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전국병원불자연합회장 류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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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전국병원불자연합회장 류재환
  • 허진
  • 승인 2020.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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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약왕보살? '못해'의료봉사 없는 생활!

전국병원불자연합회(이하 병불련)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병불련은 불교계 의료봉사 단체로 스님, 불자, 이주노동자 의료봉사 등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의료봉사를 꾸준히 전개해 의료 포교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병불련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류재환 회장(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주임교수) 연구실에 들어서자 벽면에 투박하게 붙어있는 색바랜 사진 몇 장이 눈에 띈다. 해외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사진 속 류 회장의 모습이 앳되다. 언제부터 자비의 인술을 펼쳐온 건지, 오랫동안 봉사의 끈을 이어온 원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    가랑비 옷 젖듯 스며든 불교
류 회장은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본 기억이 없다. 늘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어머니 때문이다. 수학여행에 보내는 대신 사찰 행사에 데리고 간 독실한 불자 어머니 영향으로 류 회장은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됐다. 어머니가 보시를 너무 많이 하는 게 아까워서 보시하는 어머니를 말린 적도 있었지만, 어머니에게 불교가 든든한 정신적 의지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가랑비 옷 젖듯 불교를 받아들인 류 회장 역시 지금은 부처님 법 속에 살고 있다.
“저는 ‘인과응보’를 절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행한 대로 업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인과응보 정신으로 산다면 누구나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베푼 만큼 돌려받겠다는 바람은 전혀 없다. ‘무주상보시(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라는 개념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의료봉사를 하다 보면 상대방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순간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류 회장은 백령도로 의료봉사 갔을 때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백령도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예요. 그런데도 전국병원불자연합회 봉사단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로 우릴 맞아줬습니다. 사단장님은 이례적으로 우리가 군용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봉사하는 곳에 직접 찾아와 음료수를 돌리며 봉사자들을 독려했어요. 봉사가 끝난 뒤에는 70여 명 봉사자 모두 백령도 GP(관측소)를 구경하도록 배려해줬고요. 지위와 종교를 떠나 봉사단을 대우해주는 모습에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고 불자로서 뿌듯했습니다.”
류 회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경희의료원 옆 연화사에 들러 기도를 드린다. 당직서는 날 연화사에서 들려오는 새벽예불 소리에 어지러운 마음이 편해진다. 병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안식처 역할을 하는 절이 있고 부처님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한 류 회장이다.

|    짧지만 강렬했던 탄허 스님과의 만남
의사가 되고 환자를 많이 보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지만 류 회장은 원래 내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이었다. 그런 류 회장이 대학교 다닐 때 학생들의 추천을 받아 떠밀리듯 과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 주로 허드렛일을 도맡았지만, 덕 본 일이 하나 있다. 탄허 스님 바로 옆에 앉아 의학 상담을 해줬던 일이다. 예과 1학년, 오대산으로 학과 엠티를 갔을 때 탐방 차 들른 월정사에서 당시 회주였던 탄허 스님을 만났다. 과대표였던 류 회장은 탄허 스님 바로 옆에 앉게 됐는데, 스님이 자기 몸의 증상을 말하며 상담을 구했다. 큰스님이 학생 앞에서 솔직 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에 류 회장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의학적 지식이 많지 않았지만 아는 선에서 조언을 드렸다.
“월정사 현판이 탄허 스님 친필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스님께 ‘무슨 체입니까’하고 서체를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스님이 ‘저건 체가 아니고 그냥 선(禪)체다’하시더라고요. 선수행을 하면 나오는 체라니, 스님 말씀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엷은 갈색 선글라스를 쓰신 인자한 스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    미사여구 필요 없는 봉사
류 회장은 대학 내 의료봉사 동아리 ‘녹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4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비의 인술을 펼치고 있다. 토요 봉사는 15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봉사의 끈을 이어온 원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지는 않을까.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보통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보람을 느끼는 걸까. 거창한 답변을 기대하고 물어봤다.

첫 의료봉사 경험은 어땠는지?
“그땐 의학적 지식이 적을 때니까 교수님 지도 아래 환자를 돌봤습니다.”

의료봉사 가면 환자들 반응이 어떤지?
“와서 상담도 하고 검사도 받고 필요한 약품도 받으니 좋아하시지요.”

바쁜 와중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인데 귀찮거나 힘들지는 않은지?
“전혀요. 제 소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예기치 못한 평이한(?) 답변에 질문 내용을 살짝 바꾸어가며 ‘어떤 원력으로 의료봉사를 하는지’에 대해 재차 물었다. 류 회장은 집요하게 반복되는 질문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글쎄요. 봉사는 계속해왔던 거라….” 문득 월정사 현판 서체에 대한 탄허 스님의 말씀 “그냥 선(禪)체다”가 떠올랐다. 선수행을 하면 저절로 나오는 선체. 선수행 그 자체로서의 선체. 류 회장이 미사여구를 붙여 말을 지어내지 않은 것은 봉사를 통한 자비 실천에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봉사는 가치 판단 대상이 아니라 ‘선(禪)’ 그 자체일지 모른다. 봉사가 삶이 되어버린 류 회장, 가족들의 지지는 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봉사가 생활이 되다 보니 가족들도 서운해하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고 있습니다.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는 조카들도 현재 의료봉사를 하고 있고요.”

 

|    스무 살 병불련, 쑥쑥 자라라
1999년 서울 지역 5개 병원 불자회 20명 인원으로 시작했던 병불련. 20년이 지난 지금 400여 명의 회원이 소속된 단체로 커졌다. 회원 모두가 의료봉사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봉사에 원을 세워 적극적으로 봉사에 참여하는 회원도 있지만, 불교 신행 활동만 하는 회원도 있다.
“처음엔 봉사자에게 활동비를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단체 기금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활동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외 봉사의 경우 비행기 푯값만 개인이 부담하고 숙식 등 나머지 비용은 단체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봉사에 참여하는 회원이 점점 늘 거라고 봅니다.”
병불련은 2016년 사단법인으로 인가받고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으로부터 진료 차량, 약품 등을 지원받아 진료 환경을 개선했다. 작년 12월엔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되어 개인, 단체, 기업으로부터 지정기부금을 모금할 수 있게 됐다.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VMS) 도입으로 회원들은 봉사활동에 대한 인증도 받을 수 있다. 류 회장 취임 이후 병불련 회원들이 힘을 모아 이뤄낸 성과다. 류 회장의 아픈 이를 향한 배려는 끝이 없다. 의료봉사 현장에서 진료한 환자와 투약 이력을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전자의무기록(EMR) 도입을 준비 중이다. 일회성 봉사에 그치지 않겠다는 의지다. 경희의료원 내 법당 설치도 병원 측에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 병원 밖 연화사가 있지만 병원 안에 법당이 있어야 환자와 가족이 편하게 부처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봉사 횟수 제한 없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언제든 찾아가 안전하게 1년 봉사 잘 마무리했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데 류 회장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마스크를 선물로 건넨다. 요즘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워 여러 번 재사용한다고 흘리듯 말한 기자의 한 마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스크 매번 갈아쓰시라고….” 건강부터 염려하는 그의 오랜 습관이 엿보였다.    

 

글. 
허진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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