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만해를 다시 보다
망우리 공동묘지
1944년 6월 29일 성북동의 심우장尋牛莊에서 중풍으로 입적. 나라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미아리 사설 화장장에서 다비된 뒤 망우리 공동묘지에 유골이 안치되었다. 사진 우측이 만해 스님의 묘, 좌측은 부인 유씨.
동국대학교
1906년 동대문 밖 과거 원흥사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불교 학교인 명진학교(동국대학교의 전신)가 문을 열었고, 불교계 고급 인재들이 앞다퉈 입학했다. 만해는 1기 졸업생이다.
심우장
1933년 성북동 언덕 마을에 집을 지었다.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북향의 집이다.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기에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다.
서대문 형무소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탑골공원에서 조선총독부 경무국 순사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3년 간 수감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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