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더웠던 여름도 지나갔다. 수마가 할퀴고 간 들녘에도 굳굳한 생명의 결실들이 자신의 무게만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침 저녁 서늘한 바람은 자연 우리에게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제 다시 책상을 정리하고 불경이라도 읽으며 비어있는 가슴을 채우고 싶다.
불교를 신앙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사경(寫經)은 이런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행방법이다. 사경은 법보인 경전의 말씀을 정성을 들여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사경의 '사(寫)'란 옮긴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뜻과 가르침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득 채우는 성스러운 행위이다. 이 '옮겨 베낌'을 통해 경전의 뜻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원력과 신심을 사경 속에 담아 신앙의 힘으로 키워나갈 수도 있다.
초기의 사경은 불교를 널리 보급시키는 유일한 수단으로 강조되었으나 통일신라 경덕왕 때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목판본이 개판된 이후 사경의 실용적인 면은 줄어들게 되고 반면에 '사경 공덕'이라는 신앙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인된 사경으로는 호남미술관 소장인 경덕왕 14년(755) 황룡사 연기 법사가 서사한 {대방광불화엄경} (국보 제196호)이 가장 오래된 사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의 사경은 원나라로 역수출할 정도의 높은 수준을 자랑하였으며, 그 최고의 결정은 고려대장경이다. 사경은 고려 충렬왕 이후 가장 발전하여 장식경으로 칭할 정도로 화려해져 최고급 종이인 감지(紺紙:닥나무의 종이에 쪽물을 들인 것 등에 금과 은으로 필사한 금 . 은니사경(金銀泥寫經)이 성행하였다.
금과 은으로 사경한다는 것은 불법이 금은보다 더 보배로운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는 신앙의 표현인 것이다.
경전에는 이러한 사경의 공덕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도행반야경} 탑품 제 3에는 "반야경을 베껴쓰는 공덕이 탑을 세워 공양하는 공덕보다 더 크다." 고 설하고 있으며, {금강경} 제15 지경공덕분에는 '한량없는 세월동안 보시한 공덕보다 이 경을 베껴 쓰고 독송하며 다른 이를 위해 해설한 공덕이 더욱 크다.'고 했다.
{법화경}에서도 제4 법사품과 제19 법사공덕품 등에 사경의 공덕을 일컬어 큰 서원을 이룰 수 있는 빠른 길이며 나아가 성불까지 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사경은 불자들의 신앙대상인 삼보중 법보에 해당하는 불경을 서사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성(誠)과 믿음(信)이 중요하다.
또한 마음 속의 발원을 이루어 달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것을 확신하며 감사하는 기쁨(悅)의 마음으로 정성껏 써야 하겠다.
사경에는 한 자 쓰고 세 번 절해 이루어진 일자삼례경(一字三禮經)과 한 줄 쓰고 세 번 절해 이루어진 일행삼례경(一行三禮經)이 있다.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사경의 의식작법은 전해지지 않으나 신라시대 사경에는 의식과 작법이 엄격하게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의 사경의식과 함께 반야심경 한 편이라도 베껴 씀으로써 공덕과 수행을 쌓아가는 풍성한 가을을 보냈으면 좋겠다.
1. 입정
2. 삼귀의례
3. 사경발원
4. 사경
5. 회향발원, 삼배(三拜)
6. 사홍서원
1. 입정
경을 쓰는 일에 지극한 마음을 갖도록 환경을 정돈하고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한다. 정좌하여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붓으로 쓸 경우 정갈한 물을 벼루에 부어 고요히 먹을 갈면서 마음을 안정시킨다.
2. 사경발원
이 공덕 무량하여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께 기원하옵니다.
오늘 제가 지극한 마음으로 경전을 쓰오니 이 경전을 쓰는 공덕이 무량하여 다겁이래로 지은 죄업이 다 소멸되어 모든 것이 뜻대로 되옵고 구경에 무상락을 얻게 하소서.
지금 이루어지는 이 경전이 미래세가 다하도록 없어지지 않아, 이 경전을 보는 모든 이들이 환희심을 내고 불법을 깊이 믿어 함께 성불하길 진심으로 기원하옵니다.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서가모니불.
3. 사경
사경할 경전을 잘 선택한다. 초보자인 경우 믿음의 입문서가 되었던 [천수경] 또는 [반야심경] 등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는 [관음경(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금강경] [법화경]으로 차츰 그 단계를 높여 가도록 한다.
붓으로 쓰면 좋겠으나 펜이나 볼펜도 상관없다.
경 제목을 쓰고 (內題) 본문을 쓴 다음 경 제목을 다시 쓰고 날짜를 쓴 후 원문(願文)이나 발문(跋文)을 쓰고 사경인의 이름을 쓴다.
4. 회향발원
미래세가 다하도록
지금 이루어지는 이 경전이 미래세가 다하도록 없어지지 않기를 소원하옵니다.
삼재(三災)가 일어나 삼천대천세계가 무너지더라도, 이 경전만은 없어지지 않기를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이 이 경전을 지녀 부처님을 믿고 법을 들으며 큰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으며 보현 보살의 행을 닦아 속히 성불하옵기 원하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원문)
我今誓願盡未來 所成經典不爛壞
假使三災破大千 此經與空不散破
若有衆生於此經 見佛聞法敬舍利
發菩提心不退轉 修普賢因速成佛
발원이 끝나면 삼배를 올리고 사홍서원으로 마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