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은 책 사러 가네.”
“무슨 책 사러 가나?”
“『조태조비룡기趙太祖飛龍記』와 『당삼장서유기唐三藏西游記』라네.”
“사려면 사서四書나 육경六經을 사야지. 공자님 책을 읽으면 주공周公의 이치를 통달하기 마련인데 왜 그런 이야기책을 사나?”
“『서유기』는 신나고 재미있어서 답답한 시절에 읽기 좋거든.”
위의 대화는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의 한 단락이다. ‘언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고려 말부터 500여 년간 중국어 통역관들의 교재로 사용된 『박통사』(현재 전하지 않음)에 중세한글로 중국어 독음과 해석을 단 책이다. 요즘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회화를 배우듯, 『박통사언해』도 일상적 상황을 담은 100여 개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에 문학이 빠질 수 없다. 이 책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의 일부분이 실려 있어서 사라진 원대元代 판본(서유기 고본)을 유추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유기가 늦어도 『박통사』에 실린 고려 말부터 국내에 소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허균이나 이덕무, 이규경 같은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서유기를 이래저래 언급하고 있음을 볼 때, 서유기는 동아시아 문화를 엮어낸 질료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맥락을 안다면 고려 경천사지 십층 석탑의 부조浮彫나 사찰벽화에서 서유기가 튀어나오더라도 그리 놀랍진 않을 것이다.
현재 서유기 벽화가 남아있는 국내사찰은 통도사, 불국사, 쌍계사, 용연사로, 그림의 수준과 규모로 볼 때 통도사 용화전 벽화가 가장 우뚝하다. 7점의 서유기 그림이 용화전 동·서측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각 그림에는 화제畫題가 달려있다. 이 화제가 없었더라면 아직까지 벽화의 정체를 몰랐을 공산이 크다. 18세기에 그려진 벽화의 내용이 서유기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성보문화재연구소가 전국 사찰벽화 현황조사에 나서면서 벽화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화제가 명대明代 서유기 100회본의 회목回目과 거의 일치했던 것이다. 통도사 용화전 벽화는 이처럼 서유기 명대 판본 가운데 『이탁오 선생 비평 서유기』 본에 실린 회목과 삽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다. 7점의 그림이 있지만 서측 중앙에 그려진 두 점의 벽화는 11회 ‘도고혼소우정공문度孤魂蕭禹正空門’의 내용을 분할한 것이라 실제로는 서유기 6회분의 내용이 펼쳐진다. 지면상 모든 그림을 일일이 언급하긴 어렵고 ‘현장병성건대회玄奘秉誠建大會’라는 화제가 붙은 벽화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벽화야말로 불전의 서유기 벽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상을 지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벽화이야기에 앞서 풀어야할 문제가 있다. 문화재청과 성보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의 사찰벽화 : 경상남도(1)』에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완벽한 글이나 책이 어디 있으랴. 처음엔 그냥 넘어가려다가 전문가들이 최근 발표한 글에도 이 책에 나타난 오류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앞으로 이 책을 기초로 잘못된 사실을 재생산할 이들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실을 바로잡아 두고자 한다.
오류의 원인은 벽화의 근거가 되는 서유기 판본과 그 내용에 대한 기본조사가 부실한데서 비롯한다. “여기에서는 이(오승은) 100회본을 기준으로 벽화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라는 두루뭉술한 전제는 용화전의 동, 서 중앙 벽면에 그려진 세 점의 벽화가 모두 12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엉뚱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도고혼소우정공문’이라는 화제는 서유기 11회의 제목 가운데 일부로 (…) 그러나 실제 이 벽화는 화제와는 다르게 12회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그 까닭은 화제에 보이는 ‘소우蕭禹’라는 인물이 11회 내용에는 나오지 않고 12회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이 오류에 대해 한 고전연구자는 통도사 벽화가 명대明代의 판본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보고서는 구성과 회목이 다른 청대淸代 판본을 가져다 댔기에 생긴 해프닝이라 본다.(洪性楚, 2013) 또 보고서는 ‘흑송림사중심사黑松林四衆尋師’란 화제의 벽화 속 세 인물을 삼두육비三頭六臂의 형상의 손오공과 그 모습에 벌벌 떠는 저팔계, 사오정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해당 원문을 읽어 보면 무릎을 꿇은 두 인물은 토지신과 산신이다.
아무려나 12회의 ‘현장병성건대회玄奘秉誠建大會’ 벽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맞은 편 벽에 그려진 11회 ‘도고혼소우정공문도度孤魂蕭禹正空門圖’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1회와 12회의 그림은 이야기의 전개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1회의 화제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혼령을 구하기 위해 재상 소우가 불문의 바른 가르침을 펴다’란 뜻인데, 내용은 이렇다. 지옥으로 간 당 태종은 왕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죽인 혼령들에게 시달리고 지옥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혼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재를 행할 것을 명한다. 부혁이란 신하가 상소를 올려 불교는 패륜의 가르침이라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자 재상 소우가 나서서 불법의 바름을 웅변하고 다른 신하들의 동의를 얻는다. 이에 당 태종은 세 명의 신하로 하여금 수륙재를 주관할 승려를 뽑게 하는데 이때 선발된 이가 삼장법사 현장이다. 용화전 서측면의 중앙의 벽화는 바로 세 관리가 승려를 선발하는 과정을 관리와 승려로 나누어서 두 개의 화면에 그린 것이다. 이 스토리라인을 따라 동측면 중앙에 현장이 수륙재를 주관하는 모습을 담은 현장병성건대회도玄奘秉誠建大會圖가 그려진 것이다.
벽화 상단에는 수륙재에 쓰이는 재단齋壇이 보인다. 그 중앙엔 극락교주 아미타불이 앉아있고 두 부처가 양쪽에서 협시하고 있다. 아랫단에 서있는 작고 귀여운 부처는 석가모니로 추정된다. 불단 좌우로는 작법승들이 바라, 북, 징 등의 법구法具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데 펄럭이는 옷자락은 의식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려준다. 좌측 아래에 일렬로 늘어선 승려들은 판소리 가락 같은 범패로써 작법승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춤과 노래로 한껏 장엄해진 분위기 속에서 불단 앞으로 나와 향을 사르는 인물은 당 태종이다. 그가 천자라는 사실은 발아래에 깔린 용의 형상과 하단에 그려진 화려한 일산日傘을 통해 드러난다. 현장은 오른편에서 합장을 한 채 당 태종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머리 뒤로는 성자를 상징하는 광배가 그려져 있다. 벽화는 이탁오 본의 삽화와 비교하면 전체적 구도는 흡사하나, 작법승과 범패승의 다채로운 모습이 추가되고, 삼신불 명호를 적은 번幡이 첨가됨으로써 당시 봉행된 수륙재 의식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벽화는 서유기 삽화의 재현이란 틀을 벗어나 불전에 어울리는 종교적 벽화, 즉 감로탱으로 전환된다. 이 벽화를 단순히 서유기의 한 장면으로 이해해선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벽화의 다양한 의미는 승려 현장이 아닌 당 태종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왜냐하면 수륙재의 정당성을 웅변하는 인물이 당 태종이기 때문이다. 지옥을 경험한 황제가 자신의 죄업을 씻기 위해 수륙재를 열었다는 것은 종교적 영험담을 벗어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가까워진다. 이 땅에도 당 태종의 수륙재 봉행과 유사한 역사가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 이후 권근을 시켜 진관사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직접 행차해서 국가적인 수륙재를 봉행한 것이다. 용화전에 서유기 벽화를 그리도록 했던 승려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만무하다. 어쩌면 그들은 수륙재 장면을 통해 불교를 멸시하는 유자儒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라, 여기 당 태종, 아니 이성계가 있다. 너희들이 세운 유교국가의 첫 번째 왕이 국가적인 불교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특히나 벽화가 그려진 용화전이란 장소는 벽화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기제가 된다. 다시 말해 미래의 구세주인 미륵과 당 태종이 살포시 겹쳐지면, 불교에서 말하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의 존재적 해석학이 무한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벽화 속 당 태종은 권력을 꿈꾸는 야심가들에겐 자신의 미래 모습으로, 승려들에겐 불교를 후원해줄 신심 있는 권력자로, 현실이 지옥 같은 민중에겐 고통에서 해방시킬 희망으로 번역된다. 그래서 벽화는 서유기의 변화무쌍함과 꼭 닮아있다. 꿈틀거리는 욕망과 은밀한 의도가 번다하게 교차하는 그림은 하나의 의미로 박제하려는 모든 시도를 비웃는다. 이 비웃음으로 인해 통도사 용화전 벽화는 서유기가 그렇듯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관객을 이미 만나고 있는 셈이다.
고백컨대 나는 서유기를 완독하지 못했다. 10권으로 번역된 책의 분량은 꽤 좋은 변명거리였다. 서유기를 읽지 못한 진짜 이유는 어릴 적부터 보아온 서유기 영화들이 안겨준 포만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잠들기 전에 서유기를 잡는다. 새삼 서유기인 이유는 오늘날 한국불교가 현실에서 그려내는 변상도變相圖가 내가 지금껏 읽어온 경전의 이치만으론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답답한 시절에 읽기 좋다’는 서유기를 펼칠 때마다 마음이 더 답답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강호진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에 올라가 삼천 배를 하고 성철 스님에게 일각 一角이란 불명을 받았다. ‘오직 일체중생을 위해서 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지금껏 별달리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심정으로 『10대와 통하는 불교』,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