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구사론』에 따라 소개한 ①부터 ⑧까지의 팔대지옥은 흥미롭게도, 베다에서 분파되어 기록되었다고 전해지는 데위(Devī)·비슈누(Viṣṇu)·바가와타(Bhagavata) 등의 대표적인 푸라나(Purāṇa)들과 마누(Manu)·야즈냐-왈캬(Yajña=valkya) 등의 스므르티(Smṛti)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1 21종에서 28종까지 지옥의 종류가 문헌마다 다르게 소개되고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팔대지옥의 용어들 가운데 ④ 마하-라우라와(Mahā=raurava) ⑤ 라우라와(Raurava) ⑦ 칼라-수트라(Kāla=sūtra)가 문헌들 각각에 공통으로 등장한다. 특히 다르마-샤스트라(Dharma=Śastra), 즉 ‘법론(法論)’으로 불리는 마누-스므르티(4.87-)와 야즈냐왈캬-스므르티(3.222-)의 경우 ① 아위치(Avīci)를 제외한 7종이 일치하고, 바가와타-푸라나(5.25.6-)의 경우 ② 프라타파나(Pratāpana) ③ 타파나(Tapana) ⑥ 상가타(Saṁghāta) ⑧ 산지와(Saṁjīva)를 제외한 4종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팔대지옥이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팔한(八寒)지옥에 대한 용어나 이야기는, 필자 나름의 탐문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관련된 문헌들 밖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팔한지옥이 불교 내에서 새로이 생겨난 개념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생각의 근거는, 어느 정도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지만, 인도학자이자 불교학자인 벨기에의 에띠엔 라모뜨(Étienne Lamotte)가 나가르주나(Nāgārjuna)의 『대지도론(大智度論)』 한역본을 프랑스어로 옮긴 역서에서 엿볼 수 있었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하기로 한다.
팔대지옥
우선 본 칼럼은 팔대지옥, 그 각각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어떠한 특징을 지니 고 있는지 범본의 『구사론』2과 라모뜨의 『대지도론』3, 그리고 범본의 바가와타-푸라나4의 문헌들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는 과연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그러한 내용일까? 소개 순서는 『대지도론』의 순서에 따라 최상층의 지옥부터 시작한다. 각 지옥에서 받는 형벌의 내용은 『대지도론』과 푸라나를 필자가 번역하여 편집한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등활지옥 산지와(Saṁjīva)를 의역한 등활(等活)은 ‘소생’의 의미를 지닌다. 『대지도론』(p.56-8)에 따르면 살아생전 짐승과 같은 피조물들을 죽이거나 전장에서 서로를 죽이거나, 노예·여자·아이들을 죽인 자들이 떨어지는 이 지옥에서 그 죄인들은 날카로운 칼이나 무기들로 서로를 참혹하게 해치고, 결국 의식을 잃
어 죽기 일보 전까지 간다고 한다. 하지만 전생의 업으로 인해 이들에게 찬바람이 불어오고 지옥의 사령(使令)들이 부를 때 소생하는데, 다시 살아났지만 이와 같은 형벌은 계속된다고 한다. 산지와는 ‘생명력’을 뜻하는 jīva-에 ‘완전한/충만한’의 접두사 sam-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흑승지옥 칼라-수트라(Kāla=sūtra)를 의역한 흑승(黒縄)은 ‘검은색의 줄’을 뜻하며, 산스크리트 또한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대지도론』(p.958)에 따르면 이 줄에는 철로 된 도끼가 달려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령으로 있는 락사사(Rākṣasa)란 끔찍한 악마들이 죄인들의 몸에 갖다 대어 수족을 자르는 고통을 준다고 한다. 이 죄인들은 살아생전 선량한 사람들을 비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을 거짓말로 죽게 만드는 등 사악한 언행으로 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반해 푸라나(5.26.13)에는 부모나 브라만들에게 악의를 품은 자들이 죽어서 이 지옥에 온다고 적혀 있다. 또한 여기에는 줄이 아니라 구리로 된 검은 색의 판(板)이 10,000요자나(yojana) 넓이로 깔려 있고, 죄인들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육신 내외부의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1 요자나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필자는 대략 12km정도로 본다.
중합지옥 상가타(Saṁghāta)를 의역한 중합(衆合)은 대략 ‘여러 무리의 공격’을 의미한다. 『대지도론』(p.958-9)에 따르면 이 지옥은 전생에 가축과 새들을 죽인 자들이 죽은 후 떨어지는 이 세계이다. 죽임을 당해 분개하는 이 모든 동물이 각자의 모습을 하고, 또한 락사사들도 온갖 동물의 모습을 취하고 무리를 지어 죄인들에게 다가가 조각을 내는 고통을 준다. 살아생전 약자를 억누르는 데 힘을 행사한 자들은 두 개의 큰 산에 깔리는 형벌을 받고, 욕심·증오·어리석음·두려움으로 인해 선행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옳은 길을 마다하고 성스러운 법을 왜곡한 자들은 불에 휩싸인 커다란 철륜(鐵輪)에 깔리는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상가타는 ‘때리다/죽이다’의 어근 (G)HAN에 완료분사 -ta-가 붙어 형성된 ghā-ta와 ‘함께, 공동으로’의 접두사 sam-으로 구성되는 단어이다.
규환지옥 라우라와(Raurava)를 의역한 규환(叫喚)은 ‘큰 울부짖음’을 뜻하며, 『대지도론』(p.959-6)에 따르면 락사사(Rākṣasa)가 견디기 힘든 고문을 가할 때 죄인들이 내는 끊임없는 고통의 큰 울부짖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푸라나(5.26.9-10)의 이야기는 이와 다르다. 특히 라우라와의 해석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 문헌에서 라우라와는 루루(Ruru)라는 독사보다 더 잔인한 피조물들의 세계이다. 이들은 살아생전 자신들에게 고문과 살해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 자들로 인해 이 세계에 태어나고, 그 가해자들은 사후 이곳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루루들은 당한 만큼의 고통을 그들에게 그대로 되돌려준다는 이야기이다. 어원이 분명하지 않지만, 단어 파생의 과정은 대략 명사인 ruru-에서 브릇디(vṛddhi) 현상을 통해 ‘루루에 속하는’의 형용사 *rauru-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접미사 a가 붙어 ‘루루에 속하는 세계’의 명사 raurava-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규환지옥 마하-라우라와(Mahā=raurava)를 의역한 대규환(大叫喚)은 ‘훨씬 더 큰 울부짖음’을 의미한다. 『대지도론』(ibid)에 따르면 약탈·고문·살인 등 규환 지옥에서와 유사한 악행들로 인해 오게 된 지옥이라며, 죄인들은 이곳에서 가스로 가득찬 방이나 감옥에 갇혀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푸라나(5.26.11)의 이야기가 더 개연적이게 느껴진다. 루루들은 이 세계에서 인육을 먹는 크라뱌다(kravyāda)로 불리며 더 무시무시한 괴물로 진화해 있고, 부도덕한 수단으로 착취·고문·살인을 자행한 죄인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피조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크라바댜는 ‘살’을 뜻하는 크라뱌(kravya)와 ‘먹는 사람’의 아다(AD-a)가 결합한 합성어이고, 그렇기에 라우라와에 ‘큰, 위대한’이라기보다 ‘무시무시한’의 의미가 더해진 마하(mahā)가 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지( 초열지옥 타파나(Tapana)를 의역한 초열(焦熱)은 ‘타는 듯한 열’을 의미한다. 『대지도론』(p.960-1)에 따르면 전생에 부모·스승·사미(沙彌)·브라만,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자들이 이 지옥에 떨어진다. 그들은 팔팔 끊는 소금물의 가마솥에 던져지고, 뼈와 관절이 분리되고, 피부와 살이 녹는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타파나는 ‘열을 내다, 뜨겁다’를 뜻하는 어근 TAP에 중성 명사를 만들어내는 접미사 -ana-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대초열지옥 프라타파나(Pratāpana)를 의역한 대초열(大焦熱)은 초열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대지도론』은 이 두 지옥을 한데 묶어 묘사하고 있지만, 필자의 소견으로 위의 내용에 이어지는 다음의 이야기가 대초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따로 소개해본다. 마치 고기를 요리하듯 삶아진 죄인들의 육신은 락사사들이 물고기를 낚듯 삼지창으로 건져 올린다. 이후 찬바람으로 소생한 그들은 마치 물고기가 낚이고 뜨거운 모래에 던져지듯 뜨거운 석탄에 내팽개쳐지고, 화염에 휩싸인 그들은 눈코 등 육신의 모든 기관에서 불꽃을 내뿜는다. 프라타파나는 TAP에 접두사 pra-이 붙은 ‘열로 고통을 받다’의 어근 pra-TAP과 접미사 -ana-로 구성된 명사로서 대략 ‘열에 의한 고통’을 뜻한다.
무간지옥 아위치(Avīci)를 의역한 무간(無間)은 사이나 간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비(阿鼻)로도 음역되는 이 지옥의 경우 『대지도론』(p.961)에 따르면 락사사들이 철로 된 방망이로 죄인들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리쳐 부수고, 이후 그들은 500개의 못으로 몸을 고정시켜 마치 쇠가죽처럼 펴지는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설명만으로는 아위치란 용어와 연결을 짓기 어려운 듯 보이고, 죄목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푸라나(5.26.27)에서는 돈이 오가는 상거래나 재물을 기부할 때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이 지옥에 떨어지고, 죄인들은 100 요자나 높이의 가파른 산 정상에서부터, 물결로 보이지만 사실은 바위들로 되어있는 지면으로 곤두박질치며 굴러떨어진다고 묘사되고 있다. 죄인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지만 죽지 않으며, 이와 같은 형벌은 쉼 없이 계속된다고 한다. 어원이 명확하지만, ‘물결/파도’의 vīci-에 부정의 a-가 붙기에 avīci-는 ‘물결/간격/쉼이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팔열지옥
이상의 팔대지옥은 팔열(八熱)지옥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두 개의 명칭은 한자권의 웹-검색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열’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대)초열지옥을 제외한 나머지 지옥들의 특징을 보면, 사실 ‘열’과는 뚜렷한 연계성이 찾아지지 않는다. 팔대지옥과 동급으로 불리는
경우는 범본 『구사론』(3장 164/23)뿐이다. 이 문구를 번역해보면 “…그렇기에 이것들은 뜨거운 팔대지옥으로 불린다.” 이 문구에서 ‘뜨거운’은 형용사 우스나(uṣṇa)로 표현되고 있다. 지난 호에 소개한 프루덴(Pruden)의 『구사론』 영역본(Vol.II p.459)에는 신기하게도 이 문구에 대한 번역이 빠져 있다.
| 소지옥
다른 한편으로 『대지도론』(p.963-4)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문헌에 따르면 팔대지옥 각각의 외부에는 16개의 소지옥(小地獄)들이 있고, 이 가운데 8개가 팔열지옥이라고 한다. 8종의 열지옥들과 각각의 특징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쿠쿨라(kukūla): ‘타오르는 검불 지옥’ ②쿠나파(kuṇapa): ‘똥 지옥’ ③아딥타-와나(ādīpta=vana): ‘타오르는-숲 지옥’ ④아시-팟트라-와나(asi=pattra=vana): ‘검과 같은-이파리-숲 지옥’ ⑤크수라-마르가(kṣuramārga): ‘칼날과 같은-길 지옥’ ⑥아야흐-샬말리-와나(ayaḥ=śalmali=vana): ‘철로 된-가시-숲 지옥’ ⑦와이타라니(vaitaraṇi):‘소금물 지옥’ ⑧탐라-스탐바(tāmra=stambha): ‘구리로 된-가시 지옥’. 이 가운데 ④, ⑥, ⑦의 3종은 앞서 언급한 푸라나들에서도 등장하는 지옥들이다.
산스크리트본이 없는 『대지도론』이지만, 소지옥은 범본 『구사론』(3장 164/11-)에 등장하는 용어로서 ‘부가, 첨가’를 뜻하는 웃사다(utsada)를 의역한 용어이다. 『구사론』 역시 16종의 소지옥을 말하지만, 각 대지옥의 사방(四方)에 문들이 있고, 각각의 문밖에는 ①, ②, ⑤, ⑦에 해당하는 4종의 소지옥들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맛지마-니카야』(MN 130)의 경우 팔리어로 ②에 대응하는 구타-니라야(gūtha=niraya), ①에 대응하는 쿡쿨라-니라야(kukkula=niraya), ⑥에 대응하는 심발리-와나(simbali=vana), ④에 대응하는 아시-팟타-와나(asipattavana)가 언급된다.
팔한지옥
모두에서 말한 것처럼 유래가 불분명한 팔한지옥은 범본 『구사론』(3장 164/25-)에서 ‘차가운, 한(寒)’의 시타(śītā)가 사용되며 언급되며, 팔대지옥 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지옥이라고 전한다. 이에 반해 『대지도론』(ibid)은 16종의 소지옥들 가운데 나머지 8종이 팔한지옥이라고 이야기한다. 최상층부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⑧알부타(頞部陀)로 음역되는 아르부다(Arbuda) ⑦니랄부타(尼剌部陀)로 음역되는 니르-아르부다(Nir-arbuda): 어원이 명확하지 않은 arbuda-의 의미는 대략 ‘부풀어 오른 종기’이며, 결여의 접두사 nir-가 붙으면 ‘종기가 터져서 없는 상태’가 된다. ⑥알찰타(頞哳吒)로 음역된 아타파(Aṭaṭa) ⑤확확파(臛臛婆)로 음역된 하하와(Hahava) ④호호파(虎虎婆)로 음역된 후후와(Huhuva): 고통의 비명소리에 따라 만들어진 의성어(擬聲語)로 보인다. ③올발라(嗢鉢羅)로 음역되는 웃팔라(Utpala): 청련(青蓮)을 의미하는 단어. 동상으로 피부에 시퍼런 금이 가 있는 상태를 연꽃잎에 나 있는 여러 가닥의 줄기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②발특마(鉢特摩)로 음역되는 파드마(Padma) ①마하발특마(摩訶鉢特摩)로 음역되는 마하-파드마
(Mahā=padma): padma-는 홍련(紅蓮)을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 엄청난 추위로 피부가 찢어져서, 후자의 경우 이 추위를 넘어선 극한(極寒)으로 몸이 찢어져서 붉은 피를 흘리는 것을 홍련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1. 이 문헌들은 http://gretil.sub.uni-goettingen.de와 http://titus.uni-frankfurt.de에서 볼 수 있다.
2. P. Pradhan (ed.) 1975 Abhidharmakośabhāṣyam of Vasubandhu. K.P. Jayaswal Research Center.
3. 서지정보: Étienne Lamotte (1949) Le Traite de la Grande Vertu de Sagesse de Nagarjuna
(Mahaprajnaparamitasastra). Tome II: Chapitres XVI-XXX. Louvain - Leuven. Réimpr. 1967.
4. 범본 텍스트는 http://gretil.sub.uni-goettingen.de/gretil/1_sanskr/3_purana/bhagp/bhp1-12u.htm 참조
● 이제 지옥계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다음 어원 여행은 천계와 관련된 용어이다.
전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인도유럽어학과에서 역사비교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연구재단 지원 하에 범본 불전(반야부)을 대상으로 언어자료 DB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대 언어학과와 연세대 HK 문자연구사업단 문자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팔천송반야경』(2019, 불광출판사),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반야바라밀다심경』(2012, 지식과 교양),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신묘장구대다라니경』(2005, 한국문화사)이 있다.
글.
전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