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수좌” 적명 스님 1주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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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수좌” 적명 스님 1주기 추모
  • 김재호
  • 승인 2021.01.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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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명 스님 부도탑.
적명 스님 부도탑.

“내가 처한 온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느끼는 비교함도 없고 흔들림도 없는 바다 같고 허공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적명선사탑(寂明禪師塔)’ 문구 중

“흔들림 없는 바다 같고 허공 같은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영원한 수좌' 적명 스님의 부도탑이 입적 1주기를 맞아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다. 문경 봉암사(주지 원광 스님)는 1월 11일 오전 대웅전과 부도전 등 경내 일원에서 ‘적명 스님 1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 부도탑 ‘적명선사탑(寂明禪師塔)’ 제막식도 함께 진행했다. 적명 스님의 맏상좌 선타 스님과 문도스님들을 비롯해 혜국 스님, 무여 스님, 영진 스님 등 수좌스님 그리고 봉암사 수좌 현관 스님, 주지 원광 스님 등이 적명 스님의 입적 1주기를 기리며 부도탑 제막을 함께했다.

봉암사에 따르면 수좌 적명 스님은 평소 부도 조성을 만류했다. 하더라도 자연석 하나면 족하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적명 스님 부도탑은 봉암사 부도전에 소박하게 자리했다. 제막식에서 봉암사 주지 원광 스님은 “불·법·승, 삼보와 적명 스님이 강조해오신 불이 사상, 진보적이고 절제된 삶을 사셨던 스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부도탑을 설명했다.

1939년 제주도에서 출생한 적명 스님은 나주 다보사 우화(雨華)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자운 스님에게 사미계와 비구계를 수지했다. 출가 후 당대 선지식 전강, 경봉, 성철, 서옹, 향곡, 구산 문하에서 정진했다. 2009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됐지만 “깨닫지 못했기에 조실 말고 수좌로 살겠다”며 사양했다. 그리고 수좌스님들과 큰방에서 정진하고 노동하며 공양하는 등 대중생활을 했다. 2019년 12월 24일 수좌들과 함께 봉암사 뒤 희양산에 올랐다 홀로 내려오지 못했다.

적명 스님 입적 1주기 추모다례.
적명 스님 입적 1주기 추모다례.

부도탑 기단에는 1988년 9월 4일 적명 스님이 썼던 일기 중 일부를 새겼다. 첫 저서이자 유고집 『수좌 적명』 중 「나의 바람」 제목으로 실렸던 글이며, 출가수행자로서 됨됨이와 발원이 담겼다.

“범속한 한 사람의 승려로 대중 속에 묻혀 규율 따라 앉고 서고 먹고 자며 때로는 일하고 때로는 참선하며 간혹 큰스님이 와서 법문을 하면 그가 비록 옛 도반이며 한갓 동생 같은 사람이었을지라도 이제 그가 법에 대해서 설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고 존경하며 그 법문이 유려하고 깊이 있고 도무지 들은 적이 없는 초유의 법문이라고 감격해 마지않은 그런 사람. 그런 순수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늘이나 땅, 그가 처하는 온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질투도 없고, 비교도 없고, 불안도 없고, 흔들림도 없는 바다 같고 허공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되고 싶은 아무 소원도 없는 바위 같은 그런 중이고 싶다.”

- 적명 스님의 유고집 『수좌 적명』 중 1988. 9. 4. 일기 「나의 바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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