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불교민속학회가 ‘땅설법의 계승과 발전 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 및 시연회였다. 최근 일제강점기와 불교정화기를 거치며 전승이 끊어진 줄 알았던 땅설법이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땅설법에 관한 다양한 학술적 연구와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강원도 산골 작은 절에서 묵묵히 땅설법 전통을 이어온 다여 스님이 있다.
| 전승지의 위기 속에 세상에 알려지다
불교 신자에게도 ‘땅설법’이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그런 게 있나 할 만큼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땅설법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전혀 없다시피 했다. 단지 한국불교 무형의 전통 중에 땅설법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오래전 전승이 끊어졌다고만 알려져 있었다. 지금도 땅설법이 이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지난해 10월 강원도 삼척의 작은 절에서 그 전통이 생생히 살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삼척 안정사 주지 다여 스님이 주인공(전승자)이다.
“태어나 줄곧 이 동네에서 살았어요. 어려서도 그렇고, 중노릇하면서도 특별히 바깥 활동을 할 일이 없다 보니까 행동반경이 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땅설법을 보러 사람들이 온다고 하니까 사실 좀 놀랐어요. 우리는 그저 대대로 해오던 일인데….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다 하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지금도 여기저기서 관련 문의나 세미나 제안 등이 많이 들어오는데, 여전히 어안이 좀 벙벙해요.”
외부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 보니 땅설법 전승이 다른 곳에는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여 스님은 전혀 몰랐다. 한국불교계 역시 스님이 그런 전통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지 못했는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서로에게 소식이 닿았다. 사연은 이렇다. 14년 전 인근 도로 개통 공사로 절이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와 시공업체가 제대로 된 사전 조사 없이 일을 진행하다 보니 안정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에 다여 스님은 정부와 시공사를 상대로 끈질긴 법정 다툼을 벌여왔는데, 그 일환으로 작년 청와대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나간 것이 발단이었다.
“혼자 시위하는 걸 보고 안쓰러웠는지 한 스님이 와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셨습니다. 위례 신도시에 있는 대원사 주지스님이었어요. 그 인연으로 대원사에 가서 불공을 드리게 되었는데, 저희 절에서 하던 것보다 훨씬 짧게 하더라고요. 늘 하던 습관이 있는지라 영가한테도 그렇고 신도들한테도 그렇고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추가로 땅설법을 해드렸습니다. 마침 그날이 상량식이 있던 날이라, 상량식과 관련 깊은 화엄성중 중 성주신앙에 관한 땅설법을 해드렸죠. 그날 심택사 주지 효탄 스님(조계종 성보무형문화재위원)도 와 계셨는데요. 그때 인연으로 얼마 후 제가 따로 연락을 드려서 땅설법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 민중 포교를 위한 다채로운 종합설법
‘승려들이 땅 위에서 여는 여흥(餘興)의 하나[네이버]’, ‘스님이 제를 지낼 때 자유로운 형식의 법문을 읊고 여흥으로 음악과 공연을 행하는 일[다음]’ 우리나라 대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두 곳에서 땅설법을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이다. 다여 스님은 이런 설명이 땅설법의 본질을 정확히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땅설법의 본질은 무엇일까? 다여 스님께 물었다.
“땅설법은 한국불교 고유의 학습 지도법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중국과 신라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지요. 일종의 방편 설법 내지 눈높이 설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의의는,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천상의 신들에게 화엄경을 설하셨던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러셨듯 땅설법을 통해 스님들이 대중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전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놀이나 흥을 돋우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다여 스님은 땅설법의 본질이 어디까지나 불교와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간혹 땅설법을 영산재 등의 말미에 뒤풀이 형식으로 진행하는 삼회향놀이와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땅설법은 영산재나 수륙재와 무관한 독립된 설법 양식이며 어디에 종속된 의례거나 회향 의례가 아니라고 누차 말씀하신다. 땅설법의 주제와 설법 방식에 대한 스님의 설명의 듣고 보면 그 말에 곧 수긍이 간다.
“땅설법의 주제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뉩니다. 석가모니 일대기, 목련존자 일대기, 성주신 일대기, 신중신 일대기, 선재동자 구법기가 그것이죠. 그 외에 만석중 득도기라든가 사찰 전각을 설명하는 것, 경전이나 부처님을 설명하는 내용도 있어요. 이런 주제 중에 어떤 내용을 설할 것인가는 그날그날 참석한 대중의 수준에 따라 결정합니다. 49재 때처럼 비불자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날은 재밌는 목련존자 이야기나 신중신 이야기를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어느 정도 불교 공부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석가모니 일대기를 통해 경전에 대해 설하죠. 나아가 불교 공부가 나름대로 깊고 수행하시는 분들께는 선재동자 구법기를 설하여 더 큰 신심을 일으키고 단계별로 수행을 유도하는 식입니다.”
땅설법은 일반 법회와 달리 다양한 요소들로 이뤄진 종합설법 형식을 띤다. 예를 들어 고대 시가·고려가요·조선시대 시조나 가사·판소리·창가·팔도지역별 민요 등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한다거나, 그림자인형극을 통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 석가모니 일대기 중 화엄경 십신에 대해 설하는 대목에서는 대중이 직접 참여해 설법에 어우러지기도 한다. 이 모든 요소가 불법을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한 민중 포교의 방편이라는 게 다여 스님 말씀이다.
| 보존과 전승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
보통 한두 시간 안에 끝나는 일반 법문과 달리 땅설법은 최소 몇 시간, 길게는 며칠에 걸쳐 진행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서 당연히 방대한 양의 경전 내용을 알아야 함은 물론, 설법에 활용되는 다양한 요소(소리, 장엄 등)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 한국불교 전통에서 땅설법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 민간 신앙과 연결된 불교 의식을 지양하면서부터라지만, 이면에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잠깐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다여 스님 역시 그랬다.
“땅설법이라는 걸 한번 배워보자 해서 배운 게 아니에요. 어려서부터 절에 다니며 자연스럽게 배웠죠. 무명(無明) 스님이란 분께 가르침을 받았는데, 당시 제가 기억력도 좋고 목청도 좋고 하니까 이것 한번 해볼래 저것 한번 해볼래 하면서 알려주시는 걸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겁니다. 어려서부터 멋모르고 했으니 망정이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힘들어요.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네요.”
다여 스님은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모든 것이 편의에 따라 기성품으로 대체되는 오늘날 불교의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이러다간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가 모조리 잊히는 게 아닐까 하고 노심초사하신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지금껏 안정사에서, 다여 스님이 땅설법 전통을 잃지 않고 이어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스님은 손수 한지로 장엄을 만들고 어른들이 해오던 방식 대로 설법을 한다.
“제가 기운이 있을 때까지는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라고 말하는 스님 말씀에 희망과 걱정이 교차한다. 땅설법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일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누군가 있어 한국불교의 이 오랜 전통이 훗날에도 이어지길 바란다. 이를 위해 우선 기록하는 작업이 시급하단 생각이다. 미루기엔 시간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