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활과 아름다운 신부감 찾기
인도의 전통 사회에서는 훌륭한 집안의 딸을 두고 많은 구애자가 있을 때 좋은 신랑감을 찾기 위한 대회가 열리곤 했다. 신화 속에서도 훌륭한 신랑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큰 흥미를 불러일으 킨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는 판다바 형제의 셋째 아르주나가 드라우빠디라는 아름다운 공주를 얻기 위해 기라성 같은 경쟁자 들을 물리쳤으며, 또 다른 대서사시 『라마야나』 의 주인공 라마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위데하 (Videha) 왕국의 공주 시타를 품에 안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대회에서 모두 매우 다루기 힘든 신성한 활이 등장한다는 것이 다. 『라마야나』의 위데하 왕국에는 쉬바 신이 사용했다는 활이 대대로 전해져오는데, 그것은 쏘기는커녕 들어 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대회는 사실상 쉬바의 활을 들어올려서 활줄을 걸고 화살을 메긴 채로 당기기만 해도, 아니 활을 들어 올리기만 해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활을 라마가 들어 올려서 줄을 걸고 화살을 메긴 다음 잡아당 기자 활이 그만 부러지고 만다. 그것으로 대회는 라마의 승리였다.
『마하바라타』에서 빤짤라 왕국의 드루빠다 왕은 아름다운 공주 드라우빠디의 신랑감을 찾기 위해 대회를 열었다. 여기서도 특별한 활이 등장한다. 드루빠다 왕은 힘센 사위를 얻기 위해 매우 단단하고 굽히기 어려운 활을 만들어서 그 활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윗감을 찾고 있었 다. 드라우빠디의 미모와 인격에 관한 소문을 들은 수많은 신랑감들이 여러 나라에서 찾아왔지만 모두 활을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그때 아르주 나가 등장하여 그 활을 마치 오래전부터 다루어온 듯이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 활줄을 걸고 화살을 메긴 후 시위를 당겨 금빛 과녁을 가볍게 뚫어 버렸다.
이렇게 신성한 활은 아름다운 신붓감을 찾는 특별한 매개체였다. 그런데 그 신성한 활이 부처 님의 신화, 싯다르타의 청년 시절에도 등장한다.
아름다운 신부를 얻기 위한 활쏘기 대회
싯다르타의 혼인에 대해서는 문헌에 따라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여기서는 여러 문헌의 내용을 간추려서 전하도록 한다.
왕자의 나이 16세, 숫도다나 왕은 아들을 위해 우기와 건기, 그리고 겨울에 쓸 궁전을 각각 지어주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아들이 이제 16 세가 되었다. 이제 내 아들을 혼인시키고 태자로 책봉해야겠다.’ 숫도다나 왕은 삭까족 장로 회의를 소집하고 왕자의 혼인 문제를 의논하였다. 대신들이 다투어 자신의 딸을 추천하자 숫도다나 왕은 그 결정 권을 왕자에게 맡기겠다고 말한다. 왕자는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젊고 건강하며 아름다우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삿된 생각을 품지 않고, 시부모를 자기 부모처럼 섬기며,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몸처럼 돌보고 부지런한 여인이라면 승낙하겠습니다.”
숫도다나 왕은 여러 가지 보배로 노리개를 만들어 왕자에게 주면서 그것을 성안의 처녀들 에게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러고는 대신들로 하여금 왕자가 어느 처녀에게 호감을 갖는지 지켜 보도록 했다.
왕자가 신붓감을 모색한다는 소식이 이웃 나라 꼴리야에까지 전해졌다. 꼴리야의 왕 숩빠붓다는 외동딸 야소다라에게 넌지시 권하였다. “너도 가서 싯다르타 왕자에게 노리개를 받아오너라.”
수많은 처녀들이 왕자에게 노리개를 받으러 모여들었다. 싯다르타 왕자를 본 처녀들은 그의 멋진 모습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어떤 처녀는 왕자의 위력에 눌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노리 개를 받았다. 준비된 노리개가 이미 동이 났을 때야소다라가 나타났다. 야소다라는 왕자에게 예를 갖춘 후 말했다. “저에게도 노리개를 주십시오.”
왕자는 야소다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몸매가 뚱뚱하지도 야위지도 않고, 피부가 희지도 검지도 않았으며, 표정과 몸짓은 명랑하면서도 단정했다. “노리개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신 가락지를 드리겠습니다.” 왕자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가락지를 빼서 야소다 라에게 주었다. 그것으로 사실상 신붓감은 야소 다라로 결정되었다.
소식을 들은 숫도다나 왕은 꼴리야의 숩빠붓다 왕에게 대신을 보내어 청혼의 뜻을 전했다. 숩빠붓다 왕은 말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학문과 무예를 겸비한 대장부만을 사위로 맞이해왔습니다. 싯다르타 왕자는 궁궐에서 곱게 자란 나머지 학문과 무예를 충분히 익히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내 딸을 원하는 수많은 청년들과 겨루어 승리한다면 원하시는 대로 딸을 보내도록 하지요.”
여러 문헌에서 싯다르타 왕자는 학문과 무예를 따로 익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왕자가 출가할까 염려한 왕이 왕자가 세상의 이치를 빨리 아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숩빠붓다 왕의 제안을 들은 숫도다나 왕은 걱정이 앞섰다. 아버지가 걱정하고 있음을 눈치챈 왕자는 말했다.
“아버지시여, 걱정하지 마시고 스와얌바라
(Ⓢsvayaṃvara) 에 보내주십시오.”
숫도다나 왕은 걱정이 앞서면서도 아들을 행사장에 보냈다.
야소다라 공주를 두고 펼쳐진 스와얌바라에는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삭까족의 청년들이 나타났다. 그중에는 싯다르타의 사촌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스승 밑에서 단련해온 그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실력을 자랑하였다. 그들에 비해 싯다르타 왕자는 상대적으로 준비가 덜된 편이었다.
그러나 수학 과목과 논쟁 과목에서 싯다르타 왕자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생애에 공덕을 쌓았고, 더욱이 중생 구제의 원력을 분명히 세운 싯다르타 왕자는 이번 생애에 큰 수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난 생애에 닦았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싯다르타를 제외한 청년들은 이제 무예를 겨루는 시합에 기대를 걸었다. 사색형인 싯다르타가 무예에는 약할 것이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예 과목 중에서는 역시 활쏘기가 관건이었 다. 2구로사 (俱盧舍, Ⓢkrośa )마다 쇠북을 세워놓고 쏘아 맞히는 경기였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2구로 사나 4구로사의 과녁을 맞히는 것으로 족했다.
데바닷타가 4구로사의 과녁을 맞히자, 난다는 6 구로사를 맞혔다. 마하나마는 8구로사의 쇠북을 맞혔다. 싯다르타는 10구로사에 쇠북을 놓고 활을 당겼다. 그런데 활이 우지끈 부러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시험관에게 말했다. “내가 힘껏 당겨도 괜찮은 활은 없습니까?”
숫도다나 왕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신에게 명하였다.
“나의 부왕이신 시하하누 왕께서 쓰시던 활을 가져오시오. 시하하누 왕께서 돌아가신 후로는 활줄을 걸 사람조차 없었는데, 싯다르타 왕자가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활을 받아든 왕자는 단숨에 활줄을 걸고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날아간 화살은 10구로사 거리의 쇠북을 정확 하게 관통하였다. 이때 왕자가 쏜 화살은 하늘에서 인드라 왕이 잡았다. 인드라는 화살을 기념물로 만들고 그 화살이 날아온 날을 명절로 삼아 매년 꽃과 향을 화살 앞에 공양하였다. 그 뒤에도 검술과 말과 코끼리 다루기 등의 무예를 겨뤘지 만, 모두 싯다르타 왕자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 다. 심판관은 외쳤다.
“승리자는 싯다르타 왕자님이십니다.”
명사수와 여장부
부처님의 생애 속에서 야소다라의 이미지는 잘떠오르지 않는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 태자의 아름다운 아내이지만 남편의 출가로 외로워졌 고, 게다가 아들까지 진리를 위해 떠나보낸 약간은 비극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이름일 뿐이었다.
그러나 신화에 따르면 이미 야소다라는 오랜 생애 동안 부처님의 전생인 보살의 아내였다.
대부분의 문헌 속에서 야소다라는 매우 당당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가마를 타고 궁전으로 들어서다가 비단 휘장을 걷어버렸고, 나중에는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갔다. 이 일화를 통해 보더라도 야소다라는 수줍음 많은 여성이 아니었 다. 사랑하는 아들을 진리를 위해 당당하게 출가 시킬 수 있었던 여인이었으며, 마침내 스스로 출가의 길을 걸은 여장부였던 것이다.
활은 고대에 가장 무서운 무기였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적도 물리칠 수 있는 신묘한 무기였 다. 신화에 활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여장부인 크샤트리아의 딸을 신부로 맞이하려면 활을 잘 다루는 것이 관건이었던것 같다. 라마도 아르주나도 싯다르타도 모두 명사수였다. 활은 무기이면서도 그 모양이 부드러운 곡선이다. 부드러운 곡선, 그러나 그 부드러움 에서 강인한 힘이 나온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장 부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아름답게 구부러진 나무에 질긴 줄을 걸어서 당긴 후 놓는 활, 활의 재료가 되는 나무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게 굽을 수 있어야 하고, 줄은 팽팽해야 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최대한 당기긴 하지만, 당긴 채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놓아야 한다. 수행도 그러해야 하리라. 최대한 당길 수 있어야 하고, 마침내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이 활을 잘 다루는 명사수이셨듯이, 우리 불자들도 ‘인생이란 활’을 잘 다루는 명사수가 되어야 하리라.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북한산 중흥사에서 살고 있다. 출가 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