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불완전은 성장의 과정이다
「호법」 월보를 보시겠습니다. 「법당의 메아리」 맨 앞의 제목은 ‘우리는 서로 주고 서로 받는 성장과정이다’입니다. 여기에는 오른손이 왼손을 돕고 왼손이 오른손을 도우면서 함께 건강과 성장을 이룩하는 한 몸이라는 뜻이 바닥에 깔려 있는 표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리는 대립이 아니요, 진리는 동일자다. 그리고 서로 협동해서 모두가 성장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 한 군데 집착해 굳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서로 순환하고 서로 유통해가고 서로 협동하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성장하고 번영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이 대목의 줄거리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본분이 진리이며 부처님의 무량공덕이다. 이것이 진실이고 그것은 완전원만하며 무량공덕이 충만하다. 우리의 현실이 불완전한 상태를 보이는 것은 완전을 향한 성장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리실상이 나타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불완전한 현상, 즉 진리공덕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보이는 불완전상은 일시적이며 진행과정의 모습이다. 성장하고 가지치고 새싹이 나오는 가운데 화려한 꽃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설사 우리의 환경이 불완전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더라도 조금도 실망할 것은 없다. 우리는 진리이신 부처님의 대생명의 구현자임으로 일체성취 원만구족은 필경의 결론인 것이다. 어떤 때라도 실망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흔들리거나 전진을 늦추지 말자. 믿음과 감사와 기쁨과 용기로 나아가자. 앞으로, 앞으로.
‘믿음과 감사와 기쁨과 용기로 나아가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불완전하게 보이지만 오늘의 불완전은 성장의 과정입니다. 아기들은 지금 완전치 못하지만 점점 성장해 가는 것이고, 우리 주변의 일들도 불완전한 것이 나타나고 뜻대로 안되어 가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하나 성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일이 성장하고 세상이 모두와 같이 물려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불완전에 실망하지 말고 공포를 버리고 흔들리지 말고 그냥 오직 믿음 하나를 가지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합시다. 믿음과 감사와 기쁨과 용기로서 한결같이 나아갑시다. 왜냐하면 근원적인 진리가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불완전한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성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기도를 하면서 꼭 이 생각을 해주십시오. 눈앞에 내가 기원했던 것이 금방 나타나서 성취되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과 용기를 가지고 오직 정진, 정진, 계속 정진해서 필경에 근원적인 진리광명이 완전히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실현해 나갑시다. 기도가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일체가 그렇습니다.
| 오늘의 불완전은 성장의 과정이다
부처님의 진리공덕을 생명에 지닌 우리들은 항상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위대하고 완전하고 만덕이 구족한 것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때라도 열등감에 빠져서는 아니 된다. 비록 현재 모습이 초라하고 지금 화려하게 핀 다른 꽃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듯해도 우리도 마침내 누구 못지않게 꿋꿋하게 성장하고 아름답게 꽃필 때가 오는 것이다.
가을 국화가 봄의 매화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국화는 국화가 아니면 표현 못할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는가. 꽃이 제각기 개성 있는 아름다움이 있고 꽃피는 시기가 있듯이 우리의 생명이 진리광명을 발동시킬 때도 있다. 속성재배를 하듯 자기 능력에 조기개발을 제한할 이유도 없다. 왜? 우리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능력을 크게 발휘해서 속성 재배하는 것처럼 계절관계 없이 여름에도 봄에도 국화꽃을 피우게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우리의 자유입니다. 여기서 형제들과 다시 반복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진실은 우리가 보는 것보다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초라하고 지혜가 없고 무능하고 남보다 재간이 없어서 불행한 존재같이 보여도, 그것은 내가 보는 것이고 진리실상은 그렇지 않으며 눈으로 보는 현상보다 참으로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리생명이 부처님과 더불어 함께하고 있고 부처님의 무량공덕의 강물이 내 생명 위에 지금 끊임없이 부어지고 있습니다. 만인이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초라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 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을 넘어서서 진실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정진을 해야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불보살의 자비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에는 ‘불보살의 자비’라는 제목으로 경의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실은 내용은 『화엄경』을 바탕으로 한 부처님의 자비심, 보살의 자비입니다.
부처님은 무수한 과거세에 걸쳐 중생을 위해 ‘대비大悲의 바다’를 수습하사 여러 중생을 따라 생사에 들어가 모든 사람들을 널리 구제해 청정케 하셨다. 부처님은 대비의 마음을 가지고 중생들이 삼유三有 가운데 윤회하여 온갖 고통 받음을 관찰하신다.
선남자여, 나는 그릇된 지혜를 지닌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며 악한 행동을 하는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느니라.
“중생들이 밑 없는 생사의 큰 구덩이에 빠져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이들을 속히 건져내 일체지一切智의 경지에 살 수 있도록 하랴. 중생들이 온갖 번뇌의 핍박을 받고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이들의 귀의처가 되어 주어 그 신심의 편안을 길이 얻게 하랴. 중생들이 지혜의 눈이 없어서 항상 자신을 실제로 있는 듯 믿어 근심에 뒤덮여 있으니 나는 장차 어떻게 방편을 써서 의심에 가린 막을 도려내게 하랴. 중생들이 항상 어리석음의 어둠속에서 갈팡대고 있으니 나는 장차 어떻게 밝은 횃불을 만들어 일체지의 성품을 비쳐 이들로 하여 보게 하랴. 중생들이 항상 인색ㆍ질투ㆍ아첨ㆍ기만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거니 나는 장차 어떻게 그들의 지식을 완전케 하여 청정한 법신을 증득케 하랴.”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비즉불심慈悲卽佛心, 자비심이 바로 불심이라는 것입니다. 불이라면 진리입니다. 일체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있는 근본적인 몸을 진리라고 합니다. 이 근본적인 몸, 일체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있는 몸, 진리로써 이루어진 몸, 법신의 체온이 바로 자비입니다. 자비가 바로 부처님의 체온이고 자비가 바로 나에게 깃든 부처님의 진리생명의 체온입니다. 만약 나에게서 자비심이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는 부처님의 자비심을 스스로 가로막고 자기를 싸늘한 물질로 만드는 것이고 인간이 가지는 덕성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자비로써 스스로를 쓰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비심이 성장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불도가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 좋겠습니다.
‘대자비의 바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비의 바다. 끝이 없는 자비, 한이 없는 자비, 깊이 모를 자비, 넓고 깊고 한이 없는 큰 자비심이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비의 바다를 배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자비심을 어떻게 내느냐? 나쁘게 보이는 사람, 나쁜 행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대할 때 더욱 자비심을 일으킵니다. 부처님께서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명에 갇혀 있는 세간을 볼 때 자비심을 내십니다. 번뇌와 고난으로 갖가지 핍박을 받을 때 그것을 보시고 자비심을 내십니다. 중생들이 생로병사를 거듭하고 의지할 데를 모르고, 진리의 행복과 진리의 위덕을 발휘할 수 있는 그 길을 몰라서 흔들리고 사는 것을 볼 때 부처님은 자비심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이 세간에서 나에게 이롭게 하든 해롭게 하든 모든 경우에 자비를 바탕으로 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불자들의 기본자세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대자비심으로 삼유三有의 세계를 윤회하며 고통받는 중생들을 살펴보신다고 했습니다. 삼유란 중생세계인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말합니다. 거기에서 부처님은 끊임없이 대자비의 눈으로 우리를 항상 보시고 살피십니다.
우리가 진실한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는 불자가 되려면 우리들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서, 다른 사람이 나쁜 짓을 하고 자기에게 거친 행동으로 나올 때 대항해 맞서 싸울 때도 있겠지만, 곧 생각을 돌이켜서 저 사람을 위해 염불해주고 좋게 하고 잘 되기를 기원해주는 자비심으로 바뀌는 것이 우리들의 수행자세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 불심이 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