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은 병원 봉사자의 하루 –  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 법당으로 향하는 길. 유리로 만들어진 병원 입구 외벽이 반짝이며 빛났다. 답답한 병실에서 나와 병원 주위로 산책하고 있는 환자들이 보였다. 온몸으로 숨을 쉬는 듯 편해 보였다. 지하 4층에 위치한 불교 법당에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이 많았다.

|    “안녕하세요? 지하 4층 불교 법당에서 왔습니다.”
해운대백병원 법당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법회를 연다. 법회가 열리는 화요일이면 오전부터 봉사자들이 분주하다. 병실 라운딩을 돌며 법회를 알리고 참석을 구한다. 지하 4층의 병원 법당은 공간이 협소해 법회는 지하 2층의 회의실에서 진행한다. 
오전 10시, 병원 직원에게 회의실 열쇠를 건네받고 법당에서 챙겨 온 불기를 정리한다. 정면에 부처님 탱화를 걸고, 불단을 구성하며 마지쌀과 청정수를 올린다. 초를 켜고 향을 사르며 환자들이 앉을 자리를 정돈한다.
“저희가 정신이 없죠? 법회하기 전에 병실 라운딩도 돌아야 하거든요. 병원 병실도 많고 환자들도 많아서 서둘러야 합니다. 해운대백병원은 또 오래 입원하는 환자보다 단기 입원하는 환자들이 많다 보니까 매주 새로운 분들이 법회에 참석하신다고 봐도 될 정도거든요. 그래서 라운딩이 중요합니다.”
8년째 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윤희 법당 팀장이 법회 준비를 마쳤다. 해운대백병원 법당은 11명의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주중에 매일 병원 라운딩을 돈다. 부산 대광명사(주지 목종 스님) 신도들로 구성된 봉사자들은 2010년 대광명사에서 병원 법당을 개원한 이후 한결같이 직접 환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입원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 휠체어에 탄 한 환자를 만났다. 봉사자의 손에 들고 있는 법요집을 보고 환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내려 환자의 이름과 병실을 물어 메모했다. 병원 법당에 새로운 인연이 또 하나 늘었다.
“안녕하세요? 지하 4층 불교 법당에서 왔습니다. 혹시 불자님 계십니까? 오후 2시에 지하 2층 강당에서 법회가 열립니다. 가능하시면 참석해주세요.”
또 다른 법당 봉사자 김영미 씨가 병실을 돌며 법회를 알렸다. 김 씨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김 씨는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병실에 들어갔으며,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다가가 한 번 더 설명해주었다.
“환자들이 조금 소극적이에요. 라운딩을 돌면 조용히 말을 거시거나, 무심한 듯 툭 이야기를 던지세요. 그마저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더 살펴야 합니다.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 보며 여쭙고,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자신이 불자라는 사실을 말하거나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심을 표현해줍니다. 그래서 매일 라운딩을 돌고 사람을 만나요.”

|    불자 환우를 위한 발원
라운딩을 돌던 두 봉사자가 조금은 편하게 인사하며 한 병실로 들어섰다. 함께 대광명사를 다니던 도반이 있는 곳이었다. “보살님 잘 계셨어요?”라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제가 믿는 종교에서 이렇게 매일 같이 병실로 찾아오니 마음이 참 편합니다. 늘 부처님께서 살펴주시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처음 입원했을 때는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법회에도 참석하며 부처님에 기도 드릴 수 있어 좋습니다.”
40여 일 가량 입원 중인 정희숙(75) 씨도 두 봉사자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10여 년간 사찰 공양간에서 밥을 짓던 정 씨와 두 봉사자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다. 그의 손을 잡고 이윤희 봉사자가 병의 차도를 물었다. 정 씨는 같은 병의 다른 환자에 비해 회복이 빠르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모두 부처님 덕”이라는 그다.
한 병실이라도 더 돌며 환자들을 만나다 보니 점심시간이 늦어졌다. 두 봉사자는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점심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점심 먹을 시간이 짧았다.
식사 후 법당으로 내려온 봉사자들은 병실을 돌며 중간중간 메모한 것들을 확인하고 법당 인등을 새로 달았다. 인등에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이름과 병실 등 간략한 인적사항과 쾌차발원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라운딩을 돌며 인연이 된 이들을 위해 무료로 인등을 올려 발원하는 것이다. 
봉사자들은 매일 병실을 돌며 불자 환자들을 살피고, 퇴원한 환자의 인등은 내리고 새로 만난 환자의 인등을 올린다.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교 법당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이름을 메모해 인등을 올리며, 법회 시간에는 그들을 위한 축원도 함께한다. 이윤희 씨가 말했다.
“법당에 올린 인등 모두 이곳에 계신 사람들의 쾌차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봉사를 하면서 제가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제가 건강하기에 이곳에서 남을 도울 수 있고, 부처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곳에 계신 환자들이 그들의 바람대로 모두 병을 이겨내고 건강히 퇴원하셨으면 합니다.”
법회 시작을 앞두고 환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이도 있었고, 링거를 달고 온 이도 있었다. 부처님 앞에서 그들은 모두 불자였다. 선 채로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여느 법회와 마찬가지로 예불이 시작됐다. 법회 중간, 나이가 지긋한 한 환자가 환자복을 더듬거리며 고이 접힌 천 원짜리 두어 장을 꺼냈다. 거동이 불편한 그가 손짓으로 봉사자를 부르더니 보시금이라며 돈을 쥐여 주었다. 원래는 받지 않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봉사자는 그 돈에 담긴 마음이 무거워 조심스레 불단 위에 올리며 두 손을 모았다.
“병원 법회에 와 보시면 이 환자들이 얼마나 진심을 담고 기도하는지 아실 겁니다. 몸이 더 아프면 아플수록 사람들이 간절해지는 것 같아요. 그 모습에 매번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이 삶은 얼마나 진심이고 얼마나 간절한지요.”
이윤희 씨의 말이 비단 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병원 법당의 모든 인연들이 간절하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오후 4시, 병원 법당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내일 만날 새로운 인연을 위해 오늘 하루 잘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