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낡은 가죽끈으로 육신을 이끌고
중인도와 남인도 전역을 유행(遊行)하며 부처님과 스승인 용수 존자에게 부촉 받은 법을 전하던 가나제바(迦那提婆) 존자는 자신의 육신이 노쇠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기다리고 있는 외도와 이교도들의 삿된 주장을 바로잡기 위해 대론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가나제바도 이제는 무리한 논쟁을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노쇠한 육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가나제바가 어느 날 북인도의 가비라국(迦毗羅國)에 이르렀다.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하기를 그 나라에서 유명한 장자(長者)인 범마정덕(梵摩淨德)의 집에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장자의 집으로 향했다.
#2 끊임없이 돋아나는 버섯
가나제바 존자가 범마정덕의 집에 이르니 장자는 존귀한 스승의 방문을 환영하며 예를 갖추었다. 가나제바는 범마정덕의 얼굴을 살피며 이처럼 생각했다.
‘이 장자는 전생에는 선근공덕을 많이 지었고, 현세에서는 복덕을 갖추고 있구나. 그 공덕의 인연으로 아주 특별한 아들이 한 명 출생했는데 그 아들이 뛰어난 인재가 될 사람이구나.’
범마정덕 역시 가나제바를 보고 알 수 없는 존경심이 일어났다. 현재 자신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원인을 설명해 주실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어 침묵을 깨고 조용히 앉아계신 가나제바에게 말씀드렸다.
“저의 집안 정원에 조금 특별한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나무에서 생겨나는 것의 생김새가 마치 목이버섯과 비슷한데 그 버섯으로 요리를 하면 향기와 맛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러나 집안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버섯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러니 채취할 수도 없습니다. 집안에서 오직 저와 저의 둘째 아들 라후라다(Rāhulata)의 눈에만 보여서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버섯을 채취하고 나면 곧 다시 그 자리에서 버섯이 돋아난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 나무가 우리 집안의 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일이 무슨 연유인지 저희는 도무지 알지 못하니 존자께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선근공덕(善根功德)의 인연
범마정덕의 이야기를 들은 가나제바는 깊은 명상에 들어 그 일의 과거 인연을 알게 되었고 장자에게 말하였다.
“장자의 집안에서 옛날에 한 비구스님에게 정성스럽게 공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구스님이 수행에 철저하지 못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오래도록 시주를 받으면서 헛되이 시주물만 축내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 스님은 시주물을 함부로 누렸기에 과보를 받게 되었는데 현재 장자의 집 정원에 버섯나무로 태어나 그 은혜를 갚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제바에게 과거 인연을 들은 범마정덕은 기이한 인연이라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의문이 들어 “그러면 왜 다른 사람들은 그 버섯을 보지도 못하고 오직 저와 저의 둘째 아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가나제바는 “그 비구스님에게 공양을 올릴 때 장자의 집안에서 오직 장자와 장자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렸기에 그 버섯을 채취해 먹을 수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가나제바의 설명을 듣게 되니 그동안에 일어났던 기이한 일들에 대한 의심이 해결되었다. 범마정덕은 가나제바가 과거 인연까지도 모두 알고 계신 뛰어난 스승임을 알고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4 최상의 공덕은 부처의 씨앗을 발현시키는 일
가나제바는 조용한 음성으로 환희에 가득 차 자신을 바라보는 범마정덕에게 말하였다. “장자님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요? “장자는 “저는 올해 79살입니다.” 가나제바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장자에게 법문했다.
입도부통리(入道不通理) 부처님 가르침의
세계에 들어와서도 진리를 알지 못하면
복신환신시(復身還信施) 다시 태어나서라도
신도의 은혜를 갚아야 하네.
여년팔십일(汝年八十一) 그대의 나이 81세가 되면
기수부생이(其樹不生耳) 그 나무에서
더는 버섯이 생겨나지 않으리라.
게송을 들은 범마정덕은 더욱 탄복하여 가나제바에게 말씀드렸다.
“존자님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늙어서 존자님을 스승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저의 둘째 아들은 선근공덕도 있고 영민한 구석이 있으니 존자님을 따라 출가하여 스승님으로 모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범마정덕의 말을 들은 가나제바는 그의 둘째 아들 라후라다를 출가시키고 제자로 받아들인 후 전법의 게송을 설하고 곧바로 삼매에 들었다.
해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가나제바 존자의 전법 여정은 실로 험난하고 고단했다. 본래 가나제바의 이름은 ‘아리야제바(Ārya-deva)’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주위의 사람들이 이름을 ‘가나제바(Kānadeva)’로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
범준 스님
운문사 강원 졸업. 사찰 및 불교대학 등에서 출재가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전임 강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