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부처님 당시에도 대나무는 유용한 나무였음이 틀림없다. 그릇과 건물의 뼈대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꽤 많은 생활용품들도 대나무로 제작되었다. 경전 속에는 승려들이 의복을 수선하기 위해 바늘을 썼는데, 철바늘이 아니라 대나무 바늘을 썼던 흔적이 보인다. 당연히 대나무는 당시 건축 용도로 가장 많이 썼던 나무로, 높은 석조 건축물을 짓거나 석굴을 굴착할 때 작업용 비계로 많이 사용되었다. 일시적인 용도로 가건물을 짓거나 기둥이나 지붕을 올릴 때도 사용하였다. 이러한 건축 용도 외에 고대 인도인들의 성생활에 대나무가 사용되기도 했는데, 대나무 마디마다 생기는 얇은 막을 이용해 당시의 콘돔을 대신하기도 했다. 율전에는 승려들이 이것을 사용하는 경우를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는데 꽤나 구체적인 경우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금지 조항은 오히려 당대 일반인들이 사용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승려사회에서도 문제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건축자재에서 소소한 생활용품까지 대나무를 이용해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도 불경에는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이는 대나무가 고대 인도의 일상생활에서 꽤나 유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전 속에는 고대 인도에서 대나무를 조림했던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처님이 활약하던 왕사성, 지금의 북인도 비하르Bihar 지역의 여름은 매우 뜨겁다. 고대의 수행자들도 뜨거운 열기를 피해 숲속의 그늘로 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혹서기 때는 비 한 방울 오지 않는다. 이 열기를 유일하게 막아줄 수 있는 것은 나무 그늘 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고대 인도 사람들은 대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곤 했다. 그리고는 베누바나Ven.uvana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대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왕들과 부호들은 수행자들을 위해 숲을 조성하거나 그곳에 건물을 지어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불교 최초의 승원이었던 죽림정사竹林精舍는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부처님에게 보시한 땅에 마련되었다.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만난 것은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전이었다. 그때 수행자로서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빔비사라 왕은 깨달은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었다. 부처님은 마치 그 약속에 답하듯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그리하Rājagr.iha를 방문했던 것이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이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우루벨라의 현자 가섭과 그의 형제들까지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했다.
그는 왕실로 부처님을 초대한 후에 그가 편안히 수행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다. 부처님은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좋으며, 낮에는 번잡하지 않고 밤에는 소음이 없는 곳, 그래서 세속의 일들을 멀리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말씀하셨다. 그러한 곳으로 빔비사라 왕이 택한 곳이 바로 죽림정사의 자리였다. 그는 이곳에 대나무를 심어 공원(ārāma)을 조성하였고, 이름을 죽림정사라 했던 것이다. 이 죽림정사는 부처님이 하안거를 지내며 숱한 『아함경』과 율전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며, 사리불이나 목건련과 같은 그의 천재적인 제자들이 처음 부처님께 귀의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불교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그렇지만 팔리 경전이나 산스크리트 경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 대나무 숲에는 특별한 별칭이 붙어있다. ‘칼란다카kalandaka’ 또는 ‘카란다카karan.d.aka’라는 이름이다. 수많은 한역경전은 이를 단순히 음역하여 가란타迦蘭陀라고만 옮기고 있다. 그래서 경전에는 “한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원에 계실 때(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라고 경전을 시작하고 있다. 사실 칼란다카 뒤에 한 단어가 더 붙는데, 니바파nivāpa가 그것이다. 이는 먹이 또는 공양물을 뜻한다. 그러니까 죽림정사는 ‘칼란다카에게 먹이 주는 곳’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전의 시작은 “한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죽림원, 즉 칼란다카 먹이 터에 계실 때에” 정도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칼란다카가 과연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어떤 한역 경전은 이 칼란다카를 까치와 같은 새(鳥)로 옮기며, 어떤 경전은 다람쥐라고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칼란다카를 부유한 상인의 이름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며, 한역이 어떤 언어의 판본을 토대로 삼았는지도 알 수 없다. 다람쥐보다는 새로 번역한 경우가 오히려 한역에서 더 많이 등장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다양하게 칼란다카를 번역하게 된 각각의 사연들까지 불경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곧 죽림정사가 세워진 사연들을 모두 달리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칼란다카라는 단어 속에는 죽림정사의 기원 설화가 숨어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원정사의 급고독원給孤獨園과 맥락을 같이한다.
기원정사의 경우와는 달리, 이 대나무 숲을 교단에 보시한 사람과 그 사연이 불경 속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이야기된다. 여러 다른 버전들의 이야기들이 불경 속에 혼재한다는 점이다.
어떤 경전에 따르면, 이 죽림정사 자리의 숲은 한 부유한 장자의 것이었는데 빔비사라 왕이 아직 왕좌에 오르기 전 이 땅을 매우 탐내어 자신에게 팔 것을 종용했었다. 거듭 장자를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빔비사라 왕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그 숲을 빼앗아 버린다. 분을 참지 못했던 장자는 숨을 거두면서 원한을 갖게 되고 뱀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복수를 계획한다. 왕이 궁녀들과 숲에 놀러와 낮잠에 빠지자, 뱀은 그를 죽이기 위해 접근한다. 하지만 뱀이 나타나자 칼란다카(까치 또는 다람쥐)가 소리를 질러 왕을 깨우게 되고 왕은 뱀을 죽여 위기에서 벗어난다. 빔비사라 왕은 자신을 구한 칼란다카를 위해 숲에 대나무를 심고 언제나 이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먹이를 제공하도록 했다.
마침내 이렇게 대나무 숲이 조성된 것이었고, 이를 부처님께 보시하게 된 것이다.
다람쥐
앞의 죽림정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칼란다카kalandaka가 다람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새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람쥐는 칼라카kāl.akā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불교 경전 속에서 다람쥐는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이 동물의 상징성은 경전 속에 의외로 잘 묘사되어 있다.
「칼란다카 자타카」는 어린 새끼를 구하기 위해서 바닷물을 다 퍼 올리려 했던 다람쥐 이야기가 들어있다. 마치 가을이 되면 부지런히 먹이를 주어 나르는 모습을 보듯이, 무모하게 생각되는 일도 끈질기게 지속하는 모습을 고대 인도 사람들은 다람쥐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인들 사이에서 이 다람쥐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密vīrya-pāramitā)의 상징적 존재처럼 회자된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다람쥐 부부가 반얀나무 위에 살고 있었을 때였다. 이들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어린 새끼 두 마리를 낳은 후 정성껏 키우고 있었다. 이 다람쥐 식구들은 어느 날 엄청난 폭우를 만나게 된다. 반얀나무는 강가에 서 있었는데, 그 강이 범람하여 어디로 피신할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새끼들은 강물에 휩싸여 떠내려갔고 곧 강물은 바다와 같이 변했다. 그때, 다람쥐 부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식들을 쓸어버린 강물과 바닷물을 모두 퍼 올려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이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다람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으므로. 다람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그 물을 자신의 꼬리로 쳐서 다른 편으로 퍼 올렸다. 그렇게 하면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람쥐 보살은 한순간도 쉼 없이 이 일을 반복했다, 정말 바닷물을 다 퍼 올릴 수 있을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석천帝釋天이 바라문으로 변신하여 그의 앞에 나타나 묻는다. ‘네 하잘것없는 꼬리로 바닷물을 퍼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언제 그 물을 다 퍼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다람쥐가 답했다. ‘겁 많고 게으른 이들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자신은 이 일을 끝낼 자신과 확신이 있습니다. 일을 끝까지 하던가, 아니면 죽든가 둘 중 하나겠지요.’
다람쥐의 의지와 자세에 감복한 제석천은 그의 새끼들을 즉시 물에서 구한 뒤, 그가 미래에 붓다가 될 것임을 예언한다. 또한 곁에서 항상 그를 도와주겠노라고 제석천이 약속한다.
인도 다람쥐는 등 위에 그려지는 긴 세로줄 무늬에 따라 보통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세 줄 다람쥐(Funambulus palmarum)이며 또 하나는 다섯 줄 다람쥐(Funambulus pennanti)다. 두 종류 모두 사람에 의해 잘 길들여지지 않지만, 다섯 줄 다람쥐가 훨씬 사람들에게 가깝다. 사람을 가까이하며 먹이를 주면 곧잘 받아먹곤 한다. 아마도 죽림정사 고사 속에 등장하는 칼라다카가 다람쥐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다람쥐는 다섯 줄무늬 다람쥐였을 것이다.
바르후트 스투파에도 나무에 올라 분주히 자신의 일에 정신이 없는 다람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현재 상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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