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의 일상다담(日常茶談)] 마포구 홍반장, 경륜 스님의 신나는 오지랖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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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의 일상다담(日常茶談)] 마포구 홍반장, 경륜 스님의 신나는 오지랖 인생!
  • 양민호
  • 승인 2020.02.1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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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석불사
경륜 스님
1974년 아산 봉곡사에서 묘각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법주사 석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통도사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수원 봉녕사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제12·13·14대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서울시립 목동청소년수련관장을 지냈으며 2018년 12월 정년퇴임했다. 현재 마포 석불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세상은 넓고, 스님이 할 일은 많다!
“제가 한 오지랖 해요.” 서울 마포구 도심, 높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대로 안쪽에 숨은 듯 자리한 절 석불사에서 경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내어준 따뜻한 작설차 한 잔 마시며 본격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 준비를 하는데, 대뜸 자기 고백부터 한다. 시작부터 흥미진진. 즐거운 이야기가 펼쳐질 듯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잠시 고민하 다가 먼저 서울시립 목동청소년수련관 이후부터 물었다. 지난 2018년, 20년간 몸담았던 수련관 (관장 정년퇴임) 을 떠나 ‘그냥 스님’으로 돌아온 스님의 일상이 궁금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20 년 동안 하다가 그만두니까, 일상이 많이 달라질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워낙 바시락거리는 성격이다 보니까 가만히 못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동안 미뤄왔던 일도 좀 하고, 새로운 일도 계속 찾아내서 하고 있습니다.”
그간 스님은 수련관 외에도 어린이집과 유치 원을 오랫동안 운영해 왔고, 마포구 도화동 주민 자치위원과 자치위원장을 맡으며 지역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 왔다. 그만하면 충분할 듯싶은데도 여전히 스님은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늘 스님 앞에는 할 일이 태산이다.
무슨 일 욕심이 그리 많으냐 물었더니, 절 안에만 있으면 할 일이 별로 없지만 절 밖으로 나와 보면할 일이 정말 많단다. 요즘은 주요 사업 (?) 으로 실버 세대를 위한 봉사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지금까지 젊은이들 삶을 응원하고 돕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아요. 그쪽 일에 대한 미련은 없는 데, 그것 말고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련관장 퇴임을 앞두고 고민을 많이 했죠. 그리고 결심한 게 지역 어르신들을 돕자는 거였어요. ‘소나기’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요. 소통, 나눔, 기쁨을 줄여 쓴 말입니 다. 매달 한 번씩 우리 동네에 나눔의 소나기를 내리자는 뜻을 갖고 있어요. 현재 회원이 45명 정도 되는데, 매달 만 원씩 기부금을 내서 형편이 어려운 지역 주민들에게 음식과 밑반찬 등을 해다 드리고 있습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라 이웃 종교인도 오시고, 많은 분이 함께해 주고 계십니다.”
스님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하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절을 홍보하고, 불교를 알리 려는 숨은 뜻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저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소신껏 하는 것뿐이란다. 그런데 따라온 결과가 놀라웠다. 주민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었음은 물론, 자연스럽게 그 이름이 알려져 이제는 마포구를 대표하는 절과 스님이 되었다. 상 복도 넘쳤다. 수련관장으로 재작하던 시절 목동청소년수련관이 2017년 여성가족부 선정 최우수청소년수련시설로 뽑혔 고, 주민자치박람회에서 스님이 활동하던 도화 동이 우수 사례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 적으로는 2018년 전국불교사회복지대회에서 국회의장 공로상을 수상했는데, 최근 또 한 번 경사가 있었단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줄 아세요? 청소만 잘해도 표창장을 줘요. 요 앞에 마포어린이공원이 있는데요. 제가 서울시에 자청해서 청소하겠 다고 했어요. 공원에 오는 사람들이 깨끗한 공원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웬걸 상을 다 주더라고요. 재밌지 않아요? 나는 그냥 내가 좋아서 일을 하는데, 누군 가는 그걸 보고 즐거워하고, 고맙다고 이렇게 상도 주고… 물론 상 받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너도나도 기분 좋은 일이 계속해서 커지 잖아요.”
나눔의 공덕, 불교에서는 늘 선행을 말한다.
그리고 선행으로 인해 얻게 되는 공덕의 무량함을 강조한다. 지역 주민을 위해 잠시도 손발을 멈추지 않는 스님.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덕의 크기가 얼마만큼일까. 남 좋은 일 해본 게 손에 꼽을 정도인 사람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나는 살아가리라, 매일 미친 듯이!
경륜 스님은 참 유쾌한 사람이다. 상대를 대하는 표정과 몸짓, 말투에 즐거운 기운이 가득하다. 스님에게 세간 사람들이 말하는 ‘긍정의 힘’이 가득한 것 같다고 말했더니, 끄덕끄덕, 본인도 인정한 다. 평소 스스로에게 칭찬의 말을 많이 한다는 스님. 그런 삶의 자세가 여러 차례 힘든 고비를 넘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30대 후반 부터 각종 병마와 씨름하느라 여덟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던 스님이지만, 그 모습 어디에서도 병에 시달린 흔적이나 고통으로 인해 그늘진 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젊어서 처음 병을 앓았을 때는 모든 게 절망적이었죠. 눈앞이 캄캄하고, 대체 내가 무슨 천벌 받을 짓을 했나 하고 원망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명색이 내가 스님인데, 죽음이란 헌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 으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그동안 아픈 이들 에게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도 모두 가식이었던 가. 그런 생각이 드니까, 더는 고통스럽지 않았습 니다. 오히려 좋은 친구가 생겼다 싶었어요. 저는 스스로 의료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뛰어난 의료기술 덕분에 낡은 몸을 리모델링해서 새것처럼 쓰고 있잖아요. 지난 2017 년 두 다리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았고, 이듬해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어요. 죽을 만큼 아팠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아 있습니다. 작년에는 설악산 봉정암도 다녀왔어요.”
스님은 앞으로도 몸이 따라주는 한 끝까지 오지랖 인생을 살아갈 생각이다. 이제는 석불사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과 연계할 수 있는 프로 그램을 개발하고,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은 가엾은 아이들을 위한 템플스테이, 마포구를 찾는 외국인들을 위한 우리 문화 알림 템플스테이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일찌감치 마포 경찰서, 마포구청 관광과와 업무협약 (MOU) 도 맺었다. 그런 스님께 공적인 일 (?) 말고, 올 한 해 개인적으로 바라는 목표는 없는지 물었다.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습관이에요. 미친 듯이 놀고, 미친 듯이 일하죠. 새해라고 특별할건 없어요. 그저 지금 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면 매일이 새날이고, 새해예 요. 구체적으로 몇 가지 얘기하면, 우선 취미활동인 사진 찍기를 새롭게 해보고 싶어요. 제가 접사로 꽃술 찍는 걸 좋아하는데요. 더 깊이 파고들고 싶어서 현미경을 구입했어요. 또 하나는 요즘 한창 유행인 드론을 이용해 시골 사찰 풍경을 담아 보고 싶어요. 아직은 용기가 안 나서 생각만 하고 있는 단계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석불사가 공식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되도록 노력할 생각이 에요. 더 많은 사람이 이곳 석불사에 와서 한국 문화와 절 문화를 배워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 할 일이 참 많다고. 혼자서 다 하려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더니, 스님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만만하게 웃는다. 자기가 딴 건 없어도 인복은 타고났다며.
수련관에서 일할 때도, 지역 공동체를 위해 일을 할 때도 늘 곁에 좋은 사람이 많았단다. 스님이 한 일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자기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전부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말한다.
문득 스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은 스님을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해졌다. 수련관 퇴임식 때 직원들이 스님을 위해 만들어주었다는 책 (일종의 롤링페이 퍼) , 스님이 평생 간직할 단 하나의 책이라며 애지 중지하는 그 책에서 작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몸이 불편했던 한 직원이 떠나는 스님께 전했다는 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에 나온 명대사였다.
‘오 캡틴, 마이 캡틴 (Oh Captain, My Captain) !’

글.양민호 사진.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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