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거 |
안거의 계절입니다. 스님들은 음력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함께 모여 수행 정진하는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갑니다. 안거安居는 부처님이 계실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우기에 비를 피하기 위해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안거는 정진이면서, 나를 쉬게 하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더위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요즘. 마음을 챙기기 어려운 날씨가 지속될 때, 고요한 숲으로 들어가 마음 살피는 짧은 안거를 행해보면 어떨까요. 불광이 추천하는 고요한 절과 녹음 짙은 숲. 홀로 안거하기 좋은 곳입니다.
01 가평 백련사 유윤정 |
사발커피 한 잔이 선사하는 여유
인간관계, 가족관계, 취업 고민, 직장 시달림…. 갖은 스트레스를 떨쳐 버리고 오롯이 말간 나를 찾으러 동쪽으로 내달린다. 작아서 좋은 절, 소박해서 좋은 절. 강릉 현덕사(주지 지정 스님)는 오대산 줄기 만월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다. 기도하러 왔다가 달빛 가득 쏟아지는 밤에 보았던 하얀 조팝나무 꽃이 그렇게도 좋았다는, 달밤이 멋있는 절이다.
진부IC에서 25분. 오대산 절경이 펼쳐지고 진고개를 지나 구불구불 좁은 산속 길을 올라가면 숲에 가렸던 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만월산 솔숲이 둥글게 품고 있는 아담한 절, 툭 터진 하늘과 넓은 도량이 휴식의 시작을 알린다.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는 새소리와 물소리에 도심 소음으로 긴장하던 귀가 편안해진다. 북강릉IC에서 가슴이 확 트이는 동해 바다를 보며 15분을 달려도 현덕사에 닿을 수 있다.
“찬찬히 둘러보소, 저 뒤뜰에 약사부처님이 참 예쁘다.”
회주 현종 스님이 법당 마당 구석에서 호미를 들고 풀을 캐다 맞이한다. 작은 화단에 고추를 심고 있었다. 참나리 꽃이 피어있는 뒤뜰에 소나무 숲속 약사여래불을 참배한다. 가을이 되면 이 언덕에 목화가 소담히 솜을 피워 올릴 것이다.
현덕사는 고요하고 자유롭다. 공양시간만 잘 지키면 나머지 시간은 전부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마당을 뛰어다니던 개 현덕이와 보리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포행을 나서면, 솔향기 피어오르는 촉촉한 오솔길이 펼쳐진다. 멀지 않은 거리라 가볍게 사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원한다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시간도 많다. 현종 스님은 다실에서 스님이 참숯으로 볶은 커피를 맷돌로 갈아 커피를 내려준다. 양손으로 감싸 쥐어야 하는 찻사발에 한가득 커피를 담아 마시며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스님의 방에는 ‘억지로라도 쉬어가라’라는 글씨가 있다.
“억지로라도 쉬어가야 합니다.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시간, 자기한테 선물 같은 휴식을 줘야 해요. 힘든 일, 세상 압박 내려놓고, 여기서 세 끼 먹고, 차 마시고, 포행 하면서 보내길 바랍니다.”
혼자와도 된다. 혼자 올 때 더 좋다. 스님은 현덕사에 오면 제일 먼저 낮잠을 자라고 권했다.
“요즘 사람들 밤새워 공부하고, 늦게까지 일해요. 잠깐 솔바람 소리 들으면서 낮잠 한두 시간 자면, 어떤 좋은 것 보고, 좋은 말 듣는 것보다 좋습니다. 자기 몸을 살피는 시간입니다.”
경내에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는 박지희(41, 서울 은평구) 씨는 4일째 머무르고 있었다. 7년 전 템플스테이를 해본 후부터 매년 휴식이 필요할 때 현덕사를 찾아온다. 그는 고민을 가져와 이곳에 내려놓고 편안함을 얻어갔다.
“모든 걸 다 떨쳐버리고 싶을 때가 있죠. 폭발하기 일보 직전일 때, 휴가 내고 찾아옵니다. 이곳에 있으면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듭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내게 주어진 자유죠.”
안거, 편안하게 머문다. 둥근 달을 바라보며 혼자 고요히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곳. 가볍고 편안함을 느끼며 만월산에서 나올 때, 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하는 스님이 한마디 툭 말을 건넸다.
“수처작주隨處作主 하십시오. 항상 건강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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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현덕사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싸리골길 170
033-661-5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