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졸이며 산행 날을 기다렸다. 중부지방에 열흘 가까이 쏟아진 집중호우 탓에 북한산 출입이 연일 전면 금지됐던 까닭이다. 다행히 전날 밤부터 비가 그치더니 오전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반가운 해가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비에 대비해 레인재킷, 배낭커버 등을 단단히 채비하고 나섰다.
이번 산행은 정릉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영취사, 일선사, 중흥사 세 개의 절을 모두 들리는 ‘삼사순례’ 코스다. 전반적으로 산길이 가파르지 않아 난도가 높지 않다. 이 코스의 매력은 산 초입부터 영취사까지 오르는 길 내내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선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서울 시내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취재 동행인은 북한산 산행경력 10년 차인 이세용(53) 조계사 종무실장. 유학 간 아내와 자녀의 빈자리로 생긴 외로움을 달래려고 시작했던 산행이 어느새 그를 ‘북한산 마니아’로 만들었다. 산행을 한 주라도 거르면 발바닥에 가시가 돋을 것 같다는 그는 날렵하고도 가뿐한 걸음으로 장장 10km의 산길을 종횡무진 누볐다.
사진. 유동영
정릉탐방지원센터 ▶ 영취사 ▶ 일선사 ▶ 중흥사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북한산 어디를 가든 절, 절, 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오늘도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하게 해주소서.”
이세용 씨가 산에 들기 전 부처님과 산신에게 발원한다. 산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꼭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에게 산은 곧 절이고 절은 곧 산이다. 산에 가면 절에 가듯 늘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그리 자주 산을 찾는지 모르겠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북한산이라는 명산을 둔 게 서울 시민으로 누리는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란다.
연일 이어진 폭우로 불어난 계곡에서는 세찬 물줄기가 쏟아진다. 시원한 물소리가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그의 배낭에는 마스크와 더치커피가 들어있다. 꼭 산에 있는 절에 들를 때는 스님에게 줄 선물을 챙긴단다.
“설악산 봉정암에서는 등산객이나 참배객에게 미역 국밥을 대접해요. 그래서인지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의 배낭 안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공양미와 미역이 들어있어요. 천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아름다운 우리네 전통문화인 거죠. 북한산에 갈 때도 공양미나 과일을 가져가 불전에 봉헌하고 기도해 보세요. 산속에서 수행처를 일구고 사는 스님들께서 참 좋아하실 겁니다.”
정릉계곡을 끼고 보현봉 방향으로 50분 동안 부지런히 오른 끝에 자그마한 도량 영취사(靈鷲寺)에 다다른다. 도량 입구에는 숙지황, 신당귀, 감초, 대추 등을 달여 만든 ‘약차’가 준비돼 있다. 주지스님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기도성취 도량으로 잘 알려진 영취사에 마침 신도들이 사시예불을 드리고 있다. 예불 드리는 스님을 불러낼 수도 또 그렇다고 기다릴 수도 없어서 준비해온 선물만 살포시 내려놓고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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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현봉, 무학대사 기도 수행처이자 북한산의 주봉
영취사 옆 능선 길로 접어들어 30분 남짓 이동하니 일선사(一禪寺)에 도착한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 길에 ‘보현봉 등산길은 없으니 제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니온 듯 발길을 돌려주세요’라는 팻말이 적혀있다. 약간은 적대적인 문구에 고개가 갸우뚱해지지만 사전에 주지스님과 연락을 해놓았기에 걱정 않고 들어선다.
일선사 경내는 영취사보다 더 작고 아담했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드리고 나오니 주지스님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스님 곁에는 황구 한 마리가 찰싹 붙어있다. 천둥 번개가 치던 어느 날 어미 들개가 절에 들어와 새끼만 놓고 가버렸다. 그 새끼를 거둬 키운다 해서 ‘습득이’라 이름 붙였다. 습득이는 처음엔 우리에게 눈길도 안 주더니, 스님과 가깝게 있는 걸 보더니 그때부터 곁을 내준다.
마침 공양 시간이라 자원봉사자가 절에서 재배한 채소로 정갈하게 차린 밥상을 내온다. 아욱된장국, 깻잎장아찌, 배추김치로 밥을 싹싹 긁어먹고는 후식으로 스님이 산 밑에서 지게질로 이고 온 멜론까지 해치운다.
일선사 뒤로 조금 올라가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던 보현굴이 나온다. 보현봉 바로 아래 위치한 보현굴은 무학 대사의 다라니 독송 기도로 일명 ‘다라니굴’로도 불린다. 주지스님은 “풍수지리적으로 보현봉, 남산, 관악산 이 세 봉우리를 놓고 한양 중심 터를 잡았기 때문에 북한산의 주봉은 단연 보현봉”이라고 강조한다.
강한 바람에 운무가 물러나면서 서울 시내 풍경이 가득 펼쳐진다. 맑을 때는 사대문 안은 물론 멀리 목동, 수락산, 구리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무학 대사가 왜 이곳을 수행터로 삼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데 보현굴 바위에 새겨진 칠성도와 산신도 곳곳에 페인트와 시멘트 칠로 훼손된 흔적이 보인다. 국립공원공단이 1980년대부터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일반인 출입을 막고 있지만, 악심을 품고 몰래 들어온 사람들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절 입구에 ‘보현봉 출입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금한다’는 팻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시시각각 운무에 가려졌다 다시 드러나는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주지스님이 말을 꺼낸다.
“보현봉은 북한산 남쪽 봉우리 중에서 올라가는 시간이 가장 짧으면서도 하늘과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개척교회 목사들이 일명 ‘능력봉’이라고 부르며 기도를 하기 위해 많이 찾아왔어요. 그때 방화, 훼불 사건도 자주 발생했죠. 3~4년 전부터 제가 손을 조금씩 봐오고 있지만, 이미 많이 훼손된 터라…. 그동안 지켜야 할 곳을 못 지키고 있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커요.”
경치를 슬쩍슬쩍 감질나게 보여주던 구름이 어느새 시내 전체를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갈 길을 서두르며 주지스님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스님께 민폐만 끼치고 가네요. 필요하신 물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다음엔 조용히 들러서 절 앞에 놓고만 갈게요.”
“그러지 말고 다음에도 공양 함께 하고 가요. 그게 내 존재 이유이자 즐거움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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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 산과 절을 지키다
일선사를 나와 20분가량 올라가면 대성문과 북한산성이 나온다. 북한산성은 1711년 한양수도를 수호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축조에 많은 스님이 동원됐다. 북한산성을 왼쪽에 두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대남문 갈림길이 나온다. 거기에서 대성암과 금위영터가 있는 방향을 택해 마지막 절 중흥사(重興寺)로 향한다.
산행 시작부터 거침없이 산을 오르며 일행의 숨을 가쁘게 한 이세용 씨는 여전히 지친 기색 하나 없다. 1년에 마라톤 하프 15번, 풀코스 7번 완주하는 강철 체력의 그로서는 이 정도 산행쯤은 가뿐할 터.
마지막 코스는 전반적으로 평이한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이 틈을 타 ‘산의 매력이 뭐냐’고 말을 걸어 본다. 그는 “쉽게 지루해지는 바다와 달리 사계절 내내 옷 갈아입듯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 말한다.
일선사를 나선 지 2시간 만에 노적봉 아래에 있는 중흥사에 도착한다. 중흥사는 북한산성을 쌓고 지킨 승군(僧軍)들의 총지휘자 팔도도총섭이 주둔하던 북한산 중심 도량이었다. 하지만 구한말 홍수와 화재로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있다가 2005년 대웅전을 시작으로 2018년 도총섭까지 완공해 거의 옛 모습을 회복했다. 이 씨는 오랫동안 중흥사 근처 용혈봉에서 절의 복원 모습을 지켜 봐왔다. 마침내 완성된 모습을 봤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절에는 ‘산감(山監)’이라는 소임이 있어요. 그야말로 산을 지키는 소임인 거죠. 산을 지키는 건 언제나 스님들이었어요. 전국 모든 산이 다 그래요. 특히 북한산 같은 경우에는 스님들이 직접 산성을 쌓으며 국가를 수호했죠. 문화유산 훼손을 막기 위해 절을 지키는 일선사 주지스님부터 대승보살 사상 속에서 등산객에게 차를 내어놓고 소통하고 교감하려고 하는 영취사 주지스님까지. 모두 산과 절을 지키는 감사한 스님들이죠.”
오전 9시 서울 성북구 정릉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한 산행은 저녁 7시가 돼서야 서울 은평구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마무리됐다. 그는 산행을 끝마치며 마지막 기도를 잊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하게 산에 잘 다녀왔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