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참선지도자협회가 개최한 DMZ세계평화명상대전이 11월 13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펼쳐졌다. 5천여 명의 수행자들이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언덕에 앉아 좌선을 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수행자들은 분단을 상징하던 DMZ 철책 길을 평화를 염원하며 걸었다. 비무장 지대에서 5천 명의 수행자들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던 대 자유의 시간. 태국불교의 전설적 아라한 아잔 간하, 호주의 세계적인 명상 스승 아잔 브람, 한국 간화선 대종사 충주 석종사 혜국 스님, 한국참선지도자협회장 각산 스님 등 세계적인 명상 스승들이 한자리에 모여 명상을 지도했다.
| 마음에 세계 평화의 씨앗을 심는 법석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평화를 불살생으로 보셨습니다. 내 생명이 소중하면 남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생명의 소중함 그 자체가 평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간에게 다른 생명보다 인간의 생명이 더 고귀하다는 생각들이 자리 잡게 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코끼리의 생명도 비둘기의 생명도 모두 똑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살생의 가르침, 생명의 소중함이 곧 진정한 평화입니다.”
한국 간화선 대종사 혜국 스님의 한반도 평화기원 기조 법어는 ‘진정한 평화’에 의미에 대해 다시 새기게 했다. 스님은 모든 생명의 근본 자체가 평화이며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가르침으로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설했다. 혜국 스님이 평화누리 공원에 있는 수행자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찾는 법’을 화두처럼 쥐어줬다. 불살생의 평화 정신을 배우며 마음에 세계 평화의 씨앗을 심는 법석. 혜국 스님의 법문으로 DMZ세계평화명상대전의 막이 열렸다.
분단의 상징인 이곳에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 그리고 자신의 평화를 기원하며 모인 참가자만 5천여 명이었다. 이들은 평화누리 공원에 설치된 무대를 바라보며 저마다 앉고 싶은 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수행자들 뒤로는 나들이객들이 지나다녔다. 그 풍경이 퍽 조화로웠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해야 할 일과 의문을 내려놓으십시오. 지나간 과거 또한 다 내려놓습니다. 과거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미래 또한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저 지금 이 순간, 안반선安般禪 호흡 명상으로 들어갑니다. 평소의 숨 쉬는 대로, 자연스럽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가만히 호흡을 집중해보겠습니다.”
짧은 선무도 시범으로 몸을 풀고서 시작한 첫 수행은 각산 스님이 호흡명상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스님의 종소리에 따라 고요히 입정에 들었다. 각산 스님은 말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숨 쉬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시원한 호흡이라 생각하고 들숨과 날숨을 바라보라. 생각이 떠오르면 호흡으로 돌아오라. 생각을 알아차리면 지혜요, 생각을 끊으려 하면 망상이다. 그저 호흡으로 돌아오기만 해도 훌륭한 삼매 수행이다.”
참가자들은 각산 스님의 지도에 따라 내 숨을 느껴보았다. 넓은 동산에 홀로 앉아 호흡을 관찰했다. 야외 명상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망상이 떠오를 때는 새들이 지저귀며 지금 여기 있으라고 깨우고, 또 집중하는 힘이 흩어질 때면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간질이며 땀을 식혔다.
코끝에 감도는 공기가 상쾌하다고 느껴질 무렵 곧이어 아잔 간하가 무대 위로 입장했다. 세계 평화의 법문을 전하기 위해서다. 아잔 간하의 법문은 아잔 브람이 대독했다. 아잔 간하는 메따Metta, 즉 자애慈愛가 빚어내는 평화에 대해 전했다. 아잔 간하는 “약간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자애를 널리 퍼트리면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이룰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의 몸에는 휴식과 잠이 필요하듯이 우리 마음도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마음이 평화롭고 친절하고 고요하게 되기 위해서는 때때로 우리 두뇌를 재충전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명상하지 않을 때는, 타인을 위해 봉사할 시간입니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라도 다르고 성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남‧북간의 통일, 더 나아가서 세계가 하나가 될 때까지 노력하자는 아잔 간하는 아잔 브람에게 말을 더했다. 내면의 평화를 얻는 법, ‘명상을 할 때는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달해달라는 것이다. 아잔 브람이 대신 전했다.
“명상을 성실히,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지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호수에 물결이 일게 되면 그 호수에는 달이 비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을 때 그때 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고요함에서 큰 지혜가 나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 평화를 염원하는 걷기 명상
2천 명의 불자가 평화누리 공원 뒤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6.5km를 함께 걷는 걷기 명상은 아잔 브람과 각산 스님이 이끌었다. 안거 중이었던 아잔 브람이 이번 DMZ세계평화명상대전에 참여한 만큼 두 스님은 함께 걷는 참가자들이 빠짐없이 지도받을 수 있도록 유튜브 방송과 이어폰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수많은 대중에게 걷기 명상을 지도했다.
수행자 2천 명이 50cm 보폭을 맞추어 일렬로 걷기 시작하자 그 행렬만 1.3km에 달했다. 6.5km의 길을 자신의 발에 집중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군사통제구역을 지나 DMZ 철책을 따라 걸으며 걸음걸음마다 분단의 아픔에 대한 평화의 마음을 보내고, 자신의 평화를 찾았다. 두 시간 동안의 묵언 수행. 임진강변 생태탐방로의 흙 자갈길에서는 자박자박 발소리만 가득했다. 아잔 브람은 이어폰 너머로 “지금 그저 이 순간에 있을 뿐, 앞으로 몇 km를 더 걸을지 생각하지 말라”고 명상을 지도했다.
“우리 인생에서 걷는 걸음은 지금 이 순간에 닿아있을 뿐입니다. 미래의 걸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걸을 뿐입니다. 다음번의 걸음이 어떨지 우리는 지금 알 수 없습니다. 지금 한 걸음 걸을 뿐. 앞으로 더울지 힘들지 생각하지 않고 침묵 속 한 번에 한 걸음 걸을 뿐입니다. 이 침묵에서 걸음으로써 우리가 우리 걸음을 알게 됩니다. 나의 한걸음에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됩니다.”
각산 스님이 걷기 명상에 대한 설명을 더 했다.
“내가 드론을 띄워 나를 본다는 생각으로 걸어라. 말하지 마라. 생각하지 마라. 발끝을 보라. 걷는 순간에는 오로지 걷는 것만 생각하라. 발을 쳐다보면 일어나는 생각이 지혜로 모인다. 집중하면 한 가지 지혜는 얻는다. ”
참가자들은 발을 바라보고 호흡하며 농로를 걸었다. 흙길을 걸으려니 발바닥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꿈치부터 닿은 발이 땅을 차고 나가니 종아리, 무릎, 허벅지, 엉덩이, 허리, 등, 팔이 저마다 제 역할을 하며 몸의 균형을 잡았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을 때 내 몸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본다. 지금 한 발 내디딘 걸음이 다음 걸음을 내딛는 나를 만든다. 그렇기에 지금 한 발에 집중해 오롯이 걷는다.
함께 걷는 이들의 수가 많아 간혹 묵언을 깨는 사람도 있었지만, 크게 괘념치들 않았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며 걸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평화를 염원하며 걷기 명상을 했다”는 이현주(남양주, 50) 씨는 오늘 이 자리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과 함께 자신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 걷기명상을 마치고서 도란도란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던 신혜선(55, 경기), 김순희(55, 경기) 씨는 “명상을 하면서 바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온전하게 느껴졌다”며 쉽게 들어오기 어려운 곳을 걷는다는 생각에 감회가 남달랐다고 전했다.
| 내 안경이 어디에 있을까?
걷기 명상으로 송골송골 맺힌 땀이 식을 정도의 휴식을 취한 뒤 무리는 다시 들판에 앉았다. 다시 각산 스님의 참선 지도다. 스님은 힘들지 않게 좌선하는 법을 일러줬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앉고 싶은 만큼만 앉으라는 주문이다.
“간단합니다. 한 시간 앉는다, 열 시간 앉는다고 미리 생각하지 말고, 앉고 싶은 만큼만 하면 힘들지 않습니다.”
이어진 마지막 법문은 아잔 브람이 맡았다. ‘내가 미래에 이것을 성취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잃고 있다는 것. 스님은 ‘지금, 이 순간’을 잃지 말라고 운을 띄웠다.
“제가 몇 년 전에 안경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디에 뒀는지 도통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을 뒤져봐도, 사무실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 있을까?’ 한참을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죠. 그 안경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제 코끝에 얹어져 있었습니다. 모든 곳을 찾아봤는데 제 코를 안 찾아본 겁니다. 평화도 깨달음도 바로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살펴도 보이지 않았던 안경은 사실 제 코에 있었습니다.”
아잔 브람은 그렇기에 자기 마음과 좋은 친구가 될 것을 권했다. 스스로에게 친절할 것. 사람들은 때때로 스스로에게 불친절하니 자신의 마음과 싸우지 말라는 것. 마음이 평화로우면 행복해지고, 행복하면 거기서 고통을 끊을 수 있는 지혜가 나온다는 것. 아잔 브람이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청중을 둘러보더니 손가락을 하나 치켜들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영어 단어를 딱 하나만 배울 수 있다면, 이 단어를 배우십시오. ‘릴랙스Relax.’”
아잔 브람이 마치 진언처럼 “릴랙스~”를 여러 번 반복하며 청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저 멀리 언덕에 앉아 법문을 경청하던 장미진(45, 광명) 씨는 오늘 “대가 스님들의 명상 지도를 받으며 코끝에 걸려 알아차리지 못했던 행복을 찾은 시간”이었다며 “내 삶도 걷기 명상을 하면서 배운 것처럼 내 호흡과 보폭에 맞춰서 가면 즐겁지 않을까” 하고 소감을 전했다.
오후 다섯 시 반. DMZ세계평화명상대전이 끝났다.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세계명상힐링캠프’로 이어졌다. 수행자 1천여 명은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로 이동해, 16일까지 3박 4일 동안 아잔 간하, 혜국 스님, 대만 영취산불교교단 선원장 심도 선사, 각산 스님과 함께 수행하고 점검을 받는 집중 수행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이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을 나서는 길, 멀리서 바람이 불어와 공원 안쪽에 세워진 바람개비들이 팽그르르 돌았다. 온종일 한반도의 평화와 자신의 평화를 염원했던 이들의 자비로움도 이 바람에 실려 퍼졌을 것이라. 공원을 떠나는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