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하루여행] 첩첩산중으로 떠나는 가을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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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하루여행] 첩첩산중으로 떠나는 가을 소풍
  • 양민호
  • 승인 2019.11.06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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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산과 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 시기. 겹겹 산중이라 시간도 더디 흐를 것 같은 강원도 홍천에도 어느새 가을이 물들고 있었다. 계절의 속삭임을 따라 깊은 굽이를 돌아갔다.

# 배바위카누체험장 & 은행나무숲

홍천으로 들어서는 길목, 잠시 차를 멈춰 세운다. 춘천 남면과 홍천 마곡리를 잇는 충의대교 아래 홍천 강변에 위치한 배바위카누체험장. 청명한 하늘과 울창한 숲을 병풍 삼아 맑은 강 따라 노를 젓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낭만이 꿈틀댄다.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이곳에서 카누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성수기는 한여름 7-8월이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뱃놀이하기엔 더 좋은 철이 아닐까 싶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미풍을 등에 지고, 산빛과 물빛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유유자적 노닐기에 이만할 때가 없을 듯하다. 다시 올 이 계절엔 나도 저렇게 흘러 봐야지, 마음 속으로 기약하며 짧은 감상을 뒤로한다. 좀 더 깊은 곳, 굽이진 길을 달려 홍천의 동쪽 오대산 자락에 문을 연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선다. 노랗게 물든 수천 그루의 은행나무가 눈앞에 가을을 한껏 펼친다. 36년 전 병마와 씨름하는 아내를 위해 이곳에 터를 잡은 농장 주인이 하나둘 묘목을 심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연중 딱 한 달 10월에만 일반에 무료로 개방하는 데, 아무 때나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숲에 신비감을 더한다. 멀고 험한 길을 마다치 않고 온 사람들, 어귀에서 직접 기른 농산물로 장을 열어 이들을 맞는 마을 주민들, 흐드러진 은행나무 잎과 그
사이를 가득 채운 맑고 상쾌한 공기,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사랑스러운 한낮의 가을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낭만의 계절이다.

INFORMATION

은행나무숲

매년 10월 1일부터 한 달간 무료로 개방한다. 완전히 물든 은행 나뭇잎을 보려면 10월 둘째 주 이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 어려워 가능하면 자가용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686-4
033-430-4504

배바위카누체험장

20분 남짓 노 젓는 요령과 안전수칙을 배운 뒤에 카누타기를 즐길 수 있다. 카누잉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반. 카누 외에도 강변을 따라 트래킹과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카누 대여비는 성인 15,000원(기본 2인 탑승), 초등학생 10,000원, 미취학 아동은 무료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마곡길 153-5
033-434-3010

 

홍회루 안에 걸려 있는 목어 위로 세월의 때가 소복이 쌓였다.

홍회루를 통해 본 대적광전. 법당 문 사이로 황금빛 부처님이 눈에 들어온다.

# 수타사

홍천 공작산 아래 자리 잡은 천년사찰 수타사를 찾았다. 절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정문 격인 봉황문(鳳凰門)에 들어서자 양옆으로 소조사천왕상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큰 눈을 한 모습이 익살스러워 나도 몰래 미소 지어진다. 봉황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곧 바로 흥회루(興懷樓)가 나온다. 대규모 의식을 거행하거나 본전에 예배 올리기 위해 만든 강당 형식의 건물인데 전각 편액과 외벽, 그 안에 있는 목어와 법고에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어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그 뒤로 대적광전, 원통보전, 지장전, 삼성각 등이 자리해 있는데 절 마당에서 고개를 돌려 보면 한눈에 다 볼 수 있을 만큼 다들 소박하다. 크고 높고 우람한 것에선 느낄 수 없는 작은 것들만의 정겨움이 전해진다. 흥회루를 기준으로 좌우에 수타사가 자랑하는 보물 두 점이 있다. 왼쪽 종각에 동종(보물 제11-3호)이 있고, 오른쪽 성보박물관에 『월인석보』(권17-18, 보물 제745-5호)가 전시돼 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수타사를 찾을 이유가 충분하다 싶은데, 어째 한참을 구경해도 다른 사람 발길이 들지 않는다. 분명 절 주변은 사람들로 붐비는데 다들 무얼 하느라 바쁜 건지… 답답하고 궁금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보니 이유를 알겠다. 별천지다. 절 앞 연못에는 연잎들이 가득하고, 둘레길 따라 들어선 공작산 생태숲에는 각종 꽃나무가 알록달록하다. 자연이 수놓은 아름다움 앞에 제아무리 진귀한 보물이라도 눈에 들어올까. 덩달아 그 풍경에 섞여 향기로운 일부가 되어 본다.

INFORMATION

수타사 주변에 계곡,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 농촌 테마공원 등이 있어 여름철 아이들과 피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수타사와 공작산 생태숲을 따라 걷는 트래킹 코스(산소길: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 → 수타사 → 공작산 생태숲 → 출렁다리 → 용담 →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 총 3.8km)도 매력적이다. 홍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수타사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
033-436-6611

 

# 물걸리 사지

수타사에서 차로 40여 분 거리에 폐사지가 하나 있다. 통일신라 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물걸리 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석조대좌(보물 제543호),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삼층석탑(보물 제545호) 등 이곳에서 발견된 문화재의 수와 규모로 봤을 때 상당한 규모의 대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현재는 작은 터에 석탑과 석재(주춧돌, 장대석), 보물을 모신 보호전각만이 나지막이 놓여 있다. 보통 폐사지에 가면 휑한 기운에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싱숭생숭해지곤 하는데, 이곳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편안하고, 아늑하다. 높고 파란 가을하늘 때문일 수도 있고, 생기 넘치는 초록의 풀빛 때문일 수도 있고, 시골집 낮은 담장 너머로 들리는 소 울음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마치 가을 소풍이라도 나온 양 경쾌한 기분으로 절터를 둘러본다. 그러다 멈칫, 발이 멈춘다. 전각 문이 닫혀 있는 게 아닌가. 설마, 하고 황급히 달려 가보니 다행히 자물쇠가 잠겨 있지 않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문을 열어젖히니, 두 부처님이 중앙에 나란히 앉아 계신다. 두 손 모아 반배 올리고, 양옆에 주인
없는 대좌와 광배에도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 계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눈부신 가을 햇살이 부처님 전에 비친다. 환하고 포근한 기운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INFORMATION

물걸리 사지로 들어서는 길이 상당히 협소하다. 주차할 곳도 입구쪽에 차 한두 대 댈 만한 공간이 전부다.
대형차나 차량 여러 대가 함께 이동할 계획이라면 아랫마을에 차를 두고 걸어 올라갈 것을 권한다. 한편 물걸리 사지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로는 금동여래입상, 철불조각, 연꽃무늬 수막새, 당초무늬, 암막새, 하대석 등이 있다.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4

파란 하늘과 초록색 풀들로 뒤덮인 옛 절터.

물걸리 사지 한 쪽에 모아둔 석재들.

글.양민호 사진.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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