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끝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리니
중도(中道)엔들 어찌 안주하랴.
물이면 물, 산이면 산, 마음대로 쥐고 펴면서
저 물결 위 흰 갈매기의 한가로움 웃는다.
- ‘어디에 머물리요(何住)’, 태고보우(1301~1382) 선사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 물결 위 한가로운 갈매기보다도 더 여유로웠던 선사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용한 산중, 자연 속에서 개 두 마리와 함께 시를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스님이라면 그 모습을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절에 사는 진돗개 두 마리와 동명 스님을 만나러 중흥사로 향했다.
오랜만의 산행이다. 북한산 국립공원. 더 이상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지점에서부터 걸어서 3~40분.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조금 가빠지기 시작할 즈음 저만치 중흥사가 보인다. 봄의 초입, 마른 나뭇가지 위로 얼굴을 내민 작은 꽃망울들이 정겹다. 경내로 들어서자 시원한 봄바람이 산행의 땀을 식혀준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니 동명 스님이 커다란 진돗개 두 마리와 함께 객을 반긴다.
“눈 옆에 점이 있는 블랙탄이 감동이고, 황구가 행운입니다.” 4살 감동이와 3살 행운이는 생긴 건 전혀 다르지만 사이좋은 모녀지간이다. “근처 봉성암에 살고 있는 황구가 행운이 아빠예요. 봉성암 스님이 개를 좋아하셔서 다 같이 한 가족처럼 지냅니다.”
반가운 마음에 감동이와 행운이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는데, 웬일인지 가까이 오질 않는다.
“서서 부르면 쟤네들이 보기에 자기 눈 위에 있으니까 무서워서 안 오는 거예요. 앉아서 눈높이를 맞춰주어야 낯을 안 가려요.” 동명 스님의 말씀에 따라 허리를 낮추고 앉아 손을 흔드니 감동이가 먼저 다가와 냄새를 맡는다. 제법 큰 진돗개임에도 제 눈에는 절을 찾은 낯선 이가 두려웠던 걸까. 눈높이를 맞추니 이제야 안심인 모양이다. 꼬리를 흔들며 내 손을 핥는다. 미안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을 모두 담아 털을 쓰다듬어준다. 까만 털에서 건강한 윤기가 흐른다.
“어린이 법회에서 아이들에게 강아지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물으니 ‘검둥이’로 하자는 거예요. 검둥이보다는 양성 모음화해서 ‘감동이’가 더 좋을 거 같아 그렇게 이름을 붙였죠.” 그렇게 감동이는 자신의 이름처럼 감동을 주는 멋진 개로 다시 태어났다.
감동이가 북한산 중흥사에 처음 온 것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흥사가 산속에 있다 보니 멧돼지가 절 앞마당까지 내려오는 거예요. 새끼 멧돼지까지 가족이 같이 내려오기도 하고…. 먹을 게 없어서 그러나 싶어 음식물 쓰레기를 주기도 했는데, 자꾸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됐었죠. 그러던 차에 회주이신 지홍 스님께서 개를 한번 길러보면 어떻겠냐 하시면서 감동이를 데려오셨어요.”
이런 연유로 감동이는 중흥사 식구들과 인연이 되었고, 감동이가 온 이후 다행히 멧돼지들이 절 안까지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힘들지도 않은지 행운이는 아까부터 절 앞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닌다.
“행운이는 뛰는 거 하나는 이 동네에서 최고예요! 어려서부터 겁이 워낙 많아서 36계 도망만 다니더니 뛰는 것만 늘었어요.”
3년 전, 감동이와 봉성암 황구 사이에서 강아지 일곱 마리가 태어났는데 안타깝게도 한 마리는 죽고 다섯 마리는 입양 보내졌다. 한 마리만 중흥사에 남게 되었는데, 그 강아지가 바로 행운이다. 운 좋게 중흥사에 남게 되었다고 해서 ‘행운이’로 이름 붙여졌단다. 행운이는 스님이 유독 아미타불 정근을 할 때마다 소리를 내며 따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듣기엔 개가 우는 소리로 들리지만 정작 행운이 자신은 아미타불 염불을 따라 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행운이 입에 계속 뭔가가 물려 있다. 나무토막, 돌 같은 것들을 물고 뛰어다니는 게 신기해 왜 저런 걸 물고 다니는 거냐고 스님께 물으니 스님이 현답을 내놓으신다.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행운이한테 대답을 아직 못 들었어요.”
농담처럼 얘기하셨지만 스님의 대답이 맞는 말씀. 행운이에게 직접 답을 들으려면 이번엔 마음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걸까.
간식 시간. 동명 스님이 치즈 두 장을 건네며 감동이와 행운이에게 직접 먹여보라 하신다. 치즈의 비닐을 벗기기 무섭게 감동이와 행운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온다. 조금 떼어주니 날름 받아먹는다. 감동이와 행운이는 중흥사 신도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특히 보살님들을 잘 따른다고 한다.
“동물이고 사람이고 자기한테 잘해주면 다 좋아하죠. 특히 얘네들은 먹을 것 주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래서일까, 치즈를 주면서 어쩐지 감동이, 행운이와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간식도 먹었겠다, 화창한 봄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 행운이가 스님에게 산책을 가자며 앞장선다. 아마도 하루 한 시간 매일 하는 산책은 감동이, 행운이의 가장 신나는 하루 일과가 아닐까. 가장 젊은(?) 행운이가 길을 안내하듯 선두가 되어 산 위로 달려간다. 그 뒤를 따라 감동이와 동명 스님이, 이들과의 산책이 처음인 내가 제일 꼬리에서 힘겹게 따라간다. 한참을 앞서가던 행운이가 잠시 멈춰 늦게 오는 일행을 기다려준다. 그런 행운이의 모습에서 여유와 배려가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여기 바닥 좀 보세요. 제비꽃이 피었네요.” 스님의 목소리에 땅 밑을 내려다보니 작고 노란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있다. “제비꽃과 양지꽃을 구별하는 법 아세요?” 부끄럽지만 작고 노랗게 피어난 그 꽃들이 제비꽃인지도 몰랐는데, 양지꽃은 더더욱 알지도 못하니 그 둘을 구별한다는 것은 내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제비꽃은 양지꽃과 다르게 잎이 하트 모양이에요. 예쁘죠?”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자세히 보니 정말 초록색 잎이 하트모양이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목이 말라 가져간 물을 꺼내 마시는데, 감동이도 목이 말랐는지 바위틈에 고여 있던 물을 헐레벌떡 마신다. 물이 조금 더러워 보여 걱정을 하니 스님께서 괜찮다며 말씀하신다. “얘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해요.”
동명 스님은 출가 전, 등단 시인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출가 후, 시를 안 쓴 지 10년이 넘었다지만 살아가는 방식에서만큼은 어쩐지 시인의 면모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듯하다. 외부에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매일 매일 산속에서 감동이, 행운이와 함께하다 보면 시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시가 느껴진다고 한다. 새소리, 물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개들과 산책하는 시간은 스님에게 하나의 명상이자 시 그 자체다.
“안도현 시인이 말하길, 시(詩)라는 것은 ‘애기똥풀’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했어요. 다시 말하면 그 이름을 알아보는 것이죠. 이름을 알면 그 사물과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어요. 아까 산책하다가 제비꽃을 알아봤잖아요. 그 순간 우리는 제비꽃과 교감을 나눈 것이죠.”
스님 말씀에 따르면, 제비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던 내가 제비꽃을 알게 되고 잎이 하트 모양이라는 것까지 알게 된 그 순간은 시(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교감’이라는 시에서 ‘자연은 하나의 신전’이라고 표현했다. 길지 않은 산책길, 감동이와 행운이는 물론이고 스쳐 지나간 식물들과 교감을 나눈 시간들이 평범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낯선 경험으로 다가왔다. 마음 안에 짧은 시(詩) 한 구절을 품은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고 할까.
“옛 선승들이 쓴 선시를 읽다 보면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분들은 전혀 바쁘지 않아요.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욕구가 없어요. 내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시적인 삶이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단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할 일을 다 하는 것, 그러면서 묵묵히 시절인연을 기다릴 줄 아는 태도가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시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중)
북한산 중흥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책 한 권을 선정해 2박 3일간 저자와 함께 책을 읽고 강의도 듣는 <책 읽기 템플스테이>가 열린다. 4월 목경찬 교수를 시작으로, 5월에는 이미령 교수의 『붓다 한 말씀』을 함께 읽을 예정이라고 한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분들에게도 중흥사의 마스코트 감동이와 행운이가 새로운 감동과 행운을 듬뿍 전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최근에 달 본 적 있어요? 아마 눈으로 보고도 봤는지 모를 수 있어요. 달을 보며 달을 느끼는 것, 그것도 시이자 수행입니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길, 어두워져 오는 하늘에 흐릿하게 저녁달이 떠 있었다. 손이 아닌, 마음으로 시를 쓴 것만 같은 하루였다.
조혜영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추계예술대 대학원 영상시나리오 석사, BBS불교방송 및 KBS 라디오드라마 작가로 일했으며, 대학에서 영화, 창의성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많이들 오세요. 너무 좋아요.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것들이 너무 많드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