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택 스님의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
#일화 한 토막.
1939 년 어느 날, 동화사 금당에서 큰스님이 공부하시던 중 다른 요사채에 불이 나서 온 대중이 불을 끈다고 야단이었답니다. 그런데 큰스님은 불이 거의 다 꺼진 다음에야 부삽과 부집게를 가지고 나타나시더니 타다 남은 숯불을 가져다가 풍로에 부어 놓고 약탕에 약을 달이셨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대중들이 기가 막혀 "불이 났는데, 어찌 저리 무심한 짓을..."이라며 웅성거렸다는데, 큰스님도 그 때 당시를 회고할 때면 "나도 그 때 내가 와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데이" 라며 웃곤 하셨다 합니다.
#일화 하나 더.
태조와 무학대사 간의 부처와 돼지 이야기를 하시던 큰스님이 갑자기 원택스님을 보고 "이 놈아! 니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노?" 하고 물으셨답니다. 원택스님은 얼떨결에 "부처님같이 보입니더!" 라 하자 큰스님은 "이놈아, 그라믄 나는 돼지가 되고 니가 부처되는 거 아이가? 이놈아!" 라시며 윽박질렀다 합니다. 그래서 놀란 스님이 이번에는 "아까는 잘못 보고 지금 다시 보니 돼지로 보입니더"라고 황급히 말하자 큰스님께서 "뭐? 내가 돼지로 보여? 나는 성철이고 나는 니가 부처로 보이는데 니는 와 나를 돼지로 보노?" 라며 또 다시 야단을 치셨다고 합니다...
시봉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큰스님의 이런 천진무구한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고, 한편으로는 그 활달자재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구도 끝에 깨침을 이루신 후, 비록 겉으로는 엄하기 이를 데 없으나 속으로는 중생에 대한 한없는 연민의 정이 넘치는 것을 이야기 곳곳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70 년대 초, 백련암 근처의 시골 마을에 다녀 오신 후 그 마을 사람들의 가난한 모습에 아픈 마음을 금치 못하고, 시주 받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마음을 거두시고 신도 분들에게 알려 소 열 마리를 그 마을에 갖다 주게 한 이야기는 큰스님이 얼마나 따뜻한 분인가를 가슴 깊이 느끼게 합니다.
상좌 원택 스님의 겸허하신 모습과 큰스님에 대한 끝없는 공경과 그리움을 보면, 큰스님이 참으로 제자를 잘 두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또한 부모님과 자식에 대한 큰스님의 단호한 태도는, 훗날 출가자들이 필연적으로 치르게 될 불효의 깊은 그늘을 큰스님이 일찌감치 허물을 크게 덮어 씀으로써 거두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봉 이야기를 읽으며 끝내 사라지지 않는 아쉬움 하나는, 큰스님이 조금만 더 부드럽고 자상하셨더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큰스님이 말년에 그렇게 기다렸다는 눈푸른 납자가 큰스님 앞에 나타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스님이야 자비심에서 그렇게 하셨겠지만, 너무 야단 위주로 지도하시다 보니 상좌 스님들이 여간 위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야단을 치며는 어떤 나무도 마음껏 자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생명은 칭찬과 격려를 먹고 자라는 법! 물론 상좌 스님들이 워낙 근기가 훌륭하고 또한 법력이 대단하신 큰스님 밑에서 공부를 했기에 대부분 어느 경계는 이뤘겠지만, 큰스님 법맥을 이을만한 공식적인 제자 분이 없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에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