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인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은 현대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종교는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권위를 잃었고, 신앙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다. 종교가 선택의 대상으로 변모한 것은 물론,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 역시 당연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비슷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5년부터 10년 동안 종교 지형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무엇보다 종교인의 비율이 2005년 52.9%에서 2015년 43.9%로 감소했고, 비종교인은 같은 기간 47.1%에서 56.1%로 증가했다. 신도 수를 살펴보면 개신교가 9,676천 명(19.7%)으로 가장 많고, 불교 7,619천 명(15.5%), 천주교 3,890천 명(7.9%) 순으로 나타났다. 또 연령이 낮을수록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았다(10대 62%, 20대 64.9%, 30대 61.6%).
베버(Max Weber)는 근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합리적 사고가 종교적 세계관을 대체하는 ‘세속화’를 꼽았다. 과학을 비롯한 합리적 사고가 주술적 사고를 현저하게 약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유럽 사회에서도 종교는 오랫동안 절대적 권위를 누렸고, 사제는 글을 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식인 계층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놀랍게 달라졌다. 왜 종교인이 급감했을까? 베버의 주장처럼 세속화로 인해 현대인들은 종교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 현대의 탈종교 현상과 원인
현대의 탈종교 현상은 베버가 지적한 세속화 외에도 많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즉, 최근의 변화는 ‘주술에서 깨어나기(disenchantment)’만으로 완전하게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측면을 포함한다.
첫째, 민주주의 원리의 확산이다. 현대는 개인의 권리, 주체성과 존엄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는 시대이다. 또 의무 교육의 도입과 대학 교육 확대는 현대인들의 지적 수준을 유례없이 드높였다. 이 과정에서 평등과 자유라는 민주주의적 원칙이 전 세계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940년대에 무려 60%에 달하던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현재는 더 이상 통계 조사를 할 필요가 없는 수준인 1% 미만으로 낮아졌다는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둘째, 과학 기술의 발달과 이로 인한 경제 발전이다. 교통과 통신을 위시한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현대인의 삶을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들었다. 과학 기술은 놀라운 경제 성장을 가져왔고, 이는 공동체의 복지 수준 제고로 이어졌다. 게다가 민주주의 원칙의 확산은 경제 발전의 결과를 보편적 복지의 형태로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높아진 삶의 수준은 지적 수준의 향상을 이룬 개인들이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도왔던 것이다.
셋째, 정보와 교류의 폭발적인 증가도 주목할 만하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정보는 물론 다양한 인적·물적 교류를 경이로울 정도로 확대시켰다. 모든 종류의 정보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전달되고 있다. 그 덕분에 예전에는 접하기도 어려웠던 이웃 종교의 가르침을 포함해 다른 문화의 거의 모든 것이 공유된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정보는 물론 부정적인 사실도 포함된다. 종교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사건들을 낱낱이 알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넷째, 다종교 상황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대인들은 유례없는 종교의 자유와 함께, 이웃 종교를 일상의 삶에서 직접 접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의 모든 종교가 신행되고 있는 공간인 데다, 비종교인의 비율이 과반수를 넘는 매우 독특한 사회이다. 예전과 달리 종교는 선택과 비교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게다가 ‘종교를 떠나려는’ 시도와도 경쟁하게 된 현실은 사뭇 달라진 종교의 위상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종교는 전통적인 지위를 잃었다. 종교적 가르침과 사제의 권위는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무종교인의 급속한 증가는 논리적인 귀결이기도 하다. 또 이 상황은 종교의 가치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되묻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종교를 떠난 이들이 종교적 세계관마저 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제도화된) 종교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만, 종교 그 자체, 더 정확하게는 종교적 세계관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 제도화된 종교와 영성의 분리
비종교인이지만 종교적 세계관을 여전히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퓨 리서치(Pew Research Center)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기독교(31.5%)가 가장 많은 신도 수를 자랑하며, 그 뒤를 이슬람(23.2%)이 잇는다. 이 조사에서 전 세계인의 16.3%가 비종교인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 혹은 보이지 않는 차원을 믿는 이들은 프랑스의 경우 30%, 미국은 무려 68%에 달했다. 요컨대 비종교인이자 동시에 종교적 세계관도 갖지 않은 이들은 전체의 10% 미만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인구의 56%를 차지하는 비종교인 중에서도 철저한 유물론자는 예상보다 적을 것이다.
종교적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을 비종교인으로 정의하는 경향은 ‘영성(靈性)’이라는 개념으로 포착된다. 얼랜슨(Sven Erlandson)이 처음 사용한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는 표현이나 ‘무종교의 종교(Religion of No Religion)’라는 역설적인 개념은 제도화된 종교 밖에서 최근 발생하고 있는 영성 추구 현상을 암시한다.
우리의 경우 ‘템플스테이’는 ‘명상’이라는 불교의 수행법이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공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힌두교의 수행법이었던 요가는 타 종교인은 물론 세속적 세계관을 지닌 현대인에게조차 널리 활용된다. 이 현상들은 제도화된 종교와 영성이 분리될 수 있음을 거듭 확인시킨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healing) 개념 역시 존재론적 전체성의 회복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종교적’ 색채를 내포한다. 이 개념에는 자연과 타인, 그리고 내면의 더 큰 차원과의 전체성을 인식할 때 심신의 건강과 존재론적 온전성이 회복된다는 견해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힐링의 ‘멘토(mentor)’로 다름 아닌 종교인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 역시 이런 경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는 최근의 현상은 결국 종교의 정체성에 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종교란 도대체 무엇이며, 왜 우리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 말이다. 만약 전통적인 종교가 설득력 있는 해답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종교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물론 종교를 버렸다고 해서 곧바로 종교적 세계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제도화된 종교 바깥에서 개인의 영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종교의 의미를 현격하게 변화시켰다. 더구나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종교적 역동성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 사실은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종교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Rice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철학 박사 학위(세부전공: 종교심리학, 신비주의)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문명 안으로』, 『문명 밖으로』,
『문명의 교류와 충돌』(이상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