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만들고 쉽게 먹는 죽 이야기
거리낌 없이 쉽게 하는 일
→ 식은 죽 먹기
애써 한 일을 남에게 빼앗길 때
→ 죽 쑤어 개 준다
어중간해서 이도 저도 안 될 때
→ 죽도 밥도 안 된다
얼굴색이 안 좋거나 기운이 없어 보일 때
→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
죽과 관련된 속담과 관용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에는 죽의 다양한 특장점이 반영돼 있다. 일단 먹기가 쉽다. 죽은 곡식을 물에 넣고 오래 끓여 무르게 만든 음식이다. 유동 상태라서 부드럽게 먹을 수 있으며 위에 부담이 적어 소화도 잘된다. 그래서 잘 씹지 못하거나 소화 장애가 있는 환자들에게 병인식으로 활용된다. 이런 특징은 ‘식은 죽 먹기’라는 표현에 반영됐다. 그냥 죽 먹기도 쉬운데 심지어 식은 죽 먹기라니 이보다 쉬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먹을 때의 편리함이 만들 때의 편리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죽은 만들기 굉장히 까다로운 음식 중 하나다. 죽 한 그릇을 맛있게 끓이려면 적잖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쌀도 미리 불려야 하고 육수도 따로 준비해야 한다. 죽에 들어갈 속 재료를 먹기 좋게 다지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뿐인가. 냄비 바닥에 쌀알이 눌어붙지 않도록 끓이는 동안 계속 휘저어줘야 한다. ‘죽 쑤어 개 준다’는 표현은 이렇게 만들기 까다로운 죽의 특징을 전제한다. ‘죽도 밥도 안 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물 조절, 불 조절을 잘못하면 밥이 죽이 되기도, 죽이 밥이 되기도 한다. 밥과 죽은 기본 음식임에도 잘 만들기는 쉽지 않다.
적은 재료로 양을 불리는 음식으로 죽을 특징지을 수도 있다. 죽은 보통 물양을 곡물의 6~7배 정도로 잡고 끓인다. 들어간 재료량에 비해 양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구황식품으로 활용됐다. 이러한 죽의 특징은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이란 표현이 쓰이는 맥락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표현은 죽을 든든한 한 끼가 아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으로 간주한다. 먹을 것이 풍족해진 오늘날, 사람들은 피죽 대신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영양 만점의 죽 요리를 즐긴다. 민중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죽은 이제 포만감은 있으면서 칼로리는 적은 다이어트 음식으로 대접받는다.
정성 들여 어렵게 만들지만 먹기 쉽고 다이어트에도 좋은 건강식, 죽. 죽에 담긴 여러 의미를 곱씹으며 이번에 소개할 땅콩죽을 즐기길 바란다.
끼니로 즐기는 가을 보양식 땅콩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선선한 날씨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요즘이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 혹한, 가뭄, 홍수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이 잦아지다 보니 이맘때 누릴 수 있는 중도의 날씨가 더욱 소중하다. 평소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집돌이와 집순이들도 날씨가 좋은 이때만큼은 바깥바람을 즐긴다.
날씨가 좋아 방심하기 쉽지만, 가을은 일교차가 커서 건강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 계절이다. 사람 몸은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체내 발생하는 열이나 기온 변화에 따라 체온을 스스로 조절한다. 요즘처럼 하루 동안 기온 차이가 큰 날씨는 우리 몸에 부담을 준다. 더군다나 가을철 우리 몸은 찬 음식을 자주 먹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여름을 지난 뒤라 속이 허해진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삼복뿐 아니라 가을에도 보양식이 필요한 이유다.
땅콩은 비타민B와 단백질이 풍부해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가을 대표 보양식으로 꼽힌다.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도와 동맥경화와 각종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심심풀이 땅콩’이란 말처럼 땅콩은 흔히 주전부리로 즐기지만, 흰죽에 섞어서 끓이면 빈속을 채워주는 든든한 끼니가 된다. 떨어진 기력 채워줄 가을 보양식, 땅콩죽을 만들어보자. 쌀 대신 이미 지은 밥을 활용해서 간단히 조리한다.
먼저 땅콩, 밥, 소금을 준비한다. 땅콩은 볶은 땅콩이 아닌 생땅콩을 사용한다. 땅콩 1/2컵에 물 1컵을 넣고 불린다. 조리 하루 전날 불려두면 조리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불린 땅콩은 불릴 때 넣은 물을 버리지 않은 채 물 2컵을 더해 믹서에 간다. 불린 땅콩을 믹서로 가는 대신 칼로 잘게 다지거나 방망이로 찧어도 된다. 땅콩 건더기 씹히는 맛을 살릴 수 있다. 밥은 물 3컵을 더해 밥알이 퍼질 때까지 끓인다. 밥이 어느 정도 퍼지면 갈아둔 땅콩을 모두 넣고 땅콩 비린내가 없어질 때까지 끓인다. 마지막으로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땅콩이 남으면 전으로도 부쳐 먹을 수 있다. 땅콩을 물에 불려 믹서에 가는 과정까지 땅콩죽과 같다. 이렇게 간 땅콩에 쌀가루 한 큰술과 약간의 소금을 더해 기름에 부치면 영양 만점 땅콩전이 완성된다.
재료 밥 1공기, 불린 땅콩 1컵(땅콩 1/2컵, 물 1컵), 소금 1작은술, 물 5컵
1. 불린 땅콩에 물 2컵을 더해 믹서에 간다.
2. 냄비에 밥과 물 3컵을 넣고 밥이 퍼질 때까지 끓인다.
3. 갈아둔 땅콩을 넣고 비린내가 없어질 때까지 끓인다.
4.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그릇에 담아낸다.
사진. 유동영
법송 스님
대전 영선사 주지. 세계 3대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 런던캠퍼스 정규 교육과정 최초로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했다. 저서로 『법송 스님의 자연을 담은 밥상』(2015, 서울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