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 카밧진 박사를 알 것입니다. 분자생물학 박사이자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명예교수인 그는 의학에 명상을 도입,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을 기반으로 한 스트레스 완화(MBSR)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명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았을 만큼 보편화되었습니다. 동양의 명상이 현대 서양에서 꽃을 피워 다시 동양으로 역수입된 것입니다.
카밧진 박사 역시 한국의 숭산 스님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숭산 스님은 특히 서양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많은 외국인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고, 존 카밧진 박사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숭산 스님은 2004년에 입적하여 오늘의 우리는 스님의 진면목을 뵐 수 없지만, 가르침은 여러 제자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카밧진 박사의 저서 《Mindfulness for Beginners》가 2012년 한국에서 《존 카밧진의 처음 만나는 마음챙김 명상》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숭산 스님에 대한 감사를 담은 서문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카밧진 박사의 마음에 담긴 숭산 스님의 면모와 가르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따듯한 글이었습니다. 그 글의 전문을 독자님과 나눕니다. 진정한 마음챙김 명상의 뜻을 새겨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 카밧진 지음 안희영 옮김 | 16,000원
온전한 삶을 위한 마음챙김 명상
한국 독자들에게 이 짤막한 서문을 쓰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나는 한국의 명상 문화와 전통에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내가 열정적으로 명상을 수행하여 수행의 깊이가 깊어지는 데 한국의 참선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74년 나는 한국의 숭산 대선사를 만났습니다. 당시 프로비던스 선원을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숭산 스님은 그곳에서 ‘용맹정진’이라는 이름의 수행 모임을 지도하고 계셨습니다. 법문과 수행자 인터뷰가 함께 진행되었는데, 스님께 수행을 배우면서 그분의 가르침이 지닌 가치와 힘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존감과 장난스러움, 집착 없음을 동시에 체현하고 계셨던 스님의 가르침은 매우 심오했습니다. 스님은 대중 강연과 개인 인터뷰에서 “다르마 대결(선문답)”이라고 하는 과격한 대화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의 습관을 깨고 나오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스님은 당시 우리에게 “여러분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그러나 정말 제정신이 아니려면 아직도 멀었어요.”라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런 말씀은 우리가 자신의 마음과 생각 습관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를 진정으로 알게 해주었습니다. 거기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나머지 우리는 스님이 “모르는 마음”이라고 부른 열린 자각(알아차림)을 가지고 단순히 현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에조차 우리는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낭만과 신비를 추구하고 있던 우리였기에 그러한 사소하고 직접적인 질문에도 우리는 혼란스러워하기 일쑤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질문에 매우 기발하면서도 심오한 대답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스님은 거울처럼 우리를 비추며 자애롭게 계셨습니다. 우리가 자기 생각의 독재에 얼마나 갇혀 있는지를 깨닫고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여 지금 이 순간을 진실로 경험할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한 경험은 경이로운 모험이었습니다.
숭산 스님은 선(禪)을 가르치기 위해 미국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브라운 대학 학생들이 스님을 중심으로 모임을 형성하기 전인 초창기에 스님은 조그마한 세탁기 수리점에서 일을 하며 자신이 아는 한인 사회의 지인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스님은 세탁기를 고치는 것에서 막 문을 연 선원을 돌보는 일까지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스님 자신이 “이름과 형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진정으로 집착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스님의 모습은 눈을 크게 뜨고 삶의 더 깊은 의미를 찾아 헤매던 미국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님의 가르침은 대부분 12세기 한국의 위대한 선사인 지눌 스님의 본래면목에 대한 가르침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숭산 스님이 속해 있던 조계종에서 수 세기 동안 간직해온 전통이었습니다. 숭산 스님은 자신의 삶으로 이 가르침을 체현하였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당신만의 독특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그것을 전승하였습니다.
당시 나는 보스턴 근교의 브랜다이스 대학 생물학과에서 분자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또 내가 가르치던 일반 과학 과목의 일부로 명상과 요가도 함께 지도했습니다). 내가 가르치던 한 학부생이 숭산 스님 이야기를 들려주며 프로비던스에 가서 직접 그분을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스님과의 첫 만남은 기대한 대로였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프로비던스 선원의 지부인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근교의 캠브리지 선원에서 책임 지도자로 있었습니다. 1974년과 1975년에 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스님을 따라 몇 차례 집중 수행을 지도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갔습니다. 나의 책 『온정신의 회복(Coming to Our Senses)』에 스님의 놀라운 지도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 시절 숭산 스님께 배워 영감을 받은 덕분에 나는 이 세상에 지혜와 자비가 늘고 고통이 줄어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이 될 것인지 수년간을 숙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계는 연구실 일과 요가 강습 등을 통해 유지했습니다. 1979년 나는 매사추세츠 대학 의료 센터에서 스트레스 완화 클리닉과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BSR)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세계 곳곳에 알려진 MBSR은 마음챙김 명상과 그것을 통해 얻는 지혜를 의료, 건강 돌봄, 심리학, 비즈니스, 교육, 법조계, 정치권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과 기관에 소개하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내가 대담하게 결심하고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거의 대부분 “마음으로 분별하지 말고 직접 나아갈” 것을 강조하신 숭산 스님의 영향입니다.
숭산 스님과 함께 공부하던 시절, 우리는 한인 사회에서 우리를 위해 준비한 훌륭한 한국 음식을 많이 접했습니다. 나는 그 음식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이 음식들을 가끔 선원의 공양간에서 우리가 직접 담근 김치를 푸짐하게 곁들여 먹었습니다. 스님은 내게 심검도(心劍道)를 가르치는 지인을 소개해주며 심검도를 익혀 참선 수행을 보완하라고 권했습니다. 본질적인 면에서 그 둘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심검도 2단을 딸 때까지 열심히 수련했지만 당시 집안일로 너무 바빠 더 높은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이 책의 정수는 한국적이거나 미국적인 것, 불교적이거나 비불교적인 것이 아님을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진실로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온전한 인간이 되어 삶 그 자체를 사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지눌 스님은 그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던 듯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챙김이 성장하고 꽃을 피워 날마다 매 순간의 모든 일, 모든 수준에서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를 기원합니다.
존 카밧진
2012년 9월 12일, 매사추세츠 우즈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