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펜데믹과 취업난 등 급변하는 사회 현상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잃고 좌절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담은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전시 명은 ‘THIS OR THAT,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의 실존적 고민과 질문을 들여다보는 전시다.
인사동 무우수갤러리는 9월 5일부터 9월 26일까지 우리 화단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청년작가인 조아해, 박세빈, 최단미, 한혜수 작가의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청년작가전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4명의 작가가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조아해의 <욕망>은 각종 신상품과 명품에 대한 흥분 속에서 정신없이 소비하는 삶을 보여준다. 가방이며 자동차며 보석이며 시계며, 이 달콤한 욕망의 대상을 손에 쥐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르고 줄기차게 미끄러진다. 반면 <그리고 바라던 그곳에서Ⅰ>의 풍경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눈 앞에 펼쳐진 산 좋고 물 좋은 광경은 흡사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꿈결 같지만, 풍류를 즐기며 한가로이 노니는 사람들은 도통 보이질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의 존재론이 “나는 보여진다. 고로 존재한다”라면, 그림으로 대변되는 자아상은 남들보다 돋보이려고 애쓰지도 또 시끄럽게 굴지도 않는다. 다만 군중 속 안락함의 유혹에서 벗어난 단독자의 고독과 자유로움만이 있을 뿐이다.
박세빈의 그림은 명료하고 견고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호퍼의 빛을 담고 있다. 작품 <멈춰선 이에게>, <흘러간 자의 비상>에 흐르는 황혼의 붉은 빛은 사물의 곧은 직선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정연함 탓에 조금 황량한 듯도 하지만 가지런함이 주는 균형감과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림이 자아내는 심란하고 기이한 정서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핵심 정서인 언캐니(Uncanny, 낯익은 것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의 감정마저 유발한다. 마치 인과율을 떠나 우연히 놓인 사물처럼, 잘못된 시간과 잘못된 공간 속에서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엉겨 붙는 느낌이다. 그러나 해 질 녘, 굳게 셔터를 내린 세상은 슬그머니 비밀의 게이트를 연다. 작품 <내일을 향한 숨>, <Imagine>처럼 마술적인 순간이 스르륵 펼쳐지는 것이다. 그 앞에 선 우리는 특별히 허락된 기적의 목격자가 된다.
최단미의 그림은 우리가 편집증적으로 항상 붙잡는 물음들, 즉 ‘삶과 죽음’, ‘나는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실존주의적 질문을 던진다. 작품 <Throne>을 보노라면 ‘잉여 인간’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길가에 구르는 비닐봉지처럼 하찮고 흔해 말 그대로 함부로 던져진 존재. 사르트르가 즐겨 쓰는 말대로 “비자 없는 생활을 영위했고 존재 허가증 없이” 존재하는 인생 같다. 이 멜랑콜리아의 정서는 생멸에 대한 사색을 키우며 정물화로 이어진다. 특히 최단미의 묘사 기량은 정물화에서 더욱 돋보이는데, 그의 정물화 시리즈 <Our (still) life I, Ⅱ>는 실제로 착각할 정도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그 중 <Our (still) lifeⅡ>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속임) 기법으로 그린 카라바조의 최초의 정물화 <과일바구니>를 모본으로 한다. 상징성이 짙은 바로크의 그림이 그러하듯 풍성한 과일과 시들어 버린 잎의 공존은 삶과 죽음의 찰나성과 인생의 무상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달이 숨어 있다. 어쩌면 작가의 간절한 기도가 쌓이고 쌓여 저 큰 보름달로 차오른 것은 아닐는지.
혹 세계의 변화 속도에 자주 멀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한혜수의 그림에 깊이 빠질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세상살이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낙오되거나, 물결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의 지표를 잃고 혼란을 겪는 사람이라면 정녕 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대관절 나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가?'. 작품 <속내>는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설령 한 자리에 머물고 싶다 해도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다. 제아무리 굳건한 의지를 다진다 해도 변화의 물결에 속절없이 떠밀리기 일쑤다. 더욱이 시류를 거슬러 헤엄쳐나가는 일은 큰 위험을 각오해야만 하지 않은가. 땅이 물렁물렁하면 그 위에 세워진 어떤 건물도 견고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듯이, 급변하는 시대를 발판으로 나 자신을 세우는 일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그럴 때 우리는 전능한 절대자에게 매달려 <구원>을 간청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회의가 든다. 이 모두가 정녕 믿음에 달린 일일까?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무우수갤러리 양효주 학예실장은 “‘날마다 절망하면서도 날마다 희망을 잃지 않는 청년세대들의 희망은 무엇일까?’, ‘차마 문턱을 넘어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면서도 매번 문 앞에 다시 서는 이유는 뭘까?’라는 청년 세대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전시회”라며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들과 희망을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역 지침을 준수하여 진행되며, 관람비는 무료다. 문의 02)732-3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