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에 불을 끄자 등 뒤로 어둠이 내렸다. 낮은 조명 아래서 선원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워졌다. 엄숙하고 고요한 흐름 속 수행자들은 눈을 감고 자기 앞 벽을 마주했다. 실재의 벽보다 큰, 마음이 세운 벽이다.
“두, 두, 두, 두, 두….”
심장 소리보다 큰 소란에 일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도심의 공사 소음이 선원까지 올라왔다. 정진을 방해하는 것들도 다만 알아차릴 뿐, 수행자가 튼 가부좌는 풀리지 않는다.
| 바른 삶, 바른 길, 바른 방법
꽃피는 봄이 지나 다시 안거 철이 돌아왔다. 서울 참불선원(선원장 각산 스님)에 재가수행자들이 방부를 들였다. 수행에 대한 갈증 때문일까? 도심 선방 안에 재가수행자들이 가득하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함께 자리에 앉는다. 숨 들여 쉬며 시작.
“흔히 수행자들이 은둔 생활을 한다고 하죠. 수행자들의 은둔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세속과 은둔이 둘이 아니죠. 시끄러움을 피하는 이유가 시끄러움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을 찾기 위함이듯, 수행은 내 안에 힘을 기르고 세상과 함께하는 방법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올바른 수행에서 시작합니다.”
선원장 각산 스님은 정진을 이어가는 불자들을 격려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한다. 자기 안으로 중심을 가져가면서 동시에 만물에 대한 보리심을 이어간다. 스님의 말처럼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본다. 사회에서 지칠 때 휴식처를 찾는 것처럼 수행자들은 은둔의 길로 향한다. 수행자의 은둔과 대중의 힐링은 세상과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다.
쉽게 말하면 더 잘 살기 위함이다. 더 잘 살기 위해 바르게 수행한다. 불자는 신행을 수행으로 전환하여 마음속 기도를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시적인 기복적 생활이 아닌, 언제나 부처님 법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수행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게 스님의 말이다.
참불선원에서는 실참을 위주로 수행법을 공부한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직접 자리에 앉아 체험으로 느낀다. ‘눈물 젖은 빵’처럼 피부로 겪으며 정진해봐야 수행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참불선원 재가불자 하안거 참선정진에 방부를 들이려면 최소한 명상이나 수행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한 시간 정도 참선예불 시간에 스님이 말씀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이 각자의 수행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화두를 드는 것은 아니다. 초심자들은 호흡을 관찰한다. 코끝이나 단전으로 호흡을 정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으로 호흡한다. 초심자들뿐만 아니라 수행에 무르익은 이들도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기본이다.
실참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스님은 수행자들에게 늘 올바른 수행법을 알려준다. 많은 대중에게 이야기할 때는 『맛지마 니까야』 「안반수의경」과 『디가 니까야』 「대념처경」 등의 경전에 근거하여 정통적인 수행법을 지도한다. 하지만 각각의 개인에게는 그 사람에 맞는 눈높이 방법으로 수행에 도움을 준다.
| 내가 수행을 하는 이유
“아흔이 넘는 두 부모를 모시며, 어떨 때는 속에서 무언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여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가 있죠. 하지만 수행을 하면서 화가 날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니 화가 나는 순간이 짧아졌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짜증이 났을 상황도 이제는 변화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속해서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나인숙(55) 씨. 그는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아닌 참 공부를 위해 수행을 이어오고 있다. 정진해 나아가면서 차츰차츰 긍정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변하는 게 보인다는 그다.
“어제 같은 경우도 선원에 와서 자리에 앉아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마음이 고요하더라고요. 우리가 잠을 자거나 무의식일 때 고요한 상태잖아요. 그게 몸이 좋아하는 상태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수행을 하면 의식이 있는 순간에 그 상태를 느낄 수 있어 몸과 마음이 함께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수행을 하는 동안 편안해지고, 일상에 힘이 솟는다. 긍정적 에너지가 자신을 가득 채운다는 나인숙 씨는 수행을 하며 자신을 바라볼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인터뷰를 위해 수행을 곱씹으며 말을 이어가던 그의 목이 메자 옆에 있는 도반이 손을 잡아주었다.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할 사정이 그 안에 있을 것. 그에게 수행은 치유였다.
“몸이 좋지 않아 올해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그게 또 불안한 마음으로 변해서 생활이 많이 불규칙해졌어요. 마음이 좋지 않으니까 멍하니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새벽까지 지내기 일쑤였죠. 올빼미형 생활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봉은사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절을 찾다가 육조단경 대법회를 계기로 참불선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평소 마음이 많이 불안했었다는 또 다른 수행자 박미정(44) 씨는 수행을 하기 전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자신이 수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스님들처럼 몇 시간씩 정진해야 될까 겁이 났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면 된다는 스님의 말에 용기가 생겼다.
“제가 불안 증세가 조금 심해요. 참선을 통해서 어떤 광명을 찾거나 깨닫거나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합니다.”
수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심자의 바람. 박미정 씨의 수행도 보다 나은 삶, 더 잘살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각산 스님이 말한 수행과 이어졌다. 누구나 세상에서 힘든 일을 겪기에 어쩌면 수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도움이 된다.
| 세상은 이미 완벽하다.
“자. (손가락을 들며) 여러분 이게 무엇입니까? 다들 이게 무엇인지 아실 겁니다. 하지만 이것을 손가락이라 말하면 틀립니다. 손가락이라 말하지 않아도 틀리죠.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 뭐꼬?”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몸에 익은 수행자들은 물음을 이어간다.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마삼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등 선종 조사들이 만들어 낸 1,700여 공안들이 있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모두 사구다. 반대로 일상의 단순한 물음이라도 활구가 될 수 있다.
정진을 이어가는 선방은 건물 3층. 스님은 쉬는 시간이면 2층 종무소로 내려와 수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행 점검이다. 나침판을 세워 방향을 바로 잡는다. 올바른 길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쉼이 없다. 스님은 그런 마음을 알기에 언제나 수행자들과 함께한다. 올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좋은 스승과 좋은 도반과 좋은 도량이 필요하다는 스님. 한 수행자가 묻는다.
“손가락이라고 해도 틀리고, 손가락이라고 하지 않아도 틀리는 이유가 뭡니까?”
“이게 손가락이라는 이름이 있었습니까?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르기에 그저 따라 부르는 것이지 한 번도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틀리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손가락이라고 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보면서도 나를 속이는 것이니 틀린 것이라고 한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답이 있습니까?”
“다시 생각해보세요. 그 손가락을 보는 자신부터 다시.”
각산 스님은 화두에 속지 말고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 계속해서 주시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답이 아닌 물음.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자기 안으로 그 물음을 온전히 가져와야 한다. 수행하는 이는 언제나 그 물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다시 수행시간. 방석 위에 앉으면 누구나 자기 마음을 살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을 끊기 위해 애쓰며 괴로워한다. 도피하려고 하면 망상이 생긴다. 이 생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마음이 밖으로 가려는 것을 화두로 묻고 또 물어 내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내려놔야 한다. 통제하려고 하면 더 날뛴다. 방하착放下着. 그래서 각산 스님은 수행을 함에 있어 느긋함을 강조한다.
“수행이 고행이 되지 않게, 너무 잘하려 하지 마세요. 무심하게 구경하며 호흡하세요. 자신이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조바심 내지 말고 지그시 이어 가면 점점 발전한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올바르게 수행을 하는지 점검해야죠.”
참불선원에서는 호흡과 화두선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근처 양재천을 걷거나, 자연 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살핀다. 각산 스님의 지도 아래 도심의 많은 재가불자들이 자율적으로 정진하고 있다. 각산 스님은 말한다.
“세상은 이미 완벽합니다. 저 마음 하나만 바꾸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