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 우리는 왜 당신에게 기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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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 우리는 왜 당신에게 기도하나
  • 최성렬
  • 승인 2021.08.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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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佛法 지키고
중생 이롭게 하는
복전福田 이어라

“일찌감치 사향・사과 원만히 성취하여
 삼명・육통을 다 갖추셨네
 부처님의 정녕한 부촉 은밀히 받아
 세간에 머물러 항상 참된 복전 돼주시네.”

스님들이야 일상이지만 일반인들에겐 낯설 수 있다. 하지만 법당 주련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불자라면 그렇지도 않을 터. 나한전 주련에서 흔히 봐왔을 나한도청(羅漢都請, 나한을 한꺼번에 다 청해 모심)의 한 부분이니 말이다. 나한성중 정근 때 이 가영(歌詠, 시가를 읊음)을 한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나한을 신앙하고 있고 왜 나한에게 기도하는지, 나한신앙의 근거와 본지(本旨, 근본 취지)를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나한신앙의 근거

나한신앙의 근거는 『법주기(法住記)』에 찾을 수 있다. 『법주경(法住經)』의 요약본이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이고, 이를 약칭해 『법주기』라 한다. 『법주기』라는 말은 대(大) 아라한인 난제밀다라가 제자들에게 설한 법(法)의 영원성[住]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법의 상속을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이 『법주기』가 설해진 연기는 이렇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800년 뒤 집사자국(스리랑카)의 난제밀다라(한역은 경우慶友)라고 하는 대아라한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열반을 앞두고 제자들(비구와 비구니, 대중)을 불러 말했다. 

“나는 이제 열반에 들어야겠다.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묻도록 하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오래되었고, 그 제자들마저 다 적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세상에는 조어장부(調御丈夫, 부처님)가 계시지 않습니다. 8해탈・3명・6통을 갖추신 선생님[존자尊者]마저 열반하시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조금만 더 머물러 주십시오.”

이런 제자들의 간청에 난제밀다라는 “사람이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위로한다. 그리고는 앞으로 불도를 전수할 16대아라한을 차례로 소개하고 부처님이 설한 교리는 변함없이 제자들에 의해 보전될 것이라며 『법주경』을 요약해 설해준다. 16대아라한에 의해 정법이 이어진다는 것이 『법주기』의 내용이다. 따라서 『법주기』는 나한신앙의 원천이요, 근거가 되는 자료라 하겠다.

 

나한, 어떻게 신앙하고 있나?

오늘날에도 나한은 조석예배와 헌공지송 등 불교 의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신앙 대상이다. 『석문의범』의 「예경편」과 「불공편」에서 나한신앙의 형태를 솎아 내 보기로 한다. 먼저 「예경편」은 대웅전, 팔상전, 나한전, 독성단으로, 「불공편」은 제불통청, 나한청, 독성청으로 구분해서 예경하고 공양을 올린다. 각각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나한과 그에 따른 사항을 아래 표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신앙의 대상이 된 나한은 “16성, 오백성, 독수성, 천이백제대아라한”으로 나타난다. 나한전에 모셔진 16나한 중심의 신앙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오백성(五百聖)은 결집 때의 500 성중, 혹은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등장하는 제자들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는 『아비달마대비바사론』 200권을 지은 500나한, 혹은 『아비담비바사론』 80권을 주석한 그 500나한이라고도 한다.

독수성(獨修聖)은 타인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힘으로 깨달음을 성취한 벽지불(壁支佛, 독각獨覺)을 말한다. 「예경편」에서는 ‘천태산상(天台山上) 독수선정(獨修禪定)’이라고 한다. 또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연각(緣覺)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독성단에 모셔진 이 독성(獨聖)을 나반존자라고 한다. 16나한 중의 빈두로와 같은 인물이라고도 한다. 나반존자 신앙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신앙형태라고 한다.

천이백제대아라한은 부처님의 상수 제자로 이해하기도 한다. 『과거현재인과경』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야사(耶舍) 장자의 아들 친구(50인), 우루빈라가 가섭과 그의 제자(500인), 나제 가섭과 그의 제자(250인), 가야 가섭과 그의 제자(250인), 사리불과 그의 동료(100인), 목건련과 그의 동료(100인)”를 합해서 1,200명의 아라한이라고 밝혀 놓았다. 

이처럼 다양한 부류의 나한을 신앙하고 있다는 것은 나한신앙의 성행으로 빚어진 신앙의 분화를 뜻한다.

 

나한신앙의 본지本旨

“무상법(無上法)으로써 16대아라한과 모든 권속(眷屬, 도를 배우는 수행자들)에게 부촉하시어 호지불멸(護持不滅, 보호해서 멸하지 않음)케 하였다.”

부처님이 열반할 때 했다는 이 말씀은 『법주기』에서 선설(宣說, 널리 일러 줌)한 다음 내용과 함께 나한신앙의 본지를 파악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법주기』는 예전부터 여러 스님이 상승(相承, 서로 계승함)하면서 외워 잊지 않았다. 모든 국왕・대신・장자・거사・여러 시주자 등이 인과를 요달하고, 생로병사・파초(芭蕉, 여러해살이풀)・아지랑이・물거품 같은 몸뚱이를 싫어하고, 여러 수승한 업을 닦아서 다음 세상에 미륵불을 만나 번뇌를 해탈하고, 대열반을 얻어 애락이 생기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정법을 보호・건립[護持建立]하여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게 하라[令久不滅].”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다음 세상에서 미륵불을 뵙는 것,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을 보호・유지하여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법주기』를 설한 취지가 정법의 호지건립과 단멸이 없게 부촉한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나한신앙의 본지이다.

그런데 정법의 ‘호지건립(護持建立)’, ‘영구불멸(令久不滅)’과 관련하여 『미륵하생경』과 『증일아함경』 제44권 「십불선품」은 이보다 훨씬 강도 높게 부촉하고 있다.

“나는 이미 노쇠하여 여든이 넘었다. 하지만 내게는 네 사람의 큰 성문이 있어 교화[유화遊化]에 별문제가 없다. (그들은) 다함이 없는 지혜에다 온갖 덕을 구족하고 있다. 그 네 사람이란 대가섭(大迦葉) 비구, 군도발한(君屠鉢漢) 비구, 빈두로(賓頭盧) 비구, 라운(羅云) 비구이니라. 너희들 네 큰 성문들은 결코 열반에 들지 말고 우리의 법이 다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열반에 들어야 한다. 대가섭 역시 열반에 들지 말고 미륵불이 세간에 출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라.”

부처님은 대가섭과 도발탄(군도발한), 빈두로와 라운(라후라)에게 미륵불이 세간에 출현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라고 한다. 이 점은 『사리불문경』도 마찬가지다. 부촉을 받은 그들, 네 성문은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정법을 잘 호지해야 할 책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나한도청에 보이는 “사향사과조원성…밀승아불정녕촉(密承我佛叮嚀囑)”<가영 4>는 이러한 나한의 책무를 말한 동시에 나한신앙의 본지를 뚜렷이 밝힌 것이라 하겠다.

나한기도만을 올리는 신행 단체 ‘나한봉참회’가 있다는 칠곡 도덕암 나한전은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다. 

 

왜 나한에게 기도하나?

이 물음은 위 나한신앙의 본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가영 4>의 마지막 구절 “주세항위진복전(住世恒爲眞福田, 세간에 머물러 항상 참된 복전 돼주시네)”처럼 나한은 미륵불이 하생하기 전[무불시대無佛時代] 세간에 머물러 중생의 복전이 되고 있다. 『법주기』에서는 이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와 같은 16대아라한들은 모두 삼명(三明)과 육통(六通) 및 팔해탈(八解脫) 등 한없는 공덕을 갖춰서 삼계의 물듦[염染]에서 벗어났고, 삼장(三藏)을 외워 지니고 있으며, 외도들의 전적(典籍, 서적)에도 널리 통달했다. 부처님의 교시[칙勅]를 받들어 신통력으로 자기 수명도 늘린다. 그리고 부처님의 정법이 끊어지지 않도록 항상 보호하고 지킨다. 그러면서 시주들에게는 참된 복전이 되고 시주자들이 큰 과보를 얻게 한다.

16대아라한은 우선 삼명, 육통, 팔해탈의 무량한 공덕에 3장과 외전에도 박통(博通, 온갖 사물에 널리 통하여 앎)하다. 『불설아라한구덕경』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한도청 유치(由致, 도청하는 연유를 아뢰는 것)에 “모니멸후 자씨생전 불취니원 장거말세 화변삼천지세계 신분백억지진구(牟尼滅後 慈氏生前 不就泥洹 長居末世 化遍三千之世界 身分百億之塵區, 십육나한은 석존 입멸하신 뒤로부터 미륵불이 하생하시기 전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오래도록 말세에 남아서 그 덕화가 삼천대천세계에 두루하신 몸을 백억 국토에 나투신다)”라 했다. 나한각청에는 16대아라한 개개인의 독특한 성품이나 기벽을 들어 칠언절구로 읊어 놓기도 했다.

아라한의 능력을 말한 이 대목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대목으로 나한신앙이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기도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감응이 온다.

“이 세계의 모든 국왕・장자・거사・남자・여자가 깨끗한 마음으로 승가(僧伽)에 보시하거나, 5년마다 무차시회(無遮施會)를 베풀거나, 사찰에 불상・경전・번(幡) 따위를 경찬하는 대회를 열거나, (…중략…) 좌복・와구・옷・약・음식을 스님들에게 보시하라.”

목우자(牧牛子)는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첨경존안 부득반연이경(瞻敬尊顔 不得攀緣異境)”이라고 했다. 불・보살님을 우러러 뵐 때(기도) 딴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비구육물(比丘六物, 가사·바리때·삭도·바늘·띠·헝겊)이나 수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 16대아라한과 그들의 권속들은 여러 곳에서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 그 위의를 감추고 범부들의 공양을 받아 시주자들이 과보를 받게 되는 교호작용(交互作用, 각각 기준을 조합했을 때 생기는 효과)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감응이다. 이처럼 16대아라한은 바른 법을 보호하고 유정들을 이롭게 한다. 왜, 나한에게 기도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다.  

 

사진. 유동영

 

최성렬
조선대 명예교수. 동국대 불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조선대 인문과학대 철학과 교수와 조선대 고전연구원장, 인문과학대학장, 범한철학회회장, 새한철학회회장 등을 역임했다. 「보조 수심결의 일고찰」, 「원돈성불론의 십신에 대하여」, 「간화결의론의 분석적 연구」 등 30여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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