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공덕은 부처의 씨앗[佛性] 발현. 가나제바 존자와 범마정덕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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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공덕은 부처의 씨앗[佛性] 발현. 가나제바 존자와 범마정덕 장자
  • 범준 스님
  • 승인 2020.03.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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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直指)로 만나는 선지식

#1    낡은 가죽끈으로 육신을 이끌고
중인도와 남인도 전역을 유행(遊行)하며 부처님과 스승인 용수 존자에게 부촉 받은 법을 전하던 가나제바(迦那提婆) 존자는 자신의 육신이 노쇠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기다리고 있는 외도와 이교도들의 삿된 주장을 바로잡기 위해 대론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가나제바도 이제는 무리한 논쟁을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노쇠한 육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가나제바가 어느 날 북인도의 가비라국(迦毗羅國)에 이르렀다.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하기를 그 나라에서 유명한 장자(長者)인 범마정덕(梵摩淨德)의 집에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장자의 집으로 향했다.

#2    끊임없이 돋아나는 버섯
가나제바 존자가 범마정덕의 집에 이르니 장자는 존귀한 스승의 방문을 환영하며 예를 갖추었다. 가나제바는 범마정덕의 얼굴을 살피며 이처럼 생각했다. 
‘이 장자는 전생에는 선근공덕을 많이 지었고, 현세에서는 복덕을 갖추고 있구나. 그 공덕의 인연으로 아주 특별한 아들이 한 명 출생했는데 그 아들이 뛰어난 인재가 될 사람이구나.’ 
범마정덕 역시 가나제바를 보고 알 수 없는 존경심이 일어났다. 현재 자신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원인을 설명해 주실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어 침묵을 깨고 조용히 앉아계신 가나제바에게 말씀드렸다.
“저의 집안 정원에 조금 특별한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나무에서 생겨나는 것의 생김새가 마치 목이버섯과 비슷한데 그 버섯으로 요리를 하면 향기와 맛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러나 집안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버섯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러니 채취할 수도 없습니다. 집안에서 오직 저와 저의 둘째 아들 라후라다(Rāhulata)의 눈에만 보여서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버섯을 채취하고 나면 곧 다시 그 자리에서 버섯이 돋아난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 나무가 우리 집안의 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일이 무슨 연유인지 저희는 도무지 알지 못하니 존자께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선근공덕(善根功德)의 인연
범마정덕의 이야기를 들은 가나제바는 깊은 명상에 들어 그 일의 과거 인연을 알게 되었고 장자에게 말하였다.
“장자의 집안에서 옛날에 한 비구스님에게 정성스럽게 공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구스님이 수행에 철저하지 못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오래도록 시주를 받으면서 헛되이 시주물만 축내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 스님은 시주물을 함부로 누렸기에 과보를 받게 되었는데 현재 장자의 집 정원에 버섯나무로 태어나 그 은혜를 갚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제바에게 과거 인연을 들은 범마정덕은 기이한 인연이라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의문이 들어 “그러면 왜 다른 사람들은 그 버섯을 보지도 못하고 오직 저와 저의 둘째 아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가나제바는 “그 비구스님에게 공양을 올릴 때 장자의 집안에서 오직 장자와 장자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렸기에 그 버섯을 채취해 먹을 수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가나제바의 설명을 듣게 되니 그동안에 일어났던 기이한 일들에 대한 의심이 해결되었다. 범마정덕은 가나제바가 과거 인연까지도 모두 알고 계신 뛰어난 스승임을 알고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4    최상의 공덕은 부처의 씨앗을 발현시키는 일
가나제바는 조용한 음성으로 환희에 가득 차 자신을 바라보는 범마정덕에게 말하였다. “장자님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요? “장자는 “저는 올해 79살입니다.” 가나제바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장자에게 법문했다.
입도부통리(入道不通理) 부처님 가르침의 
세계에 들어와서도 진리를 알지 못하면
복신환신시(復身還信施) 다시 태어나서라도 
신도의 은혜를 갚아야 하네.
여년팔십일(汝年八十一) 그대의 나이 81세가 되면
기수부생이(其樹不生耳) 그 나무에서 
더는 버섯이 생겨나지 않으리라.

게송을 들은 범마정덕은 더욱 탄복하여 가나제바에게 말씀드렸다.
“존자님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늙어서 존자님을 스승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저의 둘째 아들은 선근공덕도 있고 영민한 구석이 있으니 존자님을 따라 출가하여 스승님으로 모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범마정덕의 말을 들은 가나제바는 그의 둘째 아들 라후라다를 출가시키고 제자로 받아들인 후 전법의 게송을 설하고 곧바로 삼매에 들었다.

해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가나제바 존자의 전법 여정은 실로 험난하고 고단했다. 본래 가나제바의 이름은 ‘아리야제바(Ārya-deva)’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주위의 사람들이 이름을 ‘가나제바(Kānadeva)’로 바꾸어 부르고 있었다. 
‘가나제바(Kānadeva)’의 ‘가나(Kāna)’는 한쪽 눈이 멀어 ‘애꾸눈’이라는 뜻이다. 인도 전역을 다니며 외도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아리야제바는 낯선 지역에서 논쟁을 펼치다 외도들에게 공격을 당해 한쪽 눈을 다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애꾸눈’이라는 이름의 ‘가나제바’가 되었다. 신체적 상해를 당함에 그치지 않고 가나제바는 여전히 각지를 다니며 외도들과 논쟁과 대론을 펼치다 남인도의 어느 지역에서 이교도의 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나제바는 남인도 출신으로 자신도 처음에는 복업을 구하는 것이 최상의 선업이고 수행이라 주장하며 변론을 즐기는 이교도이며 외도였다. 여러 곳을 다니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던 가나제바는 대승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용수 존자를 만나 ‘모든 존재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공종(空宗)의 이치를 깨닫고 제자가 되었다. 그 후 가나제바는 『백론(百論)』를 저술하고 용수와 함께 중관학파를 창시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일생 험난한 전도의 여정을 다닌 가나제바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가르침은 범마정덕에게 주는 게송이라 할 수 있다. 게송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수행자는 수행본분에 충실하여 인과(因果)를 알아야 한다. 『직지(直指)』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수행자가 본분에 충실하지 못하여 신도님들의 정성어린 공양을 함부로 누리기만 하고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거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다음 생이 되어서라도 신도의 집 정원에 버섯나무로 태어나 그 은혜를 되갚음 해야 한다는 무서운 인과법칙을 말하고 있다. 왜 하필 버섯인가. 
버섯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최상의 공경을 나타내며 은혜를 갚기에 가장 적합한 의미를 가진다. 『춘다의 경(Cunda-sutta)』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즈음 마지막으로 드신 음식은 말라족 춘다가 공양한 ‘수카라-맛다바(Sukara-maddava)’라는 고기 맛이 나는 버섯요리였다. 춘다는 가장 귀한 음식인 버섯을 요리하여 부처님께 최상의 공경을 드린 것이다. 
고대부터 불교에서는 육류를 대신해 몸을 보호하는 음식으로 버섯을 최고의 식재료로 사용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은 이유로 수행본분을 다하지 못한 수행자는 시주의 은혜를 갚기 위해 가장 귀한 식재료인 버섯으로 태어나 그 은혜를 갚는 것으로 보인다.
출가수행자를 경계하기 위한 인과법칙은 중국과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범마정덕의 버섯과 유사한 설화 형식이다. 
“어떤 출가수행자들은 근본을 망각하고 도리어 자신의 입과 몸만을 위하고 있다. 밭을 갈거나 누에 치는 수고로운 노동을 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취하여 국가의 왕, 부모님도 섬기지 않고, 군역과 부역을 면제받아 안락한 삶에 탐닉하고 있다. 또한 가사와 법복을 입은 채 세상의 인연을 도둑질하고 경쟁하며 언쟁하는 것을 절집의 중요한 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출가자들은 늙어 가도록 뉘우칠 줄 모르다가 죽어서는 신도의 정원에 버섯이 되었으니 진실로 애달프지 않은가.”(『치문경훈』 「여산동림혼융선사시중(廬山東林混融禪師示衆)」)
당나라 때 인과응보와 관련된 설화들을 편찬한 『석문자경록(釋門自鏡錄)』에 수록된 73편의 이야기 중 「해만불근록(懈慢不勤録)」에는 “신라의 한 선사가 수행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후에 고기를 생산하는 나무로 환생하여 생전에 자신에게 공양한 신도에게 보답하였다”는 이야기가 보인다. 
둘째, 최상의 공덕은 부처의 씨앗을 발현시키는 일이다. 가나제바는 범마정덕에게 나이를 묻고 81세가 되면 버섯이 돋아나지 않을 것이라 한다. 범마정덕이 과거에 한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리고 선근공덕을 지은 것은 현상적으로 공덕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공덕의 과보를 다하는 유루공덕(有漏功德)이다.
범마정덕이 81세가 되면 그 공덕이 다하게 되니, 한계가 없는 최상의 공덕[無漏功德]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범마정덕 자신에게 있는 부처의 성품[佛性], 부처의 씨앗을 발현시켜 중생을 이익되게, 안락하게, 행복하게 하는 것이 최상의 공덕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범준 스님
운문사 강원 졸업. 사찰 및 불교대학 등에서 출재가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전임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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