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강력하다. 이야기와 주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영화만큼 효과적인 것을 찾기 어렵다. 상상을 눈앞에 보여주고 현실로 믿게 만든다.
좋은 의도와 훌륭한 내용을 담는다면 영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어떤 매체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위대한 유산 (The Great Legacy, 2013) >은 착한 의도와 훌륭한 내용을 담은 영화다. 다만 약간은 거칠고 덜 세련됐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제작하고 연출한 이시 담마 (Isi Dhamma, 부처님 가르침을 수행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는 불교 수행자이다. 프랑스계 스위스인으로 미얀마에서 위빳 사나를 수행하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는 미얀마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2008 년부터 4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해탈 (2008) >, <위대한 유산 (2013) >, <열반, 욕망의 상자 (2014) >, <진리의 향기 (2015) > 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모두 불교를 다룬 것이다.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동기에 대해 “누구나 명상할 수 있다. 인내 심을 갖고 진지하게 명상을 시작해야 하고, 오직 명상만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 석음을 막을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보고 명상을 시작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영화는 음악과 더불어 현대 사회에 가장 영향력 있고 돈을 잘 벌어들이는 연예 산업이 됐다. 이념의 종말을 지난 후 대부분의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제작된다.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의 자본이 투입되고 잘되면 그 수십 배에서 수백 배를 벌어들인다. 결국 영화를 만들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돈이고, 둘째도 돈이고, 결론도 돈이다.
영화 <위대한 유산>은 그런 상식을 가볍게 부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배우는 미얀마 만달레이의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그 주변인들이고 장비는 목공 교실에서 사용하는 낡은 카메라이며, 자원봉사와 시주로 제작비를 만들어 완성된 영화는 무료로 공개했다. 불교의 가르침은 선한 동기와 의지를 갖고 걸림 없이 행하며 그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위대한 유산>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까지도 불교적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예미는 눈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 했다. 아버지는 볼펜 한 자루와 수수께끼를 유산으로 물려주고 숨을 거두었다.
취직하기 위해 카메라가 필요했던 예미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겼던 루비를 찾기 위해 수수께끼를 풀러 나섰다. 루비가 세 마녀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 냈지만 힘에 부쳐 찾을 수가 없었다. 마녀들과 실랑이 속에서 그녀를 돕던 사촌 자매 이이퓨를 잃게 된다. 예미는 생전의 이이퓨와 부친의 권고대로 스님을 찾아가 명상을 시작했다.
<위대한 유산>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잘 짜인 구성을 갖고 있다.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관객의 궁금증을 이끌어 가고 흥미로운 초능력과 귀여운 (?) 액션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를 볼 어리고 젊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모두 담았다.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 역을 실제 스님이 맡았는데 “영화는 젊은 세대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라서 출연했다”라고 한다.
진지한 법문보다는 영화가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불교 설화가 삽입되고 배우의 입을 통해 “지 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니 괴로워 말고, 다만 바라밀을 닦아 마음을 고요히 하면 우리가 괴로움을 견디고 살아가는 일도 쉬워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도 들을수 있다. 수행의 목적이 특별한 능력을 얻는 데 있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라는 사실도 일깨운다. 실제로 우리를 가두어 자유를 빼앗는 것은 “현실의 진실한 모습을 부정하고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을 좇는 태도가 마음의 감옥을 만든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다”라고 일러준다. 우리는 진실로 가는 실마리를 눈앞에 두고도 그 본 모습을 놓쳐 쓰레기통에 처박고 가짜 보석을 쫓아간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겪는 상황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예미는 스님으로부터 명상을 배운다. “휴대폰을 자신의 감각이라 믿는” 태도를 벗어나 호흡에 집중하고 우리 몸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감각에 주목해 간다. 영화는 명상의 실제적인 방법까지 일러주고 있다. 결국 예미는 1년간의 명상을 마치고 세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수수께끼를 풀고 루비를 찾았으며 그 루비가 실상은 가치 없는 모조품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냈 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거금을 발견하여 카메라를 사러 갔는데, 그 또한 좋은 선택이 아님을 깨닫고 탁발 나온 스님께 시주를 하였다.
영화를 보는 순간 화면 속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을 사실처럼 보여주고 찰나 찰나의 장면을 모아 긴 이야기를 짜 맞추어 나간다.
그림 속에서 생략되고 건너뛴 내용도 마음으로 상상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지면 현실과 다시 만나야 한다. 극장 안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빈 화면과 사라져버린 배우들의 몸짓. 그리고 돌아가야 할 실제 세상. 불교는 분명해 보이는 현상마저 환상인 마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물거품처럼 이슬처럼 그림자 처럼 번갯불처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며 무상하며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화야말로 불교의 본질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교본인 셈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이시 담마는 아마도 또 다른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또는 완벽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들이 주저하는 사이, 누군가는 미숙하지만 할 수있는 힘을 모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영화로 만들었 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언젠가 수행하기 좋은 때가 올 것이라고 기다리지 말라.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수행을 시작할 때이다”라고. 명상하고 수행하는 데달리 장소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부터 자신의 숨결을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이 이 영화가 전해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남긴 교훈이기도 하다.
● 이 영화는 한국어 자막판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시 담마의 모든 영화, 그리고 미얀마에서 제작한 다른 불교 영화들도 유튜브를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글.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