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하고 변화를 기대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뜨고 지는 해는 같지만 우리 마음은 새로워지길 바란다. 영화 <진리의 수행자(The Dhamma Brothers, 2007)>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교정 시설 중 하나인 앨라배마주 도날슨 교도소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높은 담과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쉽사리 자유의 몸이 되기 어려운 중범죄자들을 가둔 곳이다. 늘 긴장과 폭력 그리고 절망으로 뒤덮인 악업의 심판처이다. 그 담장 안과 밖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부처님은 우리들 모두 “욕망의 굴레에 갇혀 고통받는 죄수와 같다”라고 하셨다. 무지의 길을 따라 탐욕을 쫓고 난폭한 마음의 장난에 굴복하여 순간순간 고통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멈추지 않으면 습관의 덫에 걸려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교도소는 악행과 악업의 사슬에 걸린 보이는 결과일 뿐이다. 담 밖에서도 욕망의 고통은 계속되고 위태로운 무지의 길은 이어지고 있다. 마음은 선과 악, 죄와 벌의 경계선을 걷고 있다.
앨라배마주 교정국의 치료국장인 론 박사는 인도의 1급 교도소 티하르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바로 재소자들에게 불교 명상법인 위빳사나를 가르치는 일이다. 1993년 티하르 교도소 국장으로 부임한 키란 베디는 재소자들의 근본적인 변화, 인간성 회복과 출소
이후의 삶을 위해 위빳사나 명상지도자 고엔카(S.N. Goenka, 1924~2013)를 초대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와 교정 직원이 함께 고엔카의 위빳사나 10일 코스를 수행한 후 변화가 시작됐다. 일상이 됐던 폭력이 사라지고 출소자의 재범률이 반으로 줄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것인지 자각하게 되고 교도소는 명상 수행의 도량이 됐다. 현재 티하르에서는 약 1,000여 명의 재소자들이 수행을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에서 명상하기(Doing Time, Doing Vipassana, 1997)>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사례 보고로 세세한 사정들이 알려지자 그 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곳들이 늘어났다. 타이, 대만, 몽골 등에서 같은 프로그램이 시작됐고 성과가 따랐다. 재소자의 심리 문제를 담당하던 론 박사도 이 사실에 주목했다.
2002년 5월 20명의 희망자와 함께 도날슨 교도소의 체육관에서 10일 과정의 위빳사나 수행이 시작됐다. 첫 9일 동안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침묵 속에서 하루 종일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8시간 이상 방석 위에 앉아 들숨과 날숨을 살펴봐야 했다. 날뛰는 내면과 마주해서 휩쓸리지 않도록 씨름해야 한다. 그리고 감각이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육체와 정신의 긴장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쉴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는 “자신이 8년 동안 교도소에서 지낸 시간보다 더 힘들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이후 한 번도 그렇게 오래도록 고요하게 지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가며 명상에 빠져들고 내면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 순간을 “마음속에 천둥번개가 쏟아졌다”라고 표현한다. 명상에 참여한 재소자들은 자신의 행위와 습관에 대해 슬픈 감정이 밀려들고 눈물을 흘리게 됐으며, 이내 평온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모두가 행복하라. 진리의 길을 걷고, 그 길은 고요한 평화의 길이며,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고엔카의 육성과 함께 10일의 위빳사나 프로그램이 끝나자 20명의 재소자들은 서로를 형제로 받아들였다. 함께 수행을 격려하는 도반이 됐다. 변화는 확실하게 눈에 띄었다.
그들의 표정은 달라졌고 내면의 분노와 폭력이 사라졌으며 갇혀 있지만 늘 평온한 얼굴을 하고 지낼 수 있었다. 교도관과 가족 모두 그들의 변화를 실감했다. 현재 미국 교도소에서 명상과 위빳사나를 가르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됐다. 특히 중범죄자나 사형수, 무기수들이 명상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사례들은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순순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앨라배마는 강력한 기독교 중심지로 불교 수행법을 가르치는 데 반발도 컸다. 당장 교도소 목사의 반대로 2003년부터 위빳사나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재소자들의 수행도 금지됐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이 서로 만나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 조치는 목사가 바뀐 후에야 재소자들의 요청에 의해 해제됐다. 2006년부터 도날슨 교도소의 위빳사나 프로그램은 다시 시작됐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무지와 쌓인 습관과 충동에 의해 행동의 탁류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문제는 그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세세생생 쌓인 악행의 결과로 받는 악업을 어찌 돌이킬 수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티하르 교도소에 위빳사나를 도입한 키란 베디는 “처벌하여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일은 쉽지만, 그들이 언젠가 세상과 다시 만났을 때 선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라고 했다. 키란 베디나 론 박사 등은 현실을 이상으로 이끌고 나갔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을 통해 변화의 길을 마음에서 찾고 길을 잃은 이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일깨웠다.
그가 입은 옷과 신분과 처지에 상관없이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이가 수행자이며, 수행이 이루어지는 곳이 도량이다. 살인자도 성스럽게 깨어날 수 있고,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 한 숨을 쉴 것이고, 숨을 쉴 때마다 살필 수 있다. 호흡이 어떻게 들고나며, 감각이 어떻게 일어나며, 감정과 생각이 어떻게 나를 이끌어 가는지. 찬찬히 그것을 살피는 것이 위빳사나이다. 그 방법을 통해 부처님은‘고통과 고통이 멸하는 길’을 가르치셨다.
● 이 영화와 인도 티하르 교도소의 사례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리고 최근 몽골 교도소의 명상 프로그램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모두 유튜브에 공개돼 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