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는 위험하다
화를 내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이 괴롭습니다. 화는 정신적인 불만족과 함께하기 때 문입니다. 정신적인 고통은 피할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다니면서 괴롭힙니다.
또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화가 많은 사람의 말은 마치 가시와 같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평소에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내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한 번 심하게 내면 오래된 우정에 금이 갈 뿐만 아니라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층간소음 문제라든가 단순히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등,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살인에까지 이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화를 주체하지 못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 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화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매우 위험한 심리 현상입니다. 화는 진행될수록 그 힘이 강력해집니다.
화가 잠깐 스쳐 지나갈 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계속 반복되는 것을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강력해진 화는 버리기도 힘들지만 버리려면 많은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 다. 마치 처음 생긴 작은 불씨는 쉽게 끌 수 있지만, 활활 타오른 불길을 끄기 위해서 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화가 오랜 세월 쌓아 온 유익한 업을 한순간에 태워 버릴 수 있다 고 하셨습니다. 화를 뜻하는 빨리어 도사dosa가 ‘태워 버리다, 나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둣사띠dussati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에서 이런 의미를 유추할 수 있습니 다. 화는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수도 있고 몇십 년 쌓은 공덕을 단숨에 무너뜨 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화의 위험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음료수에 독약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절대 마시지 않을 것 입니다. 그것은 독약이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기 때문입 니다. 화가 독약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한다면 화를 절대로 가까 이하지 않고 철저히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 정당한 화는 없다
요즘 사회는 생존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고 사람들도 많이 거칠어 진 것 같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보다는 재물이나 권 세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적 윤리보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시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불만이 많아져 화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세상의 부조리 에 대해 분개하고 세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분노를 정당화하곤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당함에 대한 것이든 부당함에 대한 것이든 분노는 분노입니다.
화에 휩싸인 상태에서 하는 생각과 행동들에는 지혜가 부족하기 마련입 니다. 또한 어떤 부조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분노로써 대처한다면 상대방도 거기에 대해 똑같이 분노로써 저항하면서 돌고 도는 투쟁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 습니다.
세상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것은 자비와 지혜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합니다. 화를 바탕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 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뿐 아니라 유익한 업이 아닌 해로운 업을 짓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화가 일어난 마음으로는 바른 판단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경전에서는 화를 부글부글 끓는 물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화가 나 있으면 마음 이 들끓고 흥분되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 을 뜻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문제는 더욱 꼬이고 미궁에 빠 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원한은 원한으로 갚아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내 마 음속의 분노를 먼저 내려놓고 자비가 가득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진 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내려놓으면 마음이 가라앉아 고요해지기 때문에 지혜롭고 올바른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일을 도모하기 전에 항상 화를 버리 고 고요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묻고 답하기]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질문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진다는 것은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잖아요. 그런데 저는 화가 났다고 알아차렸는데도 그 화가 놓아 지지가 않는데 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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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화가 났다고 알아차린 즉시 놓아 지는 것은 수행의 고수가 되어 야만 가능합니다. 수행을 처음 할 때는 알아차린다고 번뇌가 바 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나면 그 사람이 화의 대상이지만 나에게 화가 일어났다고 알아차리면 그 사람이 아 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화가 대상이 됩니다. 화가 나게 하 는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난 화를 알아차리게 되면 화에 제동이 걸리면서 그렇지 않을 때보다 화 가 약해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화를 알아차리고 그 화가 지속하 는 시간이 1분이었던 것이 또 알아차리면 30초로, 또 알아차리 면 10초로 이렇게 점점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화를 알아차리면 바로 놓아 지게 됩니다. 물론 사소한 화이거나 지혜가 아주 강한 경우는 알아차리는 순간 사라질 수도 있지만, 화가 강력하거나 지혜가 약한 경우는 화가 금방 사라지지 않고 오래 계속될 수 있 습니다. 화가 금방 사라지지 않을 때는 ‘업의 주인은 자기 자신’ 이라는 것에 대하여 숙고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화를 내면 화를 내는 그 순간도 고통스럽고 해로운 업도 짓게 됩니다. 더구 나 조건이 성숙하여 해로운 업의 결과가 나타날 때는 다시 고통 을 받게 됩니다. 화가 계속되고 없어지지 않으면 마음을 달래고 추스르며 계속 수행을 하십시오.
일묵 스님
서울대 수학과 졸업,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범어사 강원을 수료한 후 봉암사 등에서 수행정진했다. 미얀마와 플럼빌리지, 유럽과 미국의 영상센터에서도 수행했다. 현재 제따와나 선원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