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미얀마를 빗겨나지 않았으며, 2월 초 쿠데타까지 일어나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와 쿠데타는 미얀마 승단과 불교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를 알아보기로 했다.
제일 궁금한 것은 미얀마 스님들의 탁발이다. 미얀마 승가는 상좌부 전통을 유지한다는 자부심이 높으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탁발과 오후불식(午後不食) 전통이다.
인터뷰는 정기선 박사를 모시고 불광미디어 사무실에서 5월 27일 진행됐다. 정기선 박사는 미얀마 불교를 주제로 동국대에서 석·박사(미얀마의 불교 문화양상 연구)를 마쳤으며, 동국대에서 강의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정기선 박사는 인생의 절반인 30년을 미얀마에 바쳤으며, 미얀마에서 현장 활동과 연구 활동을 진행해왔다.
인터뷰가 미얀마의 현재를 생생하게 말하고 있기에 ‘①코로나19는 미얀마의 스님들의 탁발, 남자들의 출가 의식 등 불교 의식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가 ②쿠데타 이후 미얀마 승단의 현재와 고민’로 나눠 싣는다.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스님들의 탁발은 전통대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미얀마 불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탁발과 오후 불식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죠. 탁발은 미얀마 불교 의식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례 중 하나입니다.
미얀마의 스님들은 대부분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발우를 들고 통견(通肩)을 한 채로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칠가식(七家食)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거든요. 본인 자신에게는 인욕 수행인 동시에 재가자에게는 복전(福田)으로의 역할을 해주는 그런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불행히도 코로나19가 닥치고 팬데믹이 선언되면서 탁발 의례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과거 양곤 시내 같은 큰 수도원의 경우 한 행렬에 150에서 200여명이 열을 이어서 통견을 한 채로 공양자의 집 앞으로 가서 탁발을 받아오는 이런 모습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얀마 자체 내에서 코로나 창궐을 염려해서 현재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탁발 의례도 5인 이하, 4명에서 5명 정도 외에는 탁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창 창궐 초기에는 아예 수도원의 스님들이 탁발을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일반 재가자들이 공덕을 지울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깐 수도원의 문 앞에 본인들이 해온 음식과 반찬을 두고 가면 수도원이나 사원 안에서 거주하고 있는 정인(淨人)들이 그것을 수거해서 스님들의 공양 시간에 맞춰서 스님들께 드리곤 했죠.
최근에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탁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마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모임에 숫자 자체가 5인 이하로 제한되어서 아주 작은 소규모로 몇몇 수도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탁발하는 데 가장 큰 변화는 참여 인원의 축소였다. 큰 도시의 경우에는 150명 이상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5인 이하로 줄였다. 정기선 박사의 도움으로 사진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몇 가지 설명한다.
변화 1: 탁발 행렬 숫자의 축소
<사진1>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통적인 탁발 모습이다. 스님들이 일렬로 법납에 따라 진행하면 재가자들이 공양물을 발우로 옮긴다.
<사진2>가 현재 진행되는 탁발의 모습이다. 탁발 참여 인원이 5인 이하이다. 탁발하는 스님들이나 공양을 하는 재가자들이 맨발인 것이 특이하다.
변화2: 수레의 등장
코로나19 이전에는 행렬의 맨 마지막에 큰 그릇이나 바구니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재가자들의 공양물을 담아 사원으로 들어가 분배하는 기능을 했다.
<사진3>과 같이 지금은 수레가 등장했다. 탁발 인원의 절대적인 숫자가 줄어들면서 발우나 그릇에 공양물을 담을 수 없어 수레에 싣고 사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른 스님들과 공양을 한다. 코로나19가 낳은 참 웃푼(?) 모습이다.
행렬을 이끌던 재가자의 퇴장
<사진4>가 전통적인 탁발 행렬의 모형이다. 제일 앞과 마지막은 스님이 아니라 재가자이거나 정인이었다. 제일 앞선 사람은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거리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재가자들은 더 이상 탁발 행렬의 제일 앞과 뒤를 지키지 못한다. 그러면 누가 하느냐고?
위 사진과 같이 스님이 직접 한다.
그러면 스님들은 공양을 어떻게 할까? 탁발에 못 나오는 스님도 있을 것이고, 공양물을 올리는 절대적인 숫자도 줄어들었을 터인데. 결론은 사원 안에서 해결한단다.
▷ 그러면 사원에서 직접 요리를 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스님들의 공양 해결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건가요?
대개 미얀마에 대략 5만 개가 넘는 수도원과 사원들이 있습니다. 대형 수도원의 경우에는 탁발에 의존도 하지만 그것은 재가자들의 공덕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수행으로 일환이고요, 마하시 수도원이라던가 큰 수도원의 경우에는 내부에 대규모 공양장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공양장에서 미리 준비해온 공양을 나누어 주거나 아니면 수도원에 있는 정인들이 스님들을 위해서 그곳에서 직접 공양을 조리합니다.
작은 수도원이나 사원에는 그런 공양 시설이 없기 때문에 아직도 민간의 탁발에 의존하고 있는데 바깥에 나와서 탁발하는 거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런 곳은 수도원이나 승원 주변의 재가자들이 그곳으로 음식을 가져와서 스님들에게 공양해 두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 미얀마는 불탑의 나라라 불릴 만큼 탑과 사원이 많고 사원을 방문해서 기도하거나 공양을 올리는 경우도 많을 텐데요, 코로나19는 이것도 막지 않았을까요?
그 부분도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왜냐면 한 가족이 간다고 했을 때 가족 구성원이 대개 다섯 명이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공양 자체를 준비할 때에 문 앞에 갖다 놓거나 아니면 제한된 인원만이 가서 그곳 수도원에 대규모 공양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여럿 있습니다.
스님들에 대한 공양 공덕을 찬탄하는 것은 미얀마 사람들에게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불교 의식이었거든요. 그래서 보통 한두 명이 아니고 온 가족 전체, 어떤 때는 대규모로 약 10에서 20여 명이 한꺼번에 수도원이면 수도원, 사원이면 사원에서 일정한 의식을 통해서 탁발 의례를 행하고 돌아오는 경우 대부분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인원 자체가 많이 모이지 못하기 때문에, 숫자를 제한해서 수도원을 방문하고 횟수조차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어서 과거에는 잘 하지 않던 현금의 보시라던가 생쌀의 보시 이런 것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생쌀과 생야채로 수도원이나 승원 안에 있는 정인들이 스님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 집 안에 큰일이 있을 때 스님들을 모시는 공양 의식도 흔하다고 들었습니다. 이 역시 변화가 있겠지요?
미얀마 사람들이 탁발하는 중요한 날들이 여러 날이 있는데요, 무엇과 관련이 되어 있냐면 본인의 생일, 부모님의 생일이나 기일, 조상님의 기일에 그분들의 이름으로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회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많은 사람이 특정한 기일이 되면 미리 특정한 수도원에 예약해서 '모월 모일은 저희 돌아가신 부모님이 이름으로 대중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저의 생일이기 때문에 올리겠습니다', '저의 결혼식이기 때문에 대중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공양청을 해서 댁으로 모시거나 혹은 사람들이 갈 때 그 규모가 줄어든 것일 뿐입니다.
▷ 한국 불자들에게 특이하게 보이는 전통 중의 하나가 남자들의 출가의식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럽기도 하고, 참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 전통은 어떻습니까?
수도원 안에 어린아이들이 출가를 하게 되면 일생에 한 번 승적을 갖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데 이걸 '신퓨'라고 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탄생이 일반적인 생일이라면 정신적인 탄생은 신퓨, 즉 사미로서의 득도(得度) 의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게 사실은 한 집안의 가장 큰 일이기도 하고요, 개인에게 있어서는 새롭게 성숙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그런 정신적인 상승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과거부터 부모들, 특히 아들을 둔 부모의 경우에는 자신의 아이가 일생에 한 번 출가함으로써 출가의 공덕을 자신을 비롯한 9대에까지 가지려고 하는 것이 일반화된 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미얀마의 신년이 4월, 그러니까 양력으로 4월 13일부터 시작됩니다. 이 기간에 짧게는 3박 4일, 길게는 일주일에서 몇 개월까지 단기 출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는 성인들도 많이 있는데요, 주로 어린아이들도 이 기간에 많이 출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출가 의식을 신퓨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신퓨 의식이 2020년도 팬데믹 선언 이후에 미얀마 전역에서 거의 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2021년에도 역시 신퓨 의식을 거의 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도원이나 사원에는 현재 사미 스님들이 거의 없습니다.
신퓨 의식을 통해서 사미승으로 승원 안에서 비구 스님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죠. 지금은 이와 같은 단기 출가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심지어 사미승으로 있었던 스님들조차도 다시 돌려보내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수도원 안에서 거주하고 계신 스님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 미얀마하면 떠올리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 전통의 명상센터입니다. 마하시 센터가 제일 유명한데요, 이런 곳은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6개월 이상 거주하면서 수행을 한다고 하는데요, 그런 곳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미얀마의 대규모 명상 센타에 많은 한국인의 수행자들이 들어가 계십니다. 1990년대 이후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이 한국 불교계에 열풍처럼 일어났지요.
상좌부 불교권인 스리랑카나 태국에 비해 미얀마가 좀 수행의 기풍이 강한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미얀마의 여러 수행처에서 수행하고 있죠.
그런데 팬데믹 이후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뭐냐면 이분들이 오랜 기간 동안 바깥에 나오지 못하고, 비자가 거의 다 만료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비자가 만료된 사람들을 위해서 비자 연장은 허용해주는 거 같습니다.
다만 한 번이라도 수도원 바깥으로 임의로 나가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용무로 나가야 할 경우에는 다시는 그 수도원에 입방하지 못하는 그런 조건이 붙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수도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들이나 한국의 재가자들의 경우에는 본인들이 그곳에서 수행을 더 할 것인지 아니면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 코로나19, 쿠테타는 의례의 변화뿐만 아니라 스님들과 재가자들의 관계 역시 변화시키고 있을 텐데요, 만나는 횟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마음이 바뀌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미얀마 자체가 워낙 일반 재가자들이 코로나로 인해서든 혹은 쿠데타로 인해서든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공덕행을 실천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스님들을 후원하는 것은 계속해서 해오고 있습니다.
왜냐면 스님들이 우리나라와 달리 일반적으로 생업을 위해서 종사할 수 있는, 혹은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거의 모든 생계를 다 재가자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불교 특히 상좌부 불교권에 있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스님들은 수행과 재가자의 교화에 힘쓰고, 제가자는 공양을 책임지고 외호하는 그런 기능을 상호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죠.
그 사이에 바로 공덕이라는 관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탁발의 전통이 살아는 있고 유지는 되고 있지만, 미얀마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공덕을 얻을 수 있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농담 섞인 말들을 자주 하죠.
다만 규모와 양적인 측면에서는 과거 코로나 창궐 이전보다 상당히 많이 줄었습니다.
쿠데타 이후의 불교(예고)
여기까지가 코로나19 창궐 이후 변화된 미얀마 불교의 의례와 신행의 변화다. 어렵지만 반갑게도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한단다.
다음 편에서는 올해 2월 1일 쿠테타 발생 이후의 승단과 불교의 모습을 다뤄보겠다. 많이 아프고 가슴이 여리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정기선 박사는 쿠데타 이후 승가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경계해야 할 점에 대해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