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연암난야 도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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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연암난야 도현 스님
  • 이광이
  • 승인 2019.01.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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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이란 남 말하지 말고 니 말하라는 것"
사진 : 최배문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솟구쳐 오른 겨울하늘은 높고 춥고,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흐리다. 덩어리진 구름들이 세찬 바람결에 흩어지고 있다. 나는 날개를 퍼덕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문득 발아래 사람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거대한 소 한 마리가 주저앉아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표피는 잿빛초록이었고, 머리는 해 뜨는 곳에, 꼬리는 해 지는 쪽에, 동서로 길게 누웠다. 육신은 사방팔방으로 비탈을 이루며 헤아릴 수 없는 겹겹의 주름 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등뼈를 따라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지며 길고 좁은 길이 나 있다. 지리산! 그 등뼈의 능선길이 우리가 늘 지칠 때 다가가 끝없이 걸었던 지리산 종주 백 리 길이다. 그리고 소의 육신, 산과 골과 곡을 감싸 안은 저 너른 품이 7백 리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길이다. 나의 비행이 사실은 위성의 눈으로 보았던 것의 데자뷰인 셈이지만 그 덕분에, 꿈처럼 한 마리 새가 되어 영겁의 세월을 누워 있는 산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사진 : 최배문

지리산은 남쪽을 ‘겉지리’, 북쪽을 ‘속지리’라고 부른다. 양지바른 겉지리에 절이 많았고, 해가 짧은 속지리엔 당(巫堂)이 많았다고 한다. 지리산 산사는 크게 4개의 본사 권역으로 나뉜다. 겉지리 서쪽 전남 구례가 천은사 연곡사를 거느린 화엄사 권역이고, 동쪽 경남 하동이 칠불사가 있는 쌍계사 권역이다. 그리고 속지리 서쪽이 전북 남원으로 백장암 실상사가 있는 금산사 권역이고, 속지리 동쪽이 경남 산청 함양으로 벽송사 법계사 내원사가 말사인 해인사 권역이다. 지리산은 2개의 본사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암이 자리하고 있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작은 스님이 있는 작은 절이다. 찻길이 끊겨 산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는 묘향대 우번대 상선암 문수대 상무주암 같은 토굴들, 스님 홀로 가난하고 높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름도 없는 암자들, 그런 곳을 기웃거려 보고 싶다. 그것이 스님이 맑혀놓은 우물을 흐리게 하는 일이 될는지, 연락도 안 되는 곳에 찾아갔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그래서 몇 번을 다시 가야 할 길이 될는지, 혹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나무람을 듣고 퇴짜를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스님이 홀로 산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가는 오직 그것 하나만으로도 가고 또 가야 할 수고로움에 비할 바 아니며, 혹은 회향의 측면에서 짧은 소식 하나 얻어들을 수 있다면 그처럼 귀한 것이 어디 있겠으며, 그저 물처럼 청한 기운 하나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할 것이 없으리라 싶다. 나는 오랜 세월 불교를 지탱하는 힘이 깊은 산사에서 무욕의 삶을 살고 있는 가난한 스님들 덕분이라고 믿는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쯤 있다.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이 아름다워 ‘벽소명월’이 지리 10경에 들어간다. 거기서 남으로 2시간쯤 내려가면 의신마을이다. 쌍계사 쪽에서는 칠불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0여 분 올라간다. 마을 가게 집에 물어물어 ‘도현스님 토굴’을 찾아가는 길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안내 간판하나 없는 산길을 찾아 오른다. 오그라든 마른 낙엽들이 쓸려 다니고 있는 비탈을 한참을 올라갔는데도 아무것도 없다. 때는 늦은 오후, 산마루 해가 짧은데 마음이 급하다. 아래쪽을 더듬더듬 찾아보니 입산하는 작은 틈이 있다. 그 길에 들어 20여 분 올라가자 돌계단이 나온다. 계단 사이사이 난이 심어져 있다. 사람 사는 흔적이다. 땀을 훔치며 한 모퉁이를 돌자 드디어 작은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들어와서 차한잔 하고 가라”는 스님 말씀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지. 다섯 평짜리 작은 집, 좁은 마루와 부엌, 사람 둘 눕기도 비좁은 방 하나. 그리고 벽장 속에 작은 부처님 앉아 계시다. 박하사탕, 감자 칩, 능이버섯 차를 내어준다. 도현 스님, 1963년 범어사로 출가한 일흔 노장이다. 쌍계사 동안거 결재 기념사진 찍을 때, 한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 산중 토굴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다섯 평이면 대궐이지. 전에 살던 집이 네 평이었는데, 군불 넣어놓고 마을에 잠깐 내려갔다 온 사이에 홀라당 타버린 거야. 내가 지리산을 다 태워 먹을 뻔했어. 집만 타서 다행이었지.  전기도 없이 18년을 살았는데, 지금은 호텔이야. 불보살이 다녀 가신게지.” 그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창을 열자, 끝없이 펼쳐진 산자락들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마당에 파초 한그루, 우산 같은 나뭇잎 여전히 푸르다. “법정 스님이랑 불일암 살 때도 마당에 파초가 있었지. 범어사 선원에도 있었고, 속이 비었어. 양파처럼 아무것도 없어. 혜가가 달마에게 팔 하나를 바치고 그 팔을 얹어 놓은 것이 파초였지. 무아無我가 저런 거라.”   

사진 : 최배문

어둑어둑하여 산을 내려와 구례에서 하루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올라갔다. 스님은 마당 한쪽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18년을 같이 살다 죽은 개를 묻은 곳, 매일 향을 피워준다고 한다. “죽은 지 2년 됐는데 그리워. 자식도 안 키워본 내가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이 이렇겠구나 하고 개한테서 많이 배웠지. 49재, 100일재 다 지내줬어.”

토굴 이름이 ‘연암난야’다. 소박한 현판이 처마에 걸려 있다. 이 터가 서산 대사가 출가하기 전에 행자 수행하던 ‘연암蓮庵’이라 해서 따온 것이고, 난야는 ‘한적한 수행처’라는 뜻의 범어 아란야阿蘭若에서 가져왔다. 산죽으로 울타리를 친 열 평 남짓 작은 마당에는 파초와 보리수, 청매 한그루 심어 놓았다. 빈 의자, 작은 연못, 둥근 나무 탁자가 있고, 탁자 위에는 밤과 모과 몇 개 놓여 있다. 댓돌에 검정 고무신 한 켤레, 그 옆으로 대나무 지팡이가 서 있다. 모든 것이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저 앞에 산봉우리, 어머니 유두처럼 생긴, 관음봉이야. 그 뒤가 청학동이고, 뒤쪽으로는 벽소령, 실상사이고. 김동리 소설 ‘역마’에 나오는 삼남대로가 바로 의신 넘어가는 이 길이지.” 조영남 노래에도 나오는 화개 장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남원은 산골이라 소금이 없다. 지리산을 넘어 화개 장에 가야 살 수 있다. 그래서 벽소령을 넘어 의신에서 자고, 가져온 담배를 팔고 건어물 소금 따위를 사서 다시 넘어가는데 사흘 걸렸다고 한다. 스님과 마루에 앉아 차를 한잔 나누는 여유로운 시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그랬더니, “불교의 5계가 뭐냐?”고 반문한다. 손가락을 펴서 하나씩 접는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다 세니 손이 주먹이 된다. 

“이 주먹을 꽉 쥐고 있으면 뭐가 될까? 조막손이지. 저 창을 열지도 못하고 닫아만 놓기만 하면 뭐가 될까?”

“벽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벽창호가 안 되려면 닫을 줄도 알아야 되고, 열 줄도 알아야 되는 거라. 선禪이란 남 말하지 말고 니 말하라는 거거든. 뗏목이 강을 내려가는데 한쪽 강가에 걸리면 못 가는 거라, 가운데로 난 길(中道)로 가야 바다에 닿는 거지”

“스님,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는데 새해는 무엇일까요?”하고 하나 더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마치 답을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어제는 섣달그믐, 오늘은 정초 설날,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날, 그것이 새해고 설날이지”하고 말했다.  

나오는 길에 합장하면서 다시 와도 되냐고 물었더니, 스님은 나는 관리인이고 당신이 주인이라면서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사진 : 최배문
사진 : 최배문

이광이
60년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 따라 대흥사를 자주 다녔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신문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했다. 한때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면서 불교와 더욱 친해졌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을 하나 냈고, 도법 스님, 윤구병 선생과 ‘법성게’를 공부하면서 정리한 책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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