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축제가 끝났다. 미래통합당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여러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예고된 패배였다. 한 마디로 통합당의 지도부는 정치할 줄을 몰랐다. 특히 황교안 대표는 정치인으로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를 선장으로 선택한 순간 거대 야당은 뒤뚱거리기 시작했다. 지도부가 ‘촛불 민심’을 외면하고 태극기가 휘날리는 광란의 집회에 나갔으니 참으로 해괴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태로웠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할 수는 없다. 정치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한다.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내뱉은 울음과 한숨을 삼켜야 한다. 저잣거리에 나가 공동선을 뽑아내야 한다. 황교안 대표는 전혀 민의를 판독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왜냐면 그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었다. 그가 오로지 싸움에만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평 변호사의 분석이 자못 타당하다.
“황교안 대표는 여러 훌륭한 자질을 가졌음에도, 그가 살아온 일생은 공동체의 선과 직결된 흔적은 별로 없다. 공안검사로 우리 사회의 사상적 질서를 바로잡아 왔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강한 반발을 갖는 국민들이 더 많다. 그에게는 이처럼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예가 결핍된 무미건조한 인생의 면들이 대부분이다. 국민들은 심정적으로 이런 이에게 지지의 손을 흔들기 어렵다.”
맞다. ‘무미건조한 인생’은 정치판에 뛰어들면 안 된다. 정치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손발은 쉼 없이 움직이고 가슴은 따뜻해야 한다. 공동선은 책상 앞에서 상상만으로는 뽑아낼 수 없다. 백성들의 원성이 고여 있는 흙탕물 속에 들어가야 한다. 현장과 현실을 외면하면 정치인이 아니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려면 정치판을 떠나야 한다. 철저하게 정치인이었던,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았어도 끝까지 민의를 섬겼던 김대중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은 심산유곡에 핀 한 떨기의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난 연꽃이다.”
정치지도자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튀어나와 각광 받는 인물은 위험하다. 우리는 검증받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겠다며 떠들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사람은 조용하며 신중하다. 늘 역사 속에 자신을 비춰본다.
역사와 승부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승리한다.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잘못된 정치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망친다. 민심은 처음에는 속을지 몰라도 이내 가짜를 감별해낸다. 민심은 벼락처럼 빠르지 않다. 그러나 나중에는 벼락을 내린다. 민심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꼭 심판한다. 그래서 빼어난 정치인은 민심을 제대로 판독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농성장의 구호는 무섭지 않다. 다수의 침묵을 두려워해야 한다. 민심의 저류를 탐색해야 한다.
정치가 지겹다며 정치인을 무조건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이 나쁜 정치를 해도 그것들을 바로 잡는 일 역시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증오하며 나쁜 정치를 방관하면 결국 그 피해는 자신(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좋은 정치인 하나를 탄생시킴은 그 사회의 축복이다.
미래통합당은 지금 가장 잔인한 봄을 맞았다. 민심에 버림받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민심을 얻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다. 사견이지만 가장 먼저 진정한 정치인을 수장으로 맞이했으면 한다. 그래야 보수의 품격을 되찾았을 수 있다. 시대정신에 당론을 맞출 수 있다. 세간의 명성이나 이력만을 좇아서 영입을 서두르면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사회이건 좌우의 날개가 튼튼해야 멀리 날 수 있다. 통합당의 힘찬 비상을 기대해본다.
요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새삼 ‘정치는 예술이다’는 말이 실감난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보고싶다. 하지만 좋은 지도자의 출현을 원한다면 스스로 좋은 심판자가 돼야 할 것이다. 우리가 깨어있어서 응원하고 보살펴야 비로소 ‘진흙탕에서피어난 연꽃(정치인)’을 볼 수 있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용성 평전』 『성철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뿔난 그리움』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