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지라도 /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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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불교]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지라도 / 김천
  • 김천
  • 승인 2019.11.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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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잔스카르에서 여인이 된다는 것

앞날에 오직 두 가지 선택밖에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할까. 다큐멘터리 <잔스카르에서
여인이 된다는 것(Becoming a Woman in Zanskar, 2007)>은 어린 시절을 뒤로 두고 여인이 되어가는 두 소녀의 이야기다. 잔스카르는 히말라야의 가장 깊은 곳이며, 옛 티베트 왕국의 서쪽 영토이다. 지금은 인도 잠무-카시미르주에 속했고 중국과 영토 분쟁이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인도에서 가장 어렵게 갈 수 있다는 히말라야 고산 지역 레와 라다크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닿을 수 있다. 라다크에서 잔스카르로 통하는 유일한 길은 1년 중 7개월 동안 끊기고, 고산 대부분은 9개월 동안 눈으로 덮여 있다. 설산에 숨겨진 그 땅은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옛 티베트의 문화를 고스란히 보듬고 있는 시간의 호리병이다.

 

영화 주인공인 잔스카르의 소녀 페키와 텐진은 절친한 친구이다. 어느 날 페키는 출가를 결심했다. 몇 년 동안 고심한 결과이지만 아버지는 딸의 갑작스런 선언에 극구 반대하고 화를 냈다. 어머니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용기 있는 결정”이라며 지지한다. 잔스카르에서 여인의 앞길에 놓인 세속의 삶이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평생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고단한 여정일 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교육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집안일을 하다가 결혼하면 시집에서 또 집안일을 하면서 평생을 지내야 한다. 페키는 그 길을 단호히 거부했다. 또 다른 선택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페키는 종교적 배움과 헌신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프랑스 감독 장 미셀 콜리온은 서구의 시각으로 자칫 빠지기 쉬운 문화적 편견 없이 잔스카르의 고립된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계몽의 시선과 가치 판단도 배제한 채 눈 덮인 히말라야의 삶과 문화와 인간의 선택을 화면에 담았다. 영화는 아름답고 두 소녀의 삶은 강건하다.

영화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매력을 가졌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록하고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영상으로 붙들어 둔다. 오래된 필름은 어떤 책과 이야기보다 현실의 모습을 더 잘 증언한다. 라다크만 해도 이미 문명의 진화가 이루어져 10년 전과 지금의 차이가 몰라볼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잔스카르의 삶을 담은 이 영화는 귀하다. 불교는 우리의 인식이란 감각과 그 경계가 만나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보는 것에 따라 인식이 이루어지고, 그를 통해 행동이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세속에서 우리는 매일 물질과 욕망의 대상들을 보며 살아가고, 소유와 성취를 갈망한다. 잔스카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눈과, 눈 덮인 산과, 눈 쌓인 대지뿐이다. 메마른 바람이 불면 눈가루가 날려 눈앞에서 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사이에서 햇빛은 오색으로 부서지며 춤추는 모습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아야 한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거칠고 힘겨우며 자연은 신성하고 만물은 거룩함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

잔스카르의 겨울, 사찰에서는 만물을 위해 기도하고 만다라를 짓고 다시 흐트러트려 세상을 축원한다. 잔스카르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욕망은 부질없다. 또 다른 소녀 텐진은 부모로부터 갑작스런 이야기를 들었다. “옆 마을에서 너 주라고 술 단지가 왔는데, 너는 못 마시니 우리가 마셔버렸다.” 그 이야기는 청혼이 들어왔고 부모가 허락했다는 말이다. 텐진은 저항하고 통곡하지만 이미 운명은 결정됐다. 페키는 스스로 출가를 선택했고, 텐진은 부모에 의해 결혼이 정해졌다. 결혼식은 3일 동안 치러졌으며 잔치는 열흘 동안 성대히 열렸다. 텐진이 신랑 뒤에 매달려 말을 타고 시집으로 갈 때 페키는 “행복하게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축원한다. 텐진이 떠난 후 그녀의 부모는 자식이 멀리 떠났다는 사실에 울고, 페키의 부모는 그녀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울었다. 페키 아버지의 분노는 점차 슬픔으로 바뀌어갔다. 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너를 믿고, 좋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눈물로 딸의 결정을 지지했다.

히말라야 지역에서 ‘화 잘 내는 사람’이란 말은 가장 심한 욕이다. 분노는 모든 선근을 불태워버리며 무지를 증명하고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포로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는 고산에서 화를 내면 육신은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한다. 그러니 화 잘 낸다는 말은 죽음에 가깝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그녀가 출가하겠다는 결심을 말하자 노스님은 “모든 생명을 위해 살아야 하며, 거짓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하며, 생명을 해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부모를 버리는 것 같아 슬프다”는 그녀에게 출가란 결코 부모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며 기도할 것을 권했다. 페키는 제대로 배우고 수행하기 위해 잔스카르를 떠나 다람살라로 가기로 했다. 다람살라는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는 곳이다. 그녀는 자신의 여행을 ‘순례’라고 표현했다.

잔스카르에서 외지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빙하가 녹아 흐르는 차다르강을 따라 6일을 걸어야한다. 그녀의 사매 툽제와 함께 길잡이 일행과 때로는 맨발로 얼음 강을 건너고, 업혀 가고, 벼랑을 두 손으로 기어오르며 험한 길을 헤쳐갔다. 길잡이는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며, 곁에 있는 이가 지팡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페키는 “오늘은 악몽이고, 내일 눈을 뜨면 하는 곳에 가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라다크와 뉴델리를 거쳐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영화가 공개된 후 10년이 넘었다. 페키와 텐진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인터넷으로 세상에 좁아진 덕에, 둘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유튜브 댓글 덕분에 후일담을 들을 수 있다. 텐진은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페키는 다시 세속으로 돌아와 결혼했단다. 우리의 오늘은 어제 선택한 과보이며, 지금의 선택이 내일을 이끈다. 어떤 선택이라도 이유와 의미가 있으며, 현재란 세세생생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이다. 세상이 복잡하게 다가올 때, 결정해야 할 수많은 갈래에 시달릴 때 이 영화를 볼만하다. 영화 속 페키처럼 내가 결정한 길을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 끝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지라도.
 

● 영화는 유튜브와 아마존 프라임에 영문판이 공개돼 있다.
●● 유튜브에는 86분판과 방송용 55분판이 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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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흥 2019-11-28 23:52:49
그들이 돌아와 세속에서 행복한 삶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문득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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