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황제의 조칙을 사양하다
어지러운 정치적 난관 속에서 측천무후는 남방에서 선법(禪法)을 떨치고 있는 혜능을 장안으로 모셔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칙을 내렸다.
“짐이 듣건대 여래께서 마음의 법을 마하가섭에게 전하셨고, 그렇게 차츰차츰 전하여 달마에게 이르러 그 가르침이 동토(東土, 당나라)에 전해졌고 스승과 제자로 계승되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소. 대사께서는 이미 스승의 선법을 전해 받으셨고 또 믿음을 표하는 가사와 발우가 있다니 부디 장안으로 오셔서 교화를 베풀어 승속(僧俗)의 귀의를 받으시고 천상과 인간이 불법(佛法)을 우러르게 하시오. 이제 중사(中使)인 설간(薛簡)을 보내어 영접하니, 바라건대 대사께서는 빨리 왕림하시기 바라오.”
측천무후는 조서를 설간에게 주고 혜능을 반드시 장안으로 모시고 상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혜능의 법문을 듣고 와서 그의 설법을 전해줘야 한다고 했다. 설간은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남방으로 향했다. 수개월의 여정 끝에 드디어 혜능을 대면하고 황제의 조서를 전달했다. 예를 갖추어 조서를 받아 든 혜능은 설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다음과 같이 황제에게 올릴 표(表)를 적어서 설간에게 주었다.
“황제께 아룁니다. 사문 혜능은 변방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불법을 흠모하다가 과분하게도 홍인(弘忍, 601~674) 대사에게 부처님의 심인(心印)과 달마 대사의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아 스승 홍인 대사의 불법을 이었습니다. 이에 송구하게도 황제의 은혜를 받아 중사 설간을 보내시어 혜능을 궁궐로 들라 하시오나 혜능은 나이가 많아 먼 길을 왕래하기 힘들고 오래도록 산속에서 살다 보니 풍질(風疾, 중풍)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폐하의 은덕은 만물을 감싸고 만방에 퍼져 창생을 양육하시고 어리석은 백성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폐하의 성덕이 하늘 아래 가득하여 불제자들을 후대하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부디 은덕을 베푸시어 혜능으로 하여금 산에 살면서 병을 고치고 도업을 닦아 위로 황제 폐하의 은혜와 여러 왕태자의 은혜를 갚게 하길 바라며 삼가 표를 올리나이다. 혜능은 머리를 조아려 사룁니다.”
황제의 부름에 혜능은 곡진하게 사양의 의견을 표했다.
| #2 좌선만 고집하지 말라
감히 황제의 입궐 명령을 사양하는 혜능의 비범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도 설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남았기에 혜능에게 물었다.
“제가 장안으로 돌아가면 성상께서 반드시 하문하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선사께서 불법의 요체를 지시해 성상과 장안에서 불법을 배우는 이들에게 전할 법문을 해주소서. 요즘 장안과 낙양의 훌륭하신 대덕들은 모두 하나같이 ‘부처님의 지극한 가르침을 알고자 하거든 반드시 좌선(坐禪)하고 선정(禪定)을 닦아야 한다. 선정을 수행하지 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법문하시며 출가자와 재가자 모든 사람에게 좌선하기를 권합니다. 대사의 가르침은 어떠한지 말씀해 주십시오.”
설간의 질문을 들은 혜능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부처님의 지극한 가르침이란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마음을 깨닫는 수행이 좌선과 선정에만 있겠습니까?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만약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하면 이것은 삿된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며 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모든 법이 공하여 끝내 얻을 수도 없고 증득할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찌 반드시 앉아서 좌선하는 것만이 수행이며 해탈에 이를 수 있는 길이겠습니까? 경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여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이 공적한 것임을 아는 것이 여래의 청정한 앉음[坐]이요, 가고 오는 생멸이 없음을 아는 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입니다. 궁극에는 깨달아 얻어야 할 것도 없는데 어찌 앉아서 좌선하는 것만 고집하겠습니까?”
| #3 불법의 핵심을 보이다
혜능의 가르침은 쉽고 간단했다. 수행의 본질은 좌선과 선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마음의 근본을 아는 데 있었다. 좌선은 청정한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기 위한 좋은 수행의 방법이 될지언정 유일한 수행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장안과 낙양의 ‘반드시 좌선과 선정을 해야 해탈한다’는 대덕들의 가르침은 수행, 좌선, 선정, 해탈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형식 유지에 매몰돼버린 것이며 이것을 본말전도(本末顚倒)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본말이 전도되고, 선후(先後)가 전도됐기에 ‘좌선의 수행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해탈이 없다’는 해괴한 말로 출가자와 재가자를 미혹해 부처님의 지극한 가르침인 근본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혜능의 가르침에 감탄한 설간은 더욱 간절한 눈빛으로 다시 여쭈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대승인(大乘人)의 수행입니까?”
무엇인가를 알고자 갈망하는 설간의 질문에 혜능은 다시 말했다.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밝음[明]과 어두움[無明]을 범부들은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밝음과 어두움의 근본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르지 않은 성품임을 아는 것이 곧 진실한 성품입니다. 그것은 범부에게 있어서도 줄어들지 않고, 성인에게 있어서도 늘어나지 않고, 번뇌에 당면해서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더라도 고요하지 않습니다.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중간에도 있지 않고, 안과 밖에도 있지 않아서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은 채 성품과 현상에 항상 머물고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에 ‘도(道)’라고 이름합니다.”
설간은 혜능의 법문에 또다시 질문했다.
“대사께서 말씀하신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외도들이 말하는 불생불멸과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이 다시 설간의 질문에 답했다.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생겨나는 것으로써 소멸하는 것을 멈추려 하니, 소멸해도 소멸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본래부터 생겨나지 않고 지금 소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내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외도들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중사께서 마음자리를 깨치고자 하거든 명심하십시오. 온갖 선과 갖가지 악을 추호도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악에 대한 분별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 바탕이 조용해지고 항상 고요하며 신묘한 작용이 항하사(갠지스강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한히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같이 많을 것입니다.”
장안과 낙양의 대덕들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설법을 들은 설간은 기뻐하며 몇 번이나 혜능에게 절을 한 뒤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불성(佛性)은 본래부터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불성은 멀리 있거나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지극한 도는 멀지 않아서 행하면 곧 이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열반은 멀지 않아서 눈에 띄는 것 모두가 보리(菩提)임을 알았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불성은 선과 악을 생각지 않으며,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고 조작도 없고 머무름도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불성은 영원하여 변하지 않고 모든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미혹한 저를 위해 자상하게 설법해 주셔서 부처님의 진리에 눈을 뜨게 해주시니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설간이 장안으로 돌아가고 난 후 혜능에게 다시 조서가 내려졌다. 그 뒤 중흥사(重興寺)를 하사하고, 또 혜능의 신주(新州) 옛집을 국은사(國恩寺)로 고쳐 꾸미게 했다.
<해설>
중국 선종 역사에서 선의 황금시대를 연 주인공은 혜능이다. 혜능 이후 선종의 종파들은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기세를 일으켜 선풍을 진작시키고 각기 가르침과 수행 가풍을 성장시키며 발전했다.
말 그대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를 열었지만 내로라하는 학설들도 결국 혜능의 법맥을 계승하는 ‘남종선(南宗禪)’이란 하나의 범주로 묶였다. 그만큼 혜능은 중국선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중국불교가 낳은 슈퍼스타이다. 혜능은 5조 홍인까지 『능가경(楞伽經)』 중심으로 진행되던 교법의 근본을 『금강경』을 중심으로 전환해 논리적이고 간결한 가르침을 위주로 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안과 낙양 대덕들의 가르침은 다분히 신수(神秀, ?~706)를 두고 한 말이다. 잘 알려졌듯 5조 홍인에게는 또 다른 제자 신수가 있었다. 신수는 어려서부터 유학과 노장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고 불교 경론에도 정통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서기 625년 낙양의 천궁사(天宮寺)에 출가한 후 여러 스승 문하에서 수행했으며 50세에 기주 동산사의 5조 홍인에게 사사하여 제자가 됐다. 홍인의 문하를 떠난 신수는 형주(荊州)의 옥천사(玉泉寺)에서 교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측천무후가 신수의 소식을 듣고 내도량(內道場, 궁중의 사찰)에 그를 모시고 법회와 경전 강의를 하게 했다. 이 인연으로 신수는 측천무후, 중종, 예종 3명의 황제를 모신 국사(國師)가 됐고 당나라 수도인 장안과 낙양의 법주(法主)에 임명되어 6년간 재직하며 수도를 중심으로 선불교의 가르침을 선양했다.
신수의 가르침은 그가 지은 『관심론(觀心論)』과 『오종방편설(五種方便說)』에 잘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중생의 근기와 욕망이 저마다 다르므로 점진적 수행 방법을 통해 자신의 성품을 증장시키고 해탈에 이른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따라 당시 장안과 낙양에서 불교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좌선을 하며 좌선의 유용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황제의 스승이 주장하는 최고의 수행 방법이니 누구도 의심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황제가 혜능을 궁중으로 초청해 불법에 대해 질문하고 법문 듣기를 청하니 세속적으로 보면 혜능이 중앙으로 진출해 남종선의 가르침을 더욱 선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혜능의 선택은 달랐다. 본말과 선후에 전도되지 않은 수행의 본질, 지극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간을 통해 전했다.
범준 스님
운문사 강원 졸업. 사찰 및 불교대학 등에서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전임 강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