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불법승 깃발 세우고 땅의 인연까지 갖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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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불법승 깃발 세우고 땅의 인연까지 갖추다
  • 세준 스님
  • 승인 2021.03.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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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사찰에서 만나는 선禪 풍수
불보종찰 통도사는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됐다. 통도사에는 영축사에서 발원한 서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흐르는 명당수(明堂水)가 흐른다.(통도사 사진 제공)

장점 드러난 땅이 명당, 단점 드러난 땅이 흉지

풍수는 자연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자연 친화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현실에 바로 적용하는 게 선풍수지리(禪風水地理)이다. 선풍수(禪風水)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조건으로 땅을 상정한다. 땅 위의 인공적인 구조물인 건물이나 주거공간은 황금비율, 대칭, 균형을 기본으로 한다. 땅은 용(龍)이라 하고, 명당(明堂)은 건물·주택·마을 등 주거공간으로 양택(陽宅)을 말하며, 혈(穴)은 묘지 터를 의미하고 음택(陰宅)이라 한다. 장점이 드러난 땅이 명당이고, 단점이 드러난 땅이 흉지다. 인간의 길흉 속에서 삶과 죽음의 시간을 공간으로, 공간을 바탕으로 시간적 통일성을 시공간으로, 만물이 형태를 갖춰 있는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어 보는 게 풍수의 개운법(開運法, 운을 트이게 하는 방법)이다. 그 속에서 만물이 태어나고 자연과 인간이 최고로 상승한 에너지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설명하는 풍수지리가 선풍수다. 

대혜종고 선사는 『서장』에서 “법의 깃발을 세우고 한 곳에서 종지를 세우고 다섯 가지 인연을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는데, 그것은 토지연(土地緣)·외호연(外護緣)·단월연(檀越緣)·납자연(衲子緣)·도연(道緣)이 그것이다”라고 말씀했다. 이렇게 선풍수는 토지연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실전, 현실, 수도(修道)에도 좋은 자연의 기운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또 명당 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풍수는 산의 좌우와 전후 사면에 있는 산을 뜻하는 사신사(四神砂, 청룡·백호·현무·주작)를 기준으로 명당과 명혈의 땅을 찾는 이론이다. 한국 사찰은 우리 강산 지형의 생김새에 맞도록 구성 시대에 따라, 신앙적 배경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리고 사찰에서 살아가는 스님들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형식이 존재한다.

시대별로 보면 삼국 시대에는 평지형, 통일신라 시대에는 구릉형, 고려 시대에는 산지형, 조선 시대에는 암자형의 가람 배치가 이뤄졌다. 평지형은 바닥 높이의 변화가 적고 좌우는 나무와 숲으로 막혀 있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형태로 다소 폐쇄감이 있는 통로를 형성하는데, 보은에 있는 속리산 법주사를 떠올리면 된다. 구릉형의 경우는 높은 구릉 지대에 여러 단의 석축을 쌓아 사찰을 조성한다. 진입로 주변이 사방으로 트여 조망이 좋고, 공간의 결속력이 강하면서도 개방적이고 대체로 큰 규모의 가람이다. 지리산의 구례 화엄사가 구릉형 사찰에 속한다. 산지형 사찰은 보통 넓은 산지로 규모가 크고 넓은 구릉지에 형성되며, 주로 누(褸)가 활용됐다. 1~2개의 높은 석축이 있고 누를 중심으로 산지형 진입 공간이 잘 갖추어진 입지형으로 공간이 폐쇄적이며 통로 성격이 강한데, 조계산에 자리한 순천 송광사를 연상하면 된다. 암자형은 주로 좁은 길을 지나 바위나 벼랑 끝 등 험한 곳에 있으며, 기도처나 수행처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봉정암, 도솔암, 연주암, 보리암 등이 그렇다. 

비보형(裨補形) 사찰은 지맥(地脈)이 허하거나 실한 곳에 금당(金堂, 본존불을 안치한 중심 건물)이나 탑, 석불, 조형물을 조성하거나 건물 좌향(坐向, 자리하고 있는 방향) 혹은 연못을 메워 단점을 보완해서 비보하는 사찰을 말한다. 전등사, 통도사 등이 있다. 해조음(海潮音) 암자는 바닷가 주변에 있는 암자로서 파도가 높지 않으며 전망이 좋다. 조수가 흐르는 파도 소리에서 알파파(뇌파의 하나로 긴장을 풀고 쉬는 상태에서 나타남)가 발생하는 자연적 조건을 갖춘 장소다. 깊은 집중과 명상, 참선수행, 기도 등에 도움을 주는 사찰을 말하며 양양 홍련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 등이 있다. 

일찍이 통일 신라말 옥룡사의 도선 국사가 풍수도참(風水圖讖)의 원리를 전한 후 인간의 삶과 풍수는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역사가 깊고 유명한 한국 사찰들은 왜 명산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을까? 풍수의 핵심요소는 Space(공간), Time(시간), Timing(때, 적기), Speed(속도) 등 네 가지의 개운비보(開運裨補)이다. 내가 사는 장소 환경과 조건은 내가 선택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이 개운법이자 선풍수다. 풍수적 입장에서 한국불교의 삼보사찰(三寶寺刹, 불법승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한 사찰)을 살펴보자. 

깨달음으로 향하는 불보종찰의 배치는 내 안의 평안(平安)이 중요하다. 
통도사 금강계단과 대웅전 배치는 풍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황금비율(1:1.618)은 물론 건물의 대칭, 건물과 건물의 조화로움을 추구했다. 

 

저절로 되는 마음의 고향, 물의 명당 통도사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백두대간 낙동정맥으로 이어진 영축산에 있는 통도사는 삼보사찰 중 불보(佛寶)를 간직한 곳이다. 불지종가(佛智宗家)로서 1,300여 년 전인 646년(선덕여왕 15)에 신라의 대국통(신라 시대 최고 스님 관직)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 이곳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축조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친히 입었던 가사를 봉안해 불보종찰이 됐다. 통도사는 평지형이며 일주문과 천왕문 등 직렬로 배열된 수직형 구조다. 기운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비보형 사찰로 신좌을향(辛坐乙向,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마주하는 자리)에 속한다. 

창건 당시 절터는 아홉 마리 용[九龍]이 사는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사찰을 창건하면서 문수보살의 부촉(불법 보호와 전파의 부탁)으로 용들의 항복을 받아 쫓아냈다. 오직 용 한 마리만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자장은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겼다. 이 연못이 바로 대웅전 동쪽에 있는 구룡지다. 비록 작고 깊이도 얕은 타원형 연못이지만 심한 가뭄이 와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연못을 메워 지금의 대가람을 창건했다. 보통 연못을 메운 땅은 풍수에서 흉지로 본다. 통도사는 다르다. 풍수에서는 보통 혈을 맺는 산, 즉 용이 물을 만나면 멈추는데, 입지적 조건에 따라 용혈이 물을 건너기도 한다. 이를 도수협(渡水峽)이라 하는데 통도사가 도수협이 일어난 물 명당이다.

통도사의 사찰 형태는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배치됐다. 법당을 중심으로 세 구역으로 나누는데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이라 부른다. 노전(爐殿,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들을 맡아보는 스님들 숙소)이 3개라는 것은 통도사가 3개의 사찰을 합한 복합형이라는 의미다. 

통도사 창건 당시 절터는 아홉 마리 용이 사는 큰 연못이었다고 한다. 문수보살의 부촉으로 용들의 항복을 받고 쫓아냈다. 한 마리만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맹세했고, 그때 메우지 않은 연못이 바로 대웅전 동쪽에 있는 구룡지다. 

 

좋은 물은 서쪽에서 나서 동쪽으로 흐른다

통도사에는 영축산에서 발원한 서출동류(西出東流, 서쪽에서 솟아 동쪽으로 흐름)의 상급 명당수(明堂水)가 흐른다. 풍수에서 강이나 하천은 명당 입지의 중요한 요결이 되는데, 명당수는 동류서출(東流西出)이거나 서출동류(西出東流)이어야 좋다. 세계의 유수 도시는 강과 함께 발전한다. 서울의 한강, 런던의 템스강, 파리의 센강, 뉴욕 허드슨강 등 모두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거나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간다. 남북으로 흐르는 경우는 불가에서는 사수(死水)라 하여 쓰지 않는다. 통도사는 하천의 북쪽을 따라 서쪽에 자리 잡고 동쪽을 바라보는 서좌동향(西坐東向)으로 진입하는데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대웅전으로 이어진다. 만세루, 3층 석탑, 영산전으로 이어지는 하로전과 관음전, 용화전, 대광명전으로 연결되는 중로전 그리고 대웅전, 금강계단이라는 상로전 등 상중하 전각의 위계를 갖췄다. 아주 낮은 높이 차이로 전각을 배치한 유례없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깨달음으로 향하는 불지·불보종찰의 배치는 내 안의 평안(平安)이 중요하다. 통도사 금강계단과 대웅전 배치는 풍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황금비율(1:1.618)은 물론 건물의 대칭, 건물과 건물의 조화로움, 3개의 절을 합친 구조 등 내 안의 평안을 추구했다. 

대웅전은 색달라서 흥미롭다. 서쪽의 북측 2개 면을 제외하고 모든 면을 창호로 설치해 전각 내 채광 효과를 극대화했다. 창호는 여닫음, 소통과 차단, 동작과 멈춤의 풍수 인테리어 요소로 비보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금강계단이 있는 통도사의 대웅전은 계를 받는 곳으로, 서쪽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채광을 받아들여 광명의 신비함을 드러내는 풍수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도사에 비보풍수는 또 있다. 대웅전 옆 구룡지에서 1년 중 염도가 가장 강한 날인 매년 5월 단옷날 오전 7시에 단오절 용왕제를 지낸다. 각 주요 전각 모서리에 올려져 있던 소금단지를 내리고 새 소금을 넣은 단지를 올린다. 소금은 액을 막고 습도를 조절하며 화재를 막는 방편이다. 

 

피안의 세계로 가는 배, 해인사

화엄십찰(華嚴十刹)이며 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는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신라 말 애장왕 3년(802) 신령한 땅에 터를 정하고 기틀을 잡았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해인사는 가야산에 자리했는데, 가야산은 예부터 정견모주(正見母主, 대가야 및 금관가야 시조의 어머니라고 전해지는 여신)가 머무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신라 때는 가야산에서 제사를 냈던 만큼 지령지신(地靈地神)과 땅의 기운이 모이고 일어나는 최고 명당이다. 

법보종찰 해인사는 가야산 자락에 자리했다. 가야산은 예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졌고, 신라 때는 가야산에서 제사를 지냈던 만큼 땅의 기운이 모이고 일어나는 최고 명당이다. 

가야산 상왕봉이 남서로 뻗어있는데, 중턱에서 능선은 두 맥으로 갈라진다. 향로봉(香爐峰)을 이루는 맥은 해인사 길상탑비가 있는 곳에 이르고, 그 맥은 학사대와 일주문에서 융기한다. 가야산 향로봉 능선이 좌청룡이 되고 학사대가 있는 능선은 우백호가 된다. 이 두 능선에 에워싸인 해인사는 마치 커다란 배가 가는 모습의 지형을 뜻하는 행주형국(行舟形局)을 보여준다. 또 구릉형 사찰에 해당하는 해인사의 좌향(坐向, 자리한 방향)은 동북쪽을 등지고 서남쪽을 바라보는 인좌신향(寅坐申向)이다. 해인사의 현공풍수는 8운에 2도산(到山) 5도향(到向)으로 산성 2가 입중(入中)하여 순비(順飛)하고, 향성 5가 입증하여 순비하면 258비화가 길상이 된다.

해인사는 그 배가 마음대로 요동하지 않도록 큰 전나무로 잡아맸는데, 그것이 바로 신라 문장과 최치원 관련 전설이 서린 수령 250년의 학사대 전나무(2019년 태풍 ‘링링’에 쓰러져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다. 일주문과 봉황문 사이에도 큰 느티나무를 심어 배를 안정되게 했으며, 행주형국 북쪽 끄트머리인 법보전 뒤에 우뚝 솟은 큰 자연석을 돛대바위로 잡아 이 배의 돛으로 삼았으니 참 묘한 명당이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돛대바위를 부수고 그 자리에 축대를 쌓아 버렸다. 이후 해인사의 기가 흩어져 지룡, 지맥이 응집하지 못했는데 일타 스님이 원력을 세워 돛대바위 대신 장경각 뒤에 수미정상탑을 조성해 해인사의 허한 부분을 비보하면서 사세가 융성했다. 수미정상탑은 해인사의 행주형국에 중심인 돛대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 이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선장은 누구일까? 아마 해인사 뒷산 높은 곳에 자리한 높이 7.5m의 해인사 마애불(보물 제222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해인사라는 거대한 반야용선(般若龍船, 중생을 싣고 극락정토로 향하는 배)을 끌고 해인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피안의 세계로 가는 형국이 바로 해인사다.

바람은 감추고 숨 쉬며, 화기火氣는 잡고

절 이름 해인(海印)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하면서 도달한 삼매의 경지)에서 나온 말인데,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고려대장경을 보관한 장경판전이 유명하다. 법보사찰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장경판전에 있는 경판이 적어도 600년 이상을 버텨왔다고 하니 놀랍다. 여기엔 오래된 지혜가 숨겨져 있다.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장경판전 서고의 바닥을 소금과 숯, 횟가루를 모래와 겹겹이 넣었다. 동마다 마주 보는 쪽의 위아래 창 크기를 다르게 설계했는데, 풍수의 장풍법(藏風法)에 따라 바람이 잘 통하도록 했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장경판전 안의 공기를 술술 빠져나가게 했다. 앞의 수다라장(修多羅藏)과 뒤의 법보전(法寶殿)이 나란히 있어 두 건물이 상호 통풍을 도와 바람을 감추고 상시 정상적 온도를 유지한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고려대장경을 보관한 장경판전으로 유명하며, 법보종찰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장경판전의 경판이 적어도 600년 이상 버텨온 데에는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한 풍수의 장풍법(藏風法)이 사용됐다. 

통도사와 마찬가지로 해인사도 불을 막는 비보풍수가 쓰였다. 해인사는 맞은 편에 남산 매화봉(梅花峰)이 보이는데, 남산 매화봉은 풍수로 볼 때 화봉(火峰)이다. 그 방향으로 집을 지으면 자주 화재를 당하지만, 걸출한 스님이 배출된다고 한다. 창건 후 해인사는 일곱 차례나 대화재를 겪어 사찰이 소실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 순조 때 방향을 조금 바꿔서 사찰이 서남쪽을 보게 건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18년에 지금의 대적광전을 건립하면서 정남향이던 앉은 자리를 인좌신향 즉, 서쪽으로 약간 당겨 지었다. 이와 함께 경남 감사 김노경(金魯敬)이 아들 추사(秋史)를 시켜 ‘가야산해인사중건상량문(伽椰山海印寺重健上梁文)’을 쓰게 하고, 그 상량문에 『법화경』 「화성유품」 팔방(八方)의 십육불명(十六佛名)과 『아미타경』의 육방불명(六方佛名)으로 육위사(六偉詞)를 읽어 화재를 방위하고 진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뒤부터 오늘날까지 200여 년 동안 화재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놀랍다. 요즘도 해인사는 화재 방지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해마다 음력 오월 단옷날이면 스님들이 소풍 삼아 남산 매화봉 마루에 소금을 넣은 조그마한 단지를 묻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해인사의 배치는 스님은 물론 조상들의 슬기와 미적 감각, 자연과 합일하려는 정신으로 이룩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천년 고찰의 원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불사도 이루어지길 바라며, 본디부터 간직하여 온 해인사의 전통적인 정신과 해인삼매를 성취하는 가람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장경판전에서 내려다본 해인사 전경은 커다란 배가 가는 모습을 뜻하는 행주형국(行舟形局)을 보여준다. 행주형국의 북쪽 끄트머리인 법보전 뒤에 솟은 자연석을 돛대로 삼았으나 부서졌다. 장경판전 뒤에 조성한 수미정상탑이 돛대 역할을 하게 됐다. 

16국사 배출한 물 위의 연꽃, 송광사

불보종찰 통도사, 법보종찰 해인사와 더불어 삼보사찰 중 승보종찰(僧寶宗刹) 송광사는 산지형이며, 좌우에 청룡 백호가 있다. 병렬식으로 갑좌경향(甲坐庚向, 동북쪽을 등지고 서남쪽을 향해 앉은 자리)에 속한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에 있는 송광사는 병풍처럼 조계산이 두르고 있다. 조계산 정상인 좌청룡이 주작으로 이어지면서 주암댐 호수와 접하고, 우백호는 청룡과 주작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곳과 만나 깊은 계곡을 만든다. 산천이 깊고 아름답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혈류에 용맥의 지기가 융기・응집된 명당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은 수려한 산세, 풍부한 물과 일조량, 용맥이 조건을 갖춰 불가의 수행 정진 장소로 최대 명당이다. 

조계산 정상인 좌청룡이 주작으로 이어지면서 주암댐 호수와 접하고, 우백호는 청룡과 주작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곳과 만나 깊은 계곡을 만든다. 산천이 깊고 아름답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혈류에 용맥의 지기가 융기・응집된 명당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은 수려한 산세, 풍부한 물과 일조량, 용맥이 조건을 갖춰 불가의 수행 정진 장소로 최대 명당이다.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社)라고도 불린 송광사는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동안 15명의 국사가 이곳을 중심으로 수선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선종을 이끌어왔다. 이와 같은 탁월한 스님들이 있었기에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불리게 된 것이다. 조선 건국 직후, 송광사의 16번째 국사 고봉 화상이 1395년(태조 4) 불법승의 전당(殿堂)을 중건했다. 

송광사는 용맥의 혈장이 연화출수형(蓮花出水形)으로 대웅전의 자리는 동북쪽을 등지고 서남쪽을 향해 앉은 갑좌경향(甲坐庚向)이다. 보조국사 사리탑에서 절을 바라보면 마치 물 위에 한 송이 연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 좌(坐, 집터 등의 등진 방위)는 정동(正東)에서 북쪽으로 15도 기울고, 향(向, 집터 등의 앞쪽 방향)은 정서(正西)에서 약간 남으로 기울었고 동(東)에서 서(西)로 향한다. 산룡(山龍)●●의 정맥(正脈)●●●이 회룡(回龍)●●●●하여 장풍(藏風)●●●●●이 잘 돼 산기와 토기가 융기하여 용맥이 연꽃을 피운 송광사는 16국사 선지식을 배출할 만하다.

중국 풍수 시조라 불리는 곽박(郭撲, 276~324)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대표적인 풍수지리 고전 『장경』에 “낮고 깊은 천심(淺深)을 알고 기를 받으면, 풍수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무릇 기는 몸이 없어 흙을 몸으로 삼아서 흙이란 것은 기(氣)의 체(體)이므로, 흙이 있으면 곧 기가 있는 것이다. 기는 물의 근본[母]이므로, 기가 있으면 곧 물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흙도 생명의 토양이 있어 토질에 따라 특작물이 생기고 지방마다 농작물이 특색이 있다. 예를 들면 대구 사과, 나주 배 하듯이 지역마다 농작물이 다른 것은, 바람이 물의 성질을 바꾸고 그 물이 먹는 생명은 그 성질을 만들기 때문이다.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종찰 송광사는 연화출수형(蓮花出水形)으로 보조국사 사리탑에서 절을 바라보면 마치 물 위에 한 송이 연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흥미롭게도 특색이 있다. 3가지가 없어 ‘3무 사찰’이다. 첫째 석탑이 없고, 둘째 풍경이 없고, 셋째 주련이 없다. 하나씩 살펴보면 첫째, 송광사는 풍수적으로 물 위에 뜬 형국이라 석불・ 석탑이 없다, 무거운 석재는 물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대웅전 풍경이 없는 것은 삼매(三昧) 수행에 방해되지 않기 위함이며, 대웅전 주련이 없는 것은 선종(禪宗) 본찰 송광사의 종지에 따라 문자를 세우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라는 선지종풍의 뜻을 행함에 있다.

처음에 지은 송광사는 현재 모습과는 다르다. 소실된 것도 있고 새로 지어진 것도 있다. 과거에 있었던 것과 현재에 없어진 것으로 지금의 풍수를 논할 순 없다. 근간에 풍수보다 좋은 돌이 주변에 없다 해서 경내에 석탑과 석등을 봉안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교통이 발달한 요즘 좋은 돌로 봉안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지금까지 석탑을 세우지 않았을까? 재정이 없어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풍경을 지금까지 내버려 뒀을까? 풍수는 바로 지금 현재를 보고 감결(勘決, 잘 조사해 결정함)하는 것이다. 사찰이란 특별한 장소에 불교의 이상향적 세계를 구축한다. 불교의 상징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축과 구조, 단청, 문양, 불화, 오색, 탑 등 조형물에서 기도, 소원, 수행, 마음의 평화, 무의식 상처 개선, 정화의 단계 효과를 갖출 수 있다. 사찰의 풍수가 현대적으로 소중한 사료인 까닭이다. 한국불교 삼보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풍수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삼보사찰뿐 아니라 천년고찰을 방문할 때 풍수로 다시 들여다보는 노력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지혜와 진리를 맛보는 소중한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송광사는 3가지가 없어 ‘3무 사찰’이다. 첫째 석탑이 없고, 둘째 풍경이 없고, 셋째 주련이 없다. 풍수적으로 물 위에 뜬 형국이라 석불・석탑이 없는데, 무거운 석재는 물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 천문(天文) 3원(元) 9운법(運法) : 공전 주기가 12년인 목성과 30년인 토성은 태양을 공전하며 20년 주기로 만난다. 그 20년을 1운으로, 3운이면 60년 60갑자이다. 3운은 1원(元)이고 3원(元)이면 9운이다. 3운이 60갑자이니 9운은 180갑자다.
●● 능선이 상하좌우로 마치 용같이 휘어지는 모습.        
●●● 여러 갈래 뻗어 나간 산 능선 가운데 중심적 생기가 있는 맥.  
●●●● 주봉에서 출발한 능선이 진행하는 동안 조금씩 회전하여 주봉을 마주 보는 상태로 있는 것.
●●●●● 혈 주변의 산들이 혈을 감싸 안아 기가 잘 보존되고 바람을 감추어 명당이 만들어지는 곳.

 

사진. 유동영

 

세준 스님
안성 무상사 활불선원 주지.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교수로 풍수 인테리어 지도사 과정, 명상심리지도사 과정을 지도 중이다. 원광대에서 「장서에 나타난 동기 감응설」(석사)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저서로는 『현공 풍수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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