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초연결 사회, 가톨릭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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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초연결 사회, 가톨릭의 비전
  • 지성용 신부
  • 승인 2019.04.2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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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의 어제와 오늘
지난 3월 6일 교황청 공보실이 발표한 「2019 교회 통계 연감」에 따르면, 전 세계 가톨릭 인구는 2017년 말 13억 명을 넘어서 세계 인구의 약 17.7%를 차지했다. 세계의 가톨릭 신자 대부분이 아메리카 대륙(48.5%)에 있으며, 다음으로 유럽(21.8%), 아프리카(17.8%), 아시아(11.1%), 오세아니아(0.8%) 순이다. 지난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 종교 인구 비율은 조사 이후 처음으로 ‘종교 없음’ 인구(무종교 56.1%)가 더 많은 사회로 진입했다. 종교 인구 분포는 개신교(19.7%), 불교(15.5%), 가톨릭(7.9%) 순으로 집계되었는데 개신교는 123만 명이 증가했고 불교는 297만 명(-7.3%)이 감소하고 가톨릭은 112만 5,000명(-2.9%) 감소했다. 연령별로는 40대, 20대, 10대 순으로 종교인구가 확연하게 줄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종교 인구가 감소하는데 개신교가 유독 많은 증가를 보이는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단 종교’의 증가 문제가 가볍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물론 여기에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다.

가톨릭에서는 최근의 통계에서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2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신자 수 감소에 대한 문제의식이 시작되었다. 주일미사 참례자 비율은 실질적으로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의미 있는 숫자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본당마다 많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최근 뉴스들 속에 등장하는 가톨릭교회 내외의 많은 사건과 사고들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와 교회가 ‘번영’, ‘성장’에 집착하면서 본래 교회의 본질을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거시적 연구에서는 ‘종교 자체에서 이탈하는 탈종교의 흐름이 내부의 여러 가지 종교 적폐들과 종교 내부의 여러 문제들로 가속화되고 있다’라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천주교회의 역할은 컸다. 유신독재 시대 살벌한 계엄 상황 아래서도 천주교는 사회의 변화와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사회 정의를 위한 투신에 대한 비전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67년 ‘심도직물 노동조합 사건’ 이후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을 시발점으로 민주화를 추구하던 재야 시민운동가들과의 연대와 개신교 성직자들 및 타 종교 지도자들과의 교류를 촉진시키며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의구현 사제단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87년 민주항쟁’의 불씨를 만들어냈고, 역사의 중심에서 예언자의 역할을 했다. 많은 도시의 지식인과 선의를 가진 진보적 민주화 세력이 천주교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명동성당으로 상징되는 천주교회는 민주화의 성지였고, 가톨릭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가톨릭대학생회, 천주교도시빈민회 활동 등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편이 되어 그들의 든든한 보루가 되어 주었다. 두 번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으로 가톨릭 교세는 탄탄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천주교의 교세는 당시 2% 미만에서 10%대로 진입하는 비약적인 교세 확장을 이루어 낸다.

2000년대에 교회는 ‘번영의 신학’, 성장과 확장에 골몰하기 시작한다. 건물과 시설, 사회복지 시설과 기관의 인수 운영에 열을 올리고, 대학과 병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가톨릭법조인회, 가톨릭경제인회, 가톨릭의사회 등 경제력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 지면서 교회는 점차 제도권 안의 주류에 편입되기 시작한다. 87년 항쟁 이후 교회 수장들의 우경화, 보수화는 교황대사 이반디아스를 중심으로 가속화되고 보수적 주교들의 선출로 한국가톨릭은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갤럽조사(2015)의 통계에 따라 전체 신자율 7.9%, 오히려 열을 올렸던 선교 운동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이다.

|    종교가 삶의 여백이 되어줄 수 있도록
종교를 뜻하는 라틴어 ‘religio’는 ‘결합하다’, ‘단단히 묶다’라는 뜻을 가진 ‘religare’에서 파생됐다. 신과 인간이 결합하는 측면과 더불어 인간과 인간의 결합에는 종교가 작용한다. 종교(宗敎)란 규정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 체계나 문화적 체계(cultural system)를 말한다. ‘농업 사회’와 ‘산업화 사회’에서는 인간의 물리적인 시공간적 결속이 사회의 중요한 경제적·사회적 효율성을 제고(提高)하는 방법이었다. 이때 많은 사람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힘을 써서 수많은 종교적 상징물과 경제적 번영을 만들어냈다. 피라미드, 바티칸 대성당 등 대규모 종교 상징물들은 당시 종교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산업 사회를 뛰어넘어 다가오는 세상은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초연결사회(Hyper Connected Society)’이다. ‘초연결사회’는 만물이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돼 서로 통신하는 사회로 정의된다. 연결의 대상이 ‘사람’에서 ‘사물’, ‘공간’, ‘자연’에까지 광범위하게 확장되며, 정보 수집도 ‘직접 입력’에서 ‘센싱(sensing)’의 개념으로 변화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최근 발간한 관련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초연결사회’를 실현하는 중추기술은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다.

이제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21세기의 노동과 사회는 많은 사람들의 결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빅데이터가 필요할 뿐이다. 그들의 욕망과 욕구, 요구와 소비의 지향을 파악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은 대상화, 파편화되고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지배하의 사람들은 자유주의 시장 경제보다 더 가혹한 제한 없는 경쟁, 초경쟁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가중된 고통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무한 경쟁 시대에 종교적 여백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나의 시간과 능력, 경제력을 종교를 위해 내려놓기에 초경쟁 사회는 한 치의 틈도 주지 않는다. 후기 자본주의 경제 사회의 어두운 그늘은 인간을 홀로 고립시키고, 1인 가구, 결혼하지 않는 청년 시대, 혼밥, 혼술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사회 구조가 ‘함께’보다는 ‘혼자’ 있어야 효율적인 방향으로 변동이 가속화된다. 결국 출산율 저하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사회의 또 다른 변동이 종교 안에서도 구체적 현상인 신자율 감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모여야 하지만 사회는 ‘홀로’이기를 바란다. 혼자 있는 가구가 많아야 자동차, TV, 냉장고, 세탁기 등의 생활 가전 시장이 더 넓어진다.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대상, 가구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물리적 연결의 필요가 네트워크 안에서의 연결로 전환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많은 이들은 종교에 염증을 갖기 시작했다. 서울 대형 교회 목사 세습 문제와 비자금 문제가 영향력 있는 매체들에서 다루어지고, 또 다른 대형 교회 목사의 학력과 자격 시비, 조계종 설조 스님의 단식으로 촉발된 조계종 전임 총무원장 스님의 불명예 퇴진, 최근의 ‘조계종 감로수 리베이트’ 문제로 전 총무원장을 고발하는 사태까지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의 성직자 미투, 대구천주교의 희망원 문제와 충주성심맹아원의 김주희양 사망 사건, 인천교구의 인천성모병원 문제 등으로 교회 운영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의혹을 받기 시작했다.

사이비(似而非)는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의 뜻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종교의 가르침은 이전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제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각 종교 종파들은 조직의 운영과 생존을 위해 겉으로는 종교의 형식을 유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본질을 벗어난 ‘사업’과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을 운영하고, 병원을 운영하며, 사회 복지 시설과 기관 등을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한 사업들을 기획·실행한다. 여러 가지 실버산업, 노인 요양 병원이나 실버타운, 상조 서비스 등의 수익 사업에 종교 기관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정치인들과의 초연결은 말할 것도 없다. 노골적으로 불의한 정당의 편을 들어주는 고위 성직자들이 태반이다. 이러한 성직자들의 독선과 위선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종교를 내려놓는 구도자들도 꽤 많아졌다.

이제는 종교가 아니라 영성의 시대가 열렸다 판단하며 신과의 관계를 중재하는 종교 시스템이 아니라 종교의 주체인 내가 스스로 그러한 종교적인 체험의 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최근 가톨릭교회 안에서 ‘종교’라는 단어보다는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검색되고, 주요 검색 키워드 역시 ‘영성’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한다. ‘영성’은 신과 인간이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총체적 과정이기에 더욱 포괄적이고 더욱 구체적이다. 이전의 종교적 결속과 연결은 희생과 봉사, 사랑과 나눔을 위한 연결이었지만 오늘날 21세기의 연결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근거한 연결이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연결이다.

종교는 자본의 운동 방향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조직으로서 기능할 것이다. 종교는 이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수행하고, 비우고, 겸손해지고, 세상의 정의를 위해 싸우며, 불의에 저항하고, 세상 으뜸의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 어느 종교든 서로를 존중하고 종교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할 때 많은 이들이 종교를 편안한 휴식처, 어려울 때 함께 하는 친구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21세기 종교는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지성용 신부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 신학박사(STD). 인천가톨릭대학 대외협력처장을 지냈으며, 현재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 신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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