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인형에 첫 시선을 빼앗겼다. 심령상담소나 연구소 그렇다고 진료실 또는, 의대 교수의 연구실은 더더욱 아니었다. 책장 한쪽에 걸린 해골 인형이 부조리해 보였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연구실에 해골 인형이라니….
“해골관이라고 하죠? 나태하지 않도록 자주 보고 스스로 독려하고 있어요.”
안양규 한국불교상담학회 회장이 이해한다는 듯 말을 건넸다. 욕심에 집착하는 탐욕을 경계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허투루 쓰지 않고 붓다의 가르침을 널리 펴겠다는 원력을 되새기는 도구였다. 육체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수행법으로 부정관(不淨觀, 몸이 더러운 것을 알고 탐욕을 없애는 수행)을 강의할 때 쓰기도 한단다.
해골 인형이 부정관에 쓰인다니,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맞다. 또 하나, 불교문화대학 학장 재임 시절에 명상심리상담학과를 개설한 주역이기도 했다. 4년제 종합대학에 명상심리상담학과가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겨 추진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목적의 무게추가 바뀌는 반전이 있었다. 한국불교상담학회 회장으로서 삼독심(三毒心) 해독 연구를 진행 중이며 곧 대중에게 무료배포할 예정이었다. 그는 계획이 다 있었다.
중국 음식점에서 짜장면만 먹나?
“중국 음식점 가서 꼭 짜장면만 먹어야 하나요?”
짬뽕, 탕수육, 깐풍기 등 여러 중국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억울함을 호소한 게 아니었다. 선불교 이후 한국불교의 키워드를 주제로 대화하는 도중에 나온 말이다.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불교의 자리를 찾다가 문득 든 비유이기도 했다.
“우리가 음식점에 가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입니다. 비약이긴 하지만 배고픔을 법에 대한 갈증이라고 비유해 보겠습니다. 중국 음식점에는 여러 메뉴가 있는데, 왜 짜장면만 강요해야 할까요? 짜장면만 배고픔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팔만사천법문은 수만 가지 경우에 따른 대기설법, 즉 맞춤형 설법입니다. 선불교가 중요하듯 중국 음식점에서 짜장면이라는 기본 요리도 맛있어야 하지만, 다른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음식점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그 음식점도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간화선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수행이며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힘으로 평가했다. 다만 21세기를 사는 이들에게 불교가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방법이 조금 달라야 한다고. 명상하는 연예인들이 방송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등 명상은 이미 널리 알려졌고, 과거 요가 열풍이 일었던 것처럼 산업화했다. 그는 불교명상을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불교명상에는 대중적인 명상이 도달할 수 없는 계정혜(戒定慧) 삼학 중 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명상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과학이 입증한 지 오랩니다. 불교명상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 즉 지혜까지 배울 수 있습니다. 기능적인 효과에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이죠. 불교라는 브랜드를 명상 앞에 굳이 붙이지 않아도 명상에 불교를 더한 프로그램을 많이 보급해야 합니다.”
그는 1979년 메사추세츠 대학병원의 존 카밧진이 불교 명상법으로 개발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MBSR, 마음챙김에 기반한 인지치료 MBCT 등 불교는 이미 명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이 더 많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명상을, 나아가 불교를 알리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다소 큰 주제가 오갔지만, 결국 명상이 불교를 알리는 훌륭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였다. 그는 선불교의 뒤를 잇는 키워드로 명상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마인드 디톡스 10주 프로그램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가져온 일상의 큰 변화는 코로나 블루(우울감이나 무기력)를 넘어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블랙(모든 게 암담하다고 여기는 상태)까지 퍼트렸다.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 숙명일까? 2008년 창립해 10년 넘게 활동 중인 한국불교상담학회 2대 회장직을 맡은 그는 더 바빠졌다. 한국불교상담학회의 역할이 여기 있어서다.
한국불교상담학회는 지난 6월 ‘코로나 시대, 질병과 불교적 치유’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명상이 면역력을 증가시켜 질병을 이기는 힘을 길러준다는 의학적 견해와 코로나19로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에 건강하게 대응하는 방식이 명상임을 강조했다. 사실 그의 계획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마인드 디톡스 10주 프로그램’ 개발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고통 해소와 행복 성취에 있습니다. 가르침이라는 약 창고에 있는 약재에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약재를 찾아 처방해야 하죠.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약재를 먹도록 도와야 합니다. 심리적인 문제에도 다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고, 각종 심리적인 문제에 맞는 맞춤형 약을 만들려고 합니다. 감기에 걸렸을 땐 감기약을 먹으면 됩니다.”
그는 탐진치, 즉 세 가지 독인 삼독심을 해독하는 프로그램 보급을 앞두고 있다. 삼독심을 보다 세분화해서 이를 완화하는 명상과 상담, 심리기법을 적용한 프로그램이다. 탐욕을 식탐, 성욕, 재물욕으로 나눴으며 진은 자기 혹은 가족을 향한 분노, 불만, 열등감과 불만 등으로 구체화했다. 치는 선입견이나 고집 등으로 나눠 자신이 어떤 고집이 있고 어떤 생각을 자주 하는지 알아채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그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밥 먹을 때 밥알을 몇 번이나 씹고 삼키나요?”
몰랐다. 늘 먹는 밥인데 맛을 음미하고 배고픔을 달래는 것만 신경 썼다. 사실 무의식적인 행위라고 여겼다. 그는 무의식적인 행위를 의도적으로 지켜보고 관찰하라고 했다. 왼쪽으로 몇 번, 오른쪽으로 몇 번 씹는지 그리고 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기계적으로 맛에 집착하는 식탐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1년 넘게 연구했습니다. 자료는 축적됐고 워크북 정리하고 매뉴얼도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에요. 누구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배포할 생각입니다. 붓다는 돈 받고 가르침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학부~병원 인프라 갖춘 동국대
대면 프로그램을 자주 진행하면서 결과물을 내려던 프로그램이 코로나19로 차질을 빚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약간의 조바심이 느껴졌다. 다소 한국불교계가 늦었다는 생각 탓이었다. 그는 한국고등교육재단 동양학연구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유학하던 1990년대에 이미 설 자리 없는 종교를 체감했다.
종교는 윤리적인 개념이 됐으며 교회 건물은 마을 회관이나 사교장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스러진 세계적인 유적지에서 느끼는 쓸쓸함도 그에겐 있다. 시대와 호흡하지 못한 불교는 사라질 것인가? 뒤늦게 MBSR, MBCT 등 불교를 응용한 명상심리치료는 물론 명상 자체가 대중화되자 반겼다. 불교라는 브랜드를 안 붙이더라도 붓다의 가르침이 알려지면 좋았다. 하지만 이마저 의료학계에서 선점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조바심이 난다고.
“MBSR, MBCT가 의학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적용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죠. 국가에서 공인한 겁니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내 의학계도 오래전 명상을 받아들였습니다. 법적으로 명상상담심리 관련 단어에 ‘치료’, ‘치유’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힐링을 쓸 수밖에 없죠.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 흐름을 한국불교계가 놓치지 않고 자각하면 좋겠습니다.”
동국대에 명상심리상담학과를 개설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많았다. 그가 불교문화대학 학장이던 2020년 첫 신입생을 받았다. 수시와 정시로 학생을 모집, 지방대라는 한계에도 20명 정원을 채웠다. 명상심리상담학과에서는 불교상담심리학, 선수행론, 불교와 심신의학 등 불교 과목에 명상과 건강심리, 명상과 뇌과학, 명상과 스트레스 등 명상 과목 그리고 아동청소년 상담, 성격심리학, 심리상담 등 상담심리 과목을 배운다.
졸업 후 취업 진로도 밝다. 학사를 졸업하면 청소년상담사 3급 자격증을, 석사를 하면 2급, 박사는 1급 국가고시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임상심리사 국가공인 자격증 취득 기회도 열려 있다. 또 동국대 경주캠퍼스 대학원엔 불교상담학과가, 불교상담연구소, 명상 선센터도 있어 유기적인 연구도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경주엔 동국대 양·한방병원도 있다.
“순수학문부터 현장 실습, 취업까지 여기서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여기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여기 한국불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느 위치에 서 있어야 할까요?”
질문이 따끔했다. 그는 또 하나의 흐름을 언급했다. ‘Meditation’, ‘Mindfulness’ 등 불교를 유추할 수 있는 명상의 번역이 기독교 의학계나 학계에서 묵상 혹은 관상기도라는 ‘Contemplation’으로 쓰인다고.
‘테라(Thera)’를 한역한 불교 용어인 ‘장로’가 기독교 용어로 바뀐 역사는 과연 되풀이될까?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