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은 연기(緣起)론이다. 연기론은 공간적인 의미에서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명제로서 설명된다. 조건 지어진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할 뿐 독립된 실체로서의 존재는 부정된다. 연기론은 또 시간적 의미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통해 설명된다.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고정불변한 독립된 실체는 없다는 의미다. 명상은 이러한 근본적 가르침을 깨닫기 위한 방편이다. 즉 명상수행을 통해 연기와 무아(無我), 무상(無常)을 체화시켜 나가는 것이 불교적 수행이다.
그런데 최근 독일 만하임 대학과 훔볼트 대학, 하이델베르그 대학,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의 연구진들이 공동으로 연구해 발표한 논문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줘 주목을 받았다.
논문의 제목은 ‘마음-몸 수행과 자아 : 요가와 명상은 에고를 진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자기고양감을 증진시킨다 (Mind-Body Practices and the Self : Yoga and Meditation do not Quiet the Ego, but Instead Boost Self-Enhancement’. 저명한 학술지 ‘ Psychological Science'에도 게재됐다. 온라인에 논문이 게제된 이후 2400여건의 다운로드 회수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명상과 요가수행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자아에 대한 감각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졌다는 것이 논문의 결과다.
연구팀은 우선 요가교실에 참여한 학생 93명을 대상으로 15주 동안 자기고양감(Self-Enhancement)을 정기적으로 평가했다. 평가방법은 요가교실의 평균적인 학생들과 비교해 자기중심성(Self-centrality) 측정과 자기고양감 측정 3가지로 조사했다. 자기고양감 측정은 평균이상(Better-than-average), 공동자기애(Communal Narcissism), 자존심(Self-esteem)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평가해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요가 수업에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나 집중하는지, 요가 수업을 듣는 평균보다 얼마나 더 잘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할 선행에 의해 널리 인정될 것인지, 자신이 지금 자기존중감이 높은지 등을 물어 이에 대답하게 하는 것이었다. 연구결과는 요가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모든 측정법상 수업 24시간 전에 비해 자기고양감(Self-Enhancement)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요가수업을 하기 이전보다 자아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이 두 번째로 실험을 한 대상은 명상을 하고있는 페이스북 사용자 162명이 대상이었다. 명상의 경우도 요가와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이 평가에서는 “실험에 참여한 평균적인 참가자에 비해 자신은 편견이 적다”는 내용에 대한 측정과 삶의 만족도, 행복감의 정도를 측정하는 측정법 (자율성, 환경의 지배, 개인성장, 타인과의 긍정적인 관계, 삶의 목적, 자기 수용에 대한 행복도 평가)를 이용하여 실험대상자를 평가했다. 그 결과, 자기 고양감과 함께 행복감도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명상을 통해 자기고양감이 높아졌으며 행복감도 함께 향상됐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요가와 명상 등 서구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수행방법이 불교가 추구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기존의 요가수행과 불교의 근본적인 가정은 몸과 마음의 수행을 통해 자기고양감을 줄임으로써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행의 핵심과정이라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관찰한 것은 몸과 마음에 대한 수행이 오히려 자기고양감(Self-Enhancement)을 증대시키고, 그로 인해 행복감이 증가하고있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또 “같은 조건에서 숙련된 수행자 그룹의 경우에서도 자기고양감이 높아진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며 “이같은 결과는 수행경력이 많은 대가(grand masters)들이나 불교승려(Buddhist monks)들의 경우도 비슷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은 그러면서 “자기중심성(self-centrality)의 원칙은 인간의 본성으로 불가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다른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실험 대상자들이 요가와 명상의 방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인터넷 신문 <BIGLOBE>는 “실험대상자들은 모두 독일에서 모집되었다”며 “많은 학자들은 서양의 불교는 무아를 목표로한 수행이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즉 요가와 명상은 본래 무아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의도된 것이지만, 서양의 요가와 명상 지도자들은 자아계발과 스트레소 감소, 불안 해소를 목적으로 하고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요가나 명상이 실체가 없는 자아를 바로 보게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아를 강화한다는 연구결과는 서구의 명상붐이 명품 스포츠웨어를 입고 요가와 명상을 하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수행하는 사람이 더 이기적이라는 세간의 지적에는 일정한 해답을 주는 부분도 있다. 잘못된 수행방법을 선택했을 경우 연기법과 무아에 대한 이해와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상(我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실험결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요가와 명상의 일부만을 놓고 실험한 것이기 때문에 성급한 판단을 하기엔 이르다. 표본의 수도 적고 실험의 방법도 설문에 의존하는 등 객관적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명상을 둘러싼 다양한 과학적 검증을 위한 연구가 계속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연구가 아닐 수 없다.