바람이에요. 전 원효 스님을 만나고 행복했어요.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웠어요. 여러분에게 제 가장 큰 행운을 선물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